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

‘사상의 은사’, ‘한국현대사의 증인’, ‘실천적 지식인’, ‘참 언론인’ 많은 수식어를 가졌던 리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어떤이는 말한다. “지난해부터 너무 많은 스승을 잃었다. 가슴이 먹먹하다”
또 어떤이는 말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 갔다”

오는 8일 광주의 품안에서 영원히 잠들 리 선생님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6일 광주 동구 금남로 YMCA 무진관에 마련됐다기에 온 종일 리 선생님 관련 기사로 씨름을 하다가 분향소를 찾았다. 이날은 광주전남 각계 인사들의 합동참배가 있었던 만큼 정치인, 시민단체 대표, 종교인, 시민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리 선생님을 추모했다.

분향소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리 선생님과의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그의 책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뜨고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의 표정에서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것은 리 선생님의 죽음을 가장 슬퍼할 것이라 예상했던 언론인들의 모습은 많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광주 지역 60개가 넘는 언론사의 기자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기자 본인의 신념과 다르기 때문일까, 큰 스승의 죽음을 추모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의 힘 때문일까. 다른 취재로 ‘몹시 바빴기 때문’이라 생각해본다.

얼마 전 리 선생님께서 말하는 ‘기자의 4덕목’을 보았다.
‘전문적인 지식, 올바른 세계관, 성실성, 가난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사실 얼마 전까지도 선생님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다. 리 선생님의 자서전 ‘대화’를 읽었을 때도 그저 그런 ‘교양서적’ 한권이었고, 선생님 또한 많은 ‘선생님’ 중 한 분이었다.

그래, 솔직히 그랬었다. 하지만 기자로서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게 되면서 선생님의 가르침, 선생님의 뜻을 하나하나 가슴에 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리 선생님께서 말하는 4가지 덕목을 모두 갖추었을까? 답은 ‘아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 택도 없다!’

리 선생님께서는 “(자신의)책이 하나도 팔리지 않아 인세가 0원이 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나처럼 리 선생님께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새내기 기자들이 아직도 너무 많은데, '인세 0원'은커녕 선생님 책이 ‘불티나게’ 팔려야 할 지금의 시대에 왜 그리 일찍 떠나신 건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리 선생님의 수많은 수식어 중 가장 탐이 나는(?)것이 바로 ‘실천하는 지성, 참 언론인’이다.

리 선생님의 죽음을 통해 그 삶을 되돌아보면서 “리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잡고 참 언론인의 길을 가야겠다” 다시 다짐해본다.

한 달 전 많은 이들 앞에서 했던 나의 맹세, 나의 목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12월 5일 ‘사상의 은사’, ‘실천적 지성인의 표상’, ‘두 달차 김누리 기자의 정신적 스승이자 나침반이 되실’ '참 언론인' 리영희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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