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리영희 선생님 영전에 올립니다

리영희 선생님, 하늘나라에 가신 선생님이 광주에 이렇게 다시 오셨습니다. 화장 후 광주에 묻히고 싶다하신 선생님의 뜻이 이토록 고마울 수 없습니다.
슬프고 황망한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은 ‘반갑다’고 합니다.
철없는 소리 한다고 나무라다가 멈칫 했습니다. 깊은 데서 울려오는 ‘사람의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프랑스에 ‘에밀 졸라’가 있고 중국에 ‘노신’이 있다면 우리 조국에 리영희 선생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 오종렬 고 리영희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고문. ⓒ광주인
미국의 오만한 지배와 독선에 분노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부활극을 신나게 구경했던 시절, 스텐카라친을 목노아 부르다가도 자이안트 주제가를 뽐내며 불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정신분열증 시대에, ‘통킹만 사건 조작’과 ‘미라이촌 학살의 진상’을 밝힌 ‘전환시대의 논리’는 우리를 중독 시킨 우상을 산산이 부수고 정신분열증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아메리카제국과 그 제국에 아첨하는 세력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죽이고 빼앗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위세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발굴 제시해 줌으로써, 제자리를 찾은 우리의 이성은 뇌 속의 우상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만의 신군부 학살자들이 5.18광주민중항쟁의 배후조종자라며 선생님을 감옥으로 끌고 갔을 때, 우리 모두 항의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맞는 말이었습니다. 진실이었습니다.
깨어난 이성, 행동하는 지식인의 배후에는 늘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오히려 앞장을 서셨지요.

선생님,
또다시 암흑의 징조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과 대북 압박 한미합동군사훈련, 연평도 포격전과 새로운 한미합동군사훈련,  한미합동군사훈련 도중에 열린 한미FTA 재협상으로,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일방적 이익이 달성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깊이 우려하셨던 한미동맹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십년 후 미국을 앞지를 중국을 겨냥하여 군사행동을 조직하는데, 대한민국이 그 최전위부대로 편성되고 있다는 선생님의 걱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가난의 대물림 구조인 비정규직, 폐광처럼 되어가는 한국 농촌, 생명의 근원인 물을 가두어 죽이려는 死대강 사업, 영세자영업자 몰아내는 기업형 수퍼마켓, 거리의 좌판과 새 둥지만도 못한 거처마저 쫓겨나는 빈민들, 미래의 예비 실업군이 되어가는 삼백만 청년학도들,  이들 모두의 살고자하는 몸부림도 외침도 다 힘으로 억누릅니다.

공정사회 이름으로, 국가 경쟁력 이름으로, 마침내 ‘국가안보위기’이름으로 협박하고 억누릅니다.
새로운 우상은 힘으로, 오직 권력으로 밀어붙입니다.
야만의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이성은 다시 정신분열증으로 내몰립니다.

가시는 선생님 소매를 붙잡자니 그는 안 될 일, 오직 가르침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실천하는 지식인,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맹세컨대 선생님,
야만의 우상이 천지의 물을 다 말라붙게 날뛸지라도, 그토록 사랑하고 못 잊어하시던 광주의 물레방아는 다시 돌 것입니다.
반드시 돌 것입니다.
가까이 지켜보시면서 평안하소서. 부디 평안하소서.
2010년 12월 8일

故 리영희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고문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오종렬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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