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사]- 따뜻한 할아버지 같은 리영희 선생을 추모하며

[추모사] 

우리는 이제 철부지입니다.
-따뜻한 할아버지 같은 리영희 선생을 추모하며-


리영희 선생님. 당신은 칠흑같이 어둔 밤을 깨우는 목탁이였습니다. 위선과 비겁함으로 얼룩진 시대를 일갈하는 죽비였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게 해주신 나침반이였습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로 이익집단화 된 종교인들보다 더욱 치열하게 진실을 구하시던 구도자였습니다. 더불어 백장선사의 말을 빌어 '노동과 수행이 하나로 통일된 신앙생활이 아니면 모든 종교는 위선'이라고 질타하셨습니다.

▲ ⓒ미디어오늘 갈무리

이제 선생님께서 가신 자리 너무나 큽니다. 무모한 대결정책으로 한반도의 앞날이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지금 선생님의 한마디가 너무 그립습니다.

제2의 매국이라는 한미 FTA가 체결된 지금 선생님의 한마디가 너무 그립습니다. 사상이 혼란하고 위선적인 주의 주장이 판을 칠 때 선생님의 한마디는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우리의 의식을 정리해주었고, 실천할 수 있는 이성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런 난마처럼 얽힌 민주주의와 통일의 문제가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선생님의 한마디가 참으로 그립습니다.

선생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차를 사셔서 스스로 운전을 하시며 너무 좋아하셨지요. 2년 전 봄날에 사모님과 백양사에 머무시며 “난 이차가 너무 좋아.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거든. 거기다가 집사람처럼 잔소리도 않해” 농담을 하시면서 어린아이처럼 웃으시던 모습이 새삼 그립습니다.

그 차를 몰고 올봄에 무등산 문빈정사에 한번 와서 묵으시겠다고 하시던 말씀이 마지막 통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항상 내 손을 꼭 잡으시고“스님은 손이 너무 고와. 수행자도 노동을 많이 해야 돼” 하시던 말씀이 저에게는 항상 종교인으로 관념적인 위선자가 되지 말라는 저의 좌우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참선을 많이 하세요. 나처럼 세상의 시시비비만 가리려 하지 말고..” 말씀하시면서 현상적인 면에서 진실을 찾으려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스스로에 대한 겸손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은 1970∼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처럼 여겨졌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베트남 전쟁’, ‘자유인ㆍ자유인’, ‘스핑크스의 코’, ‘동굴 속의 독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21세기 아침의 사색’, 회고록 ‘대화’ 등 많은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1974년 출간한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반공주의의 철가면을 벗겨 내고 중국, 일본, 미국, 베트남 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붉은 공산주의 국가로만 치부됐던 중국 혁명사를 역사적 사실과 논리에 따라 이성적으로 서술하셨습니다.

누구보다 냉철하게 세상을 보시고, 치열하게 진실을 추구하신 분이셨지만 나에게는 따스한 할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철부지’란 그야말로 ‘철不知’여서 때를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철부지란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의 역할과 사회적으로는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과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철을 아는 사람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진단을 합니다. 짧은 삶이지만 수행자로 살면서 진단을 하기도 어렵고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도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제대로 된 진단을 내려주는 사람이 바로 스승입니다.

한국사회에 제대로 된 냉철한 진단을 내려주는 스승이 없다는 것은 철부지가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선생님은 개인적인 철부지들과 한국 사회의 집단적인 철없음을 진단하시고 칠통을 타파하는 죽비처럼 철부지들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가시고 우리는 다시 철부지가 되었습니다.

사상의 길잡이셨고 항상 따스하고 겸손하셨던 리영희 선생님...
“삶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고, 죽음은 한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했습니다. 혼란의 시대... 다시 사바세계에 오셔서 수많은 철부지와 위선적인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죽비를 내려주소서.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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