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리영희 선생님 추도 성명

“불꽃보다 뜨겁게, 꽃보다 아름답게
야만의 시대를 온 몸으로 끌어안으신 시대의 아버지”


금남로의 은행나무가 마지막 잎새를 막 떨구려는 순간에, 리영희 선생님은 우리들 곁을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한 겨울의 혹독한 추위처럼 닥쳐오는 이 야만의 시대가 오늘의 언론에 다시 거울이 되어 비추고 있습니다.

얼마나 참혹한 말들이 지금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까? 엄혹했던 시대, 민중의 양심이시며 시대의 스승이셨던 리영희 선생님,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감히, 선생님이 남기신 말을 새겨 넣습니다.

선생님은 어떠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지성인의 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상의 은사이신 리영희 선생님, 선생님이 5.18묘역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또한 가슴이 뜨거워져 옵니다. 1980년 광주교도소에서 만기 출옥하시고 교수직을 복직하셨으나 곧바로 ‘광주소요 배후조종자’로 구속돼 해직 되셨습니다.

광주와의 인연도 이리 깊었다는 것은, 가시밭길을 걸어가신 선생님의 생의 철학이 남다른 민족애과 조국애를 가슴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민중 속에서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가신 리영희 선생님.

4번의 해직과 5번의 구속이라는 시련도, 학문과 사상의 심지가 곧은 양심적 지식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우리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잠자는 지성을 일깨우신 선생님, 폭력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일상을 선생님의 ‘대화’를 읽으며 우리는 치유와 회복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일에 대한 꿈을, 내일에 대한 희망의 근거를 보았고, 그래서 우리는 행복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외세에 길들여진 지식인들은 버젓이 방송에 나와, 정신대는 돈 벌러 자원한 조선 여성이라 미친 발언을 주저 없이 내뱉고 있으며, 현 정권 외교관들과 미국은 북녘 땅을 중국에 뭉텅 떼어주는 모의까지 꾸며댔다고 합니다. 아울러 한미 FTA를 통해 보아왔듯이 나라의 이익을 송두리째 미국에 가져다 바쳐버린 현실 앞에서 분노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통해 얻은 교훈, 실천을 통해 싸워나가겠습니다.

이제는 민족과 민중의 희망으로 살아 돌아오십시오.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투쟁해나가는 사람들과 늘 함께 하여 주십시오.

리영희 선생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애도를 표합니다.
2010년 12월 7일

故 리영희선생 민주사회장광주전남장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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