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항쟁기념관...11월23일~ 12월 12일까지
<연리지> <매화> 연작 등 한국화 70여점 전시


광주에서 활동 중인 허달용 한국화가가 이달 23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부산민주공원 민중항쟁기념관에서 한국화 초대전을 연다.

허 화백의 이번 부산 초대전은 지난 1997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아홉 번째 전시이자, 자가 개인의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회고전의 성격이 강하다.

이번 초대전은 허 화백의 회고전에 맞도록 첫 개인전 작품에서부터 최근 광주 서구 무각사 로터스에서 전시한 매화연작, 그리고 연리지 연작 등이 선보인다. (아래 작품평론. 작가 약력 참조)

▲ 月夜觀梅 120×207cm, 한지에 수묵 채색, 2010

허 화백은 광주에서 활동해오면서 전통 한국화와 민중미술 부문에서 대표적인 40대 화가로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수묵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허 화백은 “부산민주공원에서 초대전 제의가 들어와 수락하게 됐다”며 “개인적으로는 지난 20년 작품 활동에 대한 정리이자 점검이기도 하다”고 의미를 밝혔다. 조인호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은 허 화백에 대해 “당대의 초상과 실상(實相)을 그리는 수묵 사실주의(社實主義) 작가”라고 규정했다.

조 부장은 이번 전시에 붙이는 평론에서 “(허 화백)그가 대학 졸업 후 20여년을 일관되게 지향해 온 예술신조이자 철학이라 할 수 있다”며 “실제로 격동의 ’80년대 중후반 수업기부터 이후 화단과 현실참여 활동 과정에서 시대마다 부딪혔던 정치 사회사적 격랑과 혼돈과 갈등들이 그의 화폭에 주된 소재로 담겨져 왔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 月夜觀梅 207×120cm, 한지에 수묵 채색, 2010

이어 조 부장은 “직설과 은유와 함축의 정도를 달리하고, 먹의 농도나 필획의 힘과 발현에서 시기마다 약간씩의 변화가 나타나긴 하지만, 적어도 그림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문자답 식의 화두와 신념만큼은 확고했던 것 같다”고 허 화백의 수묵 사실주의를 평가했다.

이번 부산초대전에서 허 화백이 광주 출신 민중화가로서  부산화단과 시민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지 주목된다.  
문의: 010- 9943- 0118 허달용, 전시관 (051) 790-7400


▲ 연리지 120×207cm, 한지에 수묵, 2010

▲ 풍등.100×57cm, 한지에 수묵 채색, 2010

▲ 落火 낙화 141.5×71cm, 한지에 수묵 채색, 2010

▲ 관망 183×122.5cm, 한지에 수묵 채색, 1989

허 달 용(許達傭)  약력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개인전
2010 무각사초대전(무각사, 광주)
2010 공화랑초대전(서울)
2009 원화랑초대전 (원화랑, 광주)
2007 연리지 (롯데화랑, 광주)
2002 네번째 개인전 (구씨네, 광주)
2000 세번째 개인전 (신세계갤러리, 광주)
1998 상춘곡 (나인갤러리, 광주)
1997 첫번째 개인전 (인재미술관, 광주 / 덕원미술관, 서울)

단체전
2009 5·18민중항쟁29주년기념 ‘오월전’(구.도청, 광주)
한국 박물관 개관100주년 기념 특별전 ‘탐매’展(국립광주박물관, 광주)
2008 신세계새해테마전 “쥐구멍에 볕들날” (신세계갤러리, 광주)
2006 광주민미협창립기념전국민족미술전 “핀치히터”展 (메트로갤러리, 광주)
1995 광주통일미술제 전국민족미술인협회 창립展 (5·18망월묘역, 광주)
1999 영·호남 민족미술교류展
1994 JALLA展 남녘의 산하展 민중미술 15년展
1992 일하는 사람들 展 Human&History
1991 한국화 단면 展 전국청년미술제
그외 다수의 그룹전, 기획전 참여

경력
2010 5·18민중항쟁 30주년기념행사위원회 집행위원장
2009~현재 광주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
2007~현재 광주민족예술인총연합 회장
2006~현재 한미FTA저지를 위한 광주전남운동본부 집행위원장
2001 미술인연대 대표
1999~2000 광주미술인공동체 회장
1998 광주미술인공동체 사무국장
1995~1996 광주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
1993 광주미술인공동체 수묵분과위원장

․현)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이사
(사)광주민족예술인총연합 회장
전국민족미술인협회회원
미술인연대 대표
연진회회원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 1020-12번지
전화 : 010-9943-0118
E-mail : h262484@hanmail.net

  수묵사실로 담아내는 시대의 실상
                                    조인호 미술사.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Ⅰ. 사실주의 수묵화가의 실천적 화업

운원 허달용(芸園 許達傭)은 당대의 초상과 실상(實相)을 그리는 수묵 사실주의(社實主義) 작가다. 이는 그가 대학 졸업 후 20여년을 일관되게 지향해 온 예술신조이자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격동의 ’80년대 중후반 수업기부터 이후 화단과 현실참여 활동 과정에서 시대마다 부딪혔던 정치 사회사적 격랑과 혼돈과 갈등들이 그의 화폭에 주된 소재로 담겨져 왔기 때문이다. 직설과 은유와 함축의 정도를 달리하고, 먹의 농도나 필획의 힘과 발현에서 시기마다 약간씩의 변화가 나타나긴 하지만, 적어도 그림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문자답 식의 화두와 신념만큼은 확고했던 것 같다.

허달용의 회화세계는 호남화단에서 중추를 이루어 온 허씨일가의 대를 잇고 있으면서도 그 전통 화맥에서 보면 꽤나 멀리 벗어나 있다. 호남남화의 거목인 의재 허백련의 아우이면서 한국 근대기에 전통 실경산수 서화와 사업 등을 통해 폭넓은 활동을 펼쳤던 할아버지 목재 허행면(木齋 許行冕, 1906~1964)과 부친인 연사 허대득(蓮史 許大得 1932~1993)의 전통남화 가법이나 그가 중학교 때부터 그림의 입문과정으로 거쳤던 연진회(鍊眞會)의 학풍과도 크게 배치되기 때문이다.

물론 허씨일가에서도 현대미술의 변화 속에서 전통의 수구보다는 시대문화에 맞게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중진 중견작가 후손들이 없지는 않지만 허달용의 경우는 전통 회화에서 우러나는 그윽한 화취(畵趣)와 수묵화의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필묵의 맛과 더불어 삶의 현실이나 사회현장의 생생한 호흡들을 함께 아우르는데 무게를 두어왔다.

초대전 형식으로 부산에서 갖게 된 이번 아홉 번째 개인전의 작품들은 수업기 이후 깨어 있는 작가정신과 생명력 있는 회화세계를 열망했던 한 화가로서의 독자적 예술세계와 더불어 사회운동 현장의 열혈투사로서 청년기 허달용의 20여년 행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동안 그는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나 미술인연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광주민예총 등의 미술문화단체 수장으로서뿐 아니라, 미술인의 사회참여라는 적극적 실천행동으로 오월제,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조각가 故구본주 보험소송,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 구 전남도청 별관 철거반대, 5ㆍ18 30주년기념행사 등에 대책위원장, 집행위원장, 실행위원장, 때로는 일인시위로 거리현장과 선두에서 앞장서 맞서며 젊음을 태우던 고단한 나날 속에서 사회운동의 투사로 끝나지 않고 그런 시대의 호흡과 흔적들을 그 때마다 홀로 작업실로 돌아와 남은 새벽을 아껴가며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번 전시는 불혹의 40대 중반을 넘어선 현 시점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그렇게 세상과 화폭과 치열하게 부딪혀 왔던 허달용의 청년기 화업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는 자리인 셈이다.

실제로 그의 일련의 작품들에서 수묵화라는 매재(媒材)나 형식 본래의 특성과 회화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필묵의 흔적들과 함께, 매 시기마다 사회적 리얼리즘의 주제의식으로 택하였던 주된 소재들이나, 은유와 함축을 통해 담아내고 있는 메시지들을 통해 우리 사회나 정치ㆍ문화 현장의 주요 사안들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또한 오월의 수많은 선전선동의 전사들이 의기충천하여 뭉쳐 움직였던 집단적 현실참여 활동시기 이후 변화된 시대문화 속에서 개별적인 작업으로 돌아가 서정과 은유와 위무(慰撫)와 풍자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들을 펼쳐가고 있는 최근의 흐름에서 끝끝내 현장에 남아 그림으로서만이 아닌 사회활동가로서도 공적인 몫을 다하고 있는 현실참여 리얼리스트의 한 예를 살펴 볼 수도 있다. 

Ⅱ. 세상의 호흡으로 북돋우는 공생의 길

허달용의 작품들은 대부분 당대의 주요 이슈나 상황들과 맞닿아 있다. 물론 그의 수업기인 ’80년대 후반은 한국 현대사에서 격동의 시기였고, 그런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면서 전통회화의 필묵의 멋과 맛을 살린 현실소재로서 실경산수와 시대감각을 살린 인물, 농사일 등 우리 삶의 진솔한 모습들을 풍속화처럼 담아내는 작업들을 주로 따랐었는데, ’80년대 당시의 추세와 무관하지 않은 수업과정들이 이후 그가 사실주의 작가로서 주제의식과 회화적 묘미를 탄탄하게 실현시켜내는데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실재 시위현장의 앞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분개하고 있는 자신의 나약함을 자성하면서 때마침 결성된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무렵 오월전 등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던 소재 가운데 <광주의 혼>(1994)은 5ㆍ18광주민중항쟁 때 희생된 주검들의 혼백(魂魄)이 떠나지 못하는 터진 두상들을 강렬한 흑백대비와 번짐의 수묵처리에 섬찟하게 내리쏟는 붉은 핏줄기를 더해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실참여 사실주의 작가로서 결연한 의지는 스스로의 자성의 거울을 들여다보듯 심혈을 기울인 <관망>(1989)에서 복잡미묘한 심리상태와 고뇌와 의지들이 뒤엉켜 표현되고 있다.

대학졸업 후 잠시 붙들었던 생업을 접고 1993년부터 미술현장으로 돌아오면서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의 수묵분과위원장으로 처음 공적인 역할을 분담하게 되는데, 메시지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전달을 전제로 섬세하면서도 필묵의 맛이 제대로 우러나오는 사실작업에 공을 들였다. <황토재 풍경>(1996)은 그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동학100주년을 기념하는 순회전을 통해 선보였던 이 작품은 멀리 백산과 푸른 솔들이 지켜선 고부 황토들녘 위로 먹구름 흉흉한 하늘을 거대한 흰머리 독수리가 먹이감을 노리며 날고 있는 그림이다. 핵심부분은 담묵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나머지부분에서는 대범하게 수묵의 물맛과 굵직한 운필, 여백 효과를 곁들여낸 장대한 구성을 보여주면서 민족적 자존의식을 일깨우고 외세에 대한 저항과 긴장감을 은유적으로 함축시켜낸 초기작이다.

또한, <갈수 없는 땅>(1996)에서는 해금강을 배경으로 화면하단에 철조망을 가로지르고 그 위에 인간세상의 경계와는 초연한 참새 한 마리를 배치하여 북한과 교류가 단절된 문민정부 시절의 분단상황을 상징화시켜내는가 하면,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15여 년 간 진실규명과 민주세상을 열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해 온 5ㆍ18정신 계승운동은 오히려 그 기운이 가라앉아 가는듯한 답답한 상황을 <거름내기>(1996) 연작으로 표현하여 농부의 새봄 들일처럼 밑거름을 내 이 땅에 다시 오월정신의 생기를 돋우고 싶은 바램을 표현하기도 했다.

정치사회적 현안 쟁점들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직접적인 발언들을 주저하지 않는 이 무렵의 작업 가운데 <쌀개방 반대>(1996)는 농산물수입품목이 자유화되고 쌀시장이 개방되는 우르과이라운드 반대 농민운동과 뜻을 같이 하여 여의도 농민대회 현장에서 만난 당차게 생긴 어린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시사적인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주변의 일상 인물들을 자연풍경의 일부와 더불어 구성하는 ’90년대 말 일련의 작품들로 <갯바람> <탱자꽃> <봄> 등의 연작을 들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접하는 단상들을 가볍게 잡아낸 소경산수인물화의 형식이지만 단지 배경으로서 풍경을 차용하기보다는 남도 삶의 정서와 체취를 담아내는 동반소재로 즐겨 다루면서 어느 때보다 생기와 희망이 넘치는 화풍들을 보여주었다.

그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꽤 많은 양의 <금강산> 연작을 계속하였는데, 전통 실경산수화 형식으로 금강산 구석구석을 소재 삼아 맑고 담백한 수묵의 맛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데, 1998년부터 시작된 국민의 정부 시절 남북화해와 평화무드, 금강산관광사업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남한 사회의 범국민적 관심사들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2000년대 들어 그의 개인적인 화업 외에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역할이나 활동의 비중이 점점 더 늘어가는데, 그러다보니 화가라는 본연의 업이 흐트러지거나 필묵이 굳지 않도록 더 부지런을 내야했을 것이다. 그는 강하게 꽂히는 화제나 사회적 화두가 서게 되면 상당기간 집요하게 천착하여 의도하는 메시지와 회화적 효과를 실현시켜내는데 많은 궁리를 하기도 한다.

그런 연작 주제 중 다섯 번째 개인전 때 주제로 삼았던 ‘연리지(連理枝)’의 경우는 스냅사진처럼 가볍게 풀어내는 스케치풍의 산수인물화들이다. 주제가 내포하는 상징성을 짐작하여 얼핏 정국의 변화에 따라 경색된 남북문제를 다룬 것으로 보았지만, 사실은 그 남북문제보다 더 심각한 우리 내부의 가지가지 이해관계에 의한 분열과 갈등과 대립 속에서 야권을 비롯한 각 집단들의 사회 통합과 상생의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한다.

말하자면 참여정부 시절 끊임없이 부딪히던 보혁갈등과 북한 핵, 한미 FTA 협상 진행과정 등을 비롯해 무수하게 쏟아지는 온갖 정치현안이나 쟁점들로 반목과 갈등이 무성하게 일어나던 상황에 대한 착잡한 심사를 그림으로 녹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2007년부터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매달렸던 이 연리지 연작들을 고목이나 생생한 청년나무 서로 쌍을 이루고 한 둥치가 되어있는 모습들이다.

대부분 평범한 수묵실경이거나 생활 속의 인물이 자연스레 곁들여지기도 하고, 진창이 된 둑길을 굽어보거나 마을당산처럼 굳건하게 버티어 서있기도 하고, 눈 덮힌 산야를 지키고 있거나 어스름 달빛에 묻혀 있기도 하는 등 그가 택했던 화제들 가운데 꽤나 다양한 화면구성과 상황연출로 다루어진 소재이다.

Ⅲ. 어둠 속 매화에서 새벽빛을 본다.

‘연리지’가 시사성을 내포하면서도 풍경적 요소들이 두드러진 산수인물 연작들이었다면, 2009년 이후 허달용의 작품들은 훨씬 더 치열하게 맞서야했던 사회현장의 활동들과 함께 그 세상사 속 정치사회적 굴곡과 상처와 아픔, 비탄과 회한과 풍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밀려오는 자괴감을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낚시코에 꿰인 쏨팽이로 비유해낸 <자승자박>,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사의 요동 속에 정신적 버팀목들이 무너져 내린 듯했던 숭례문 화재참사 소재의 <일식-3>, 대량해직 해고의 강풍 속에 고공 조명탑 끝에 올라서서 생존을 부르짖는 로케트전기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을 수직의 긴 화면으로 위태로움을 강하게 드러낸 <낮달>, 한 때의 희망이 거대한 절망으로 사라지고 만 노무현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의 비통함을 담아낸 <산이 된 바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공사와 관련하여 별관 존치 철거문제로 갈등의 핵심이 되고 있는 구 전남도청을 그린 <오월에 내리는 눈>과 <하현(下弦)>, 명절에도 고향을 찾지 못하는 실직자들의 폭포처럼 허물어지는 비애의 나락 아래 덩그러니 놓인 빈 컵라면 그릇과 거기 빼곡히 꽂혀있는 담배꽁초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한숨> 등이 그 예들이다.

이들 시사성 짙은 작업들은 대부분 수없이 먹을 덧쌓으며 우려낸 어두운 화면에 상징적 소재들이 함축적인 도상으로 펼쳐지는데, ‘일식(日蝕)’과 ‘하현(下弦)’, ‘월야관매(月夜觀梅)’ ‘촛불’ 연작들로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2009년 7월에 있었던 경이로운 일식현상에서 발상을 얻어 이 시대 사회현상에 대한 풍자로 연결시켜낸 ‘일식’ 연작 또한 그런 암울한 세상사에 대한 답답한 심사를 짙은 먹색바탕 위에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이며, ‘하현’도 이와 마찬가지 시대의식의 표현들이다.

한번 꽂히면 집요하게 매달리는 허달용의 대 사회적 화두와 그 회화적 천착은 최근 매화그림에 쏠려 있다. 전통적인 문인화의 묵매도 화제와 화면구성을 차용하여 거기에 지금의 사회적 메시지를 겹쳐 올리는 작업인데, 촛불과 어둠 속 매화의 이미지를 중첩시켜내는 작업들이다. 실재로 2000년대 들어 줄곧 사회현장에 있었던 그에게 촛불은 시대의 꽃이나 마찬가지였다.

2002년 이후 시민사회의 거대한 울림을 담아내는 평화적 집회문화로 이어지고, 광우병 파동이 일었던 2008년에는 10대 학생들까지 참여하면서 세상의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던 촛불집회 현장에서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와 소시민, 주부들까지 모두 하나 되는 시위문화의 주인공들을 종이컵과 작은 화판 하나하나에 한사람 한사람씩 담아내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개개인의 초상과 더불어 그 집단적인 무리들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 맑은 빛을 발하는 매화송이들로 옮겨내어 <월야관매도(月夜觀梅圖)>라 이름 하기도 한다. 그 월야관매도는 때로는 짙은 어둠 속에 희미하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4대강을 묻어두거나, 이러저런 세상사를 일갈하듯 쏟아지는 희뿌연 폭포를 배경으로 삼기도 하면서 처연히 빛나는 꽃송이들의 흰빛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이들 월야매화 연작과 더불어 ‘동백’도 꽤 많은 작업들로 다루고 있는 소재다. 최근 계속하고 있는 ‘낙화(落火)’ 연작인데, 4대강 사업을 몸으로 저지하다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의 초상을 검은 어둠 속 다비의 화염처럼 그려올려 극락왕생을 발원한 <낙화>를 비롯하여, 선염처럼 뚝뚝 떨어진 먹물방울들과 함께 검거나 혹은 붉은 동백송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아울러 최근 메시지 못지않게 회화적 효과를 살려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풍등’ 소재 또한 세상 사람들의 희망의 꽃을 밝히는 작업들이라 할 수 있으며, 어둠 속 새벽을 꿈꾸는 사회적 염원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허달용의 작업들은 현실참여 사실주의 작가들의 최근 작업에서 대체로 그렇듯이 언뜻 사회적 발언에 대한 일정한 자기방식의 작품세계들 을 유지하면서 잔잔한 서정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담고 있는 얘기들로 보면 그 자체로 대단히 시사적이고 사회비판적인 발언과 활동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시절의 흥분된 어투나 거칠고 격렬한 몸짓, 사회적 메시지 그 자체로 함몰되기보다는 우리 전통회화 본래의 요건과 멋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세월 따라 그림도 변해가듯 잠시 한 때 화면을 밝히던 맑고 엷은 먹빛과 세세한 모필의 묘사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꽤 긴 시간 동안 어둠과 모호함 속에 묻혀 있고, 현실세상의 답답함만큼이나 그림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화업에서도 화두는 무겁기만 한 것 같다.

사실 그의 그림은 시사적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거대한 웅변이거나 자극적 강렬함을 애써 펼쳐놓는 방식은 아니다. 그런 점은 ’80년대 말부터 미술의 사회참여 현장에서 함께 부대껴 온 동료 정희승의 말마따나 “시대의 조류에 쉽사리 휩쓸리고 결국은 유행처럼 사라져 가버리는 조급증에서 벗어나 견고”한 내공을 다지고, “끊임없는 자각과 철학으로 자기 세계를 탄탄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의연하게 다가오는 진정한 화인(畵人)”의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세상일로나, 화가 본연의 업으로나 지난 20여 년간 청년기의 작업과 활동을 되짚어보는 이번 개인전은 그래서 더 귀한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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