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 엄수
500여명 추모객, 리 선생 마지막 길 지켜

“저 초생달이 희망의 달로 차오르길...”
리영희 선생을 광주의 품에 묻고 돌아오는 길, 온 종일 흐렸던 광주 하늘에 뜬 하얀 초생달을 보며 한 이가 말했다.

8일, ‘사상의 은사’ 고 리영희(81) 선생이 평소 그의 뜻대로 광주에서 영면했다.

아침부터 쌀쌀했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리 선생의 운구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는 추모객들로 붐볐다.

이날 안장식에는 유가족을 비롯, 백낙청 장례위원장과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김준태 시인, 김정길 6.15공동위 남측위 광주전남상임대표, 강운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지사,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시민 500여명이 함께했다.

고인의 모교인 한국해양대 교직원과 학생 25명, 고인의 제자인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생 14명도 고인을 기리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오후 4시께 리 선생의 운구행렬이 국립5.18민주묘지에 도착하고, 고인을 기다리던 추모객들은 분골함을 든 장남 이건일(50)씨의 뒤를 따르며 ‘민주의 문’으로 들어섰다.

오종렬 고문은 조사에서 “다시 암흑의 징조가 드리우고 있고, 새로운 우상을 권력의 힘으로 몰아붙이는 야만의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며 “그토록 사랑하고 못 잊어하시던 광주의 물레방아는 다시 돌 것이니 부디 평안하시라”고 ‘광주에 돌아온’ 리 선생을 추모했다.

한국해양대 김병주(23. 해사수송과학부4)사관장은 “후배들이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삶의 지표와 학문 추구의 정신적 자세를 제시해주셔서 감사하다”며 “형형했던 눈빛을 잊지 않고 가슴 속 깊이 새기겠다”고 말했다.

김준태 시인은 조시 <전쟁광들에게 조종(弔鐘)을 울려라-리영희 선생님을 보내는 추모에 붙여 경고함>을 통해 “오늘, 지금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휴지처럼 갈갈이 찢긴 분단과 분열의 땅속에/리영희 선생님을 묻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중략)/야만의 무리에게 조종을, 그리하여 우리들 통일의 큰종을 울리자”라고 외쳤다.

안장식 중간 천둥소리와 함께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추모객들은 언 손을 불어가면서 자리를 뜨지 않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을 기리는 의식이 끝난 뒤  백낙청 장례위원장을 시작으로 유족들과 조문객들이  헌화를 하며 명복을 빌었다. 

많은 이들의 ‘큰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그 뜻을 잇겠노라’ 다짐 속에 ‘실천적 지성’이었던 리 선생은 ‘다시 찾은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영원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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