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한 자루, 선 하나의 ‘락(樂)’

롯데갤러리 광주점에서 청년작가그룹초대 첫 번째로 세발까마귀회의 열세 번째 정기전을 마련한다.

전남대 미술학과 한국화전공 전시그룹인 세발까마귀회는 1997년 창립전을 시작으로 올해로 13회째를 맞이하며, 청년 작가들이 주축을 이룬다. 고구려 건국 설화의 상징이면서 자존감을 나타내는 세발까마귀처럼 한국화의 전통을 잇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결성된 그룹으로, 그간의 지역 한국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왔다.

▲ ⓒ정현경_<정현경땅>. 광주롯데갤러리 제공.
이번 세발까마귀전의 주제는 ‘락(樂)’이다. ‘락(樂)’은 즐거움, 노래, 풍류, 좋아하다 등, 흥겨운 뜻만을 함축한 한자어이다. 2009년의 전시 주제가 ‘노(怒)’였던 것에 비해, 이번 설정은 다소 부드럽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미술로써 풀어보고자 했던 작년 전시가 젊은 작가다운 열정과 폐기가 돋보이는 자리였다면, 이번에는 무겁고 힘겨운 주제보다 지금의 자리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느낌이다. 작품의 면면은 작위적인 즐거움과 의미 찾기가 아닌, 현재의 삶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만큼 현실을 마주하는 태도가 담담하거나, 혹은 오히려 무거워 보인다.

채종현 작가는 작품 <Ready-made of life>에서 일상에서 마주할 법한 몇몇의 기성품을 묘사한다. 나아가 자신의 모습도 기성품화한다. 작품 속 인물의 하단에는 ‘since 1970’이라는 문구가 흥미롭게 자리한다. “소소하고 무심한 것들 속에서 내 삶의 여유는 왠지 낯설지 않은 기성품같다”는 작가의 변처럼, 틀 안에서 정형화된 행복감이 불안하고 달갑지 않음을 드러낸다.

정현경은 작품 <정현경땅>에서 옛 한성지도를 묘사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문으로 된 각각의 지명은 ‘鄭鉉暻地’로, 지명 앞에 작가 본인의 이름을 반복해놓았다. “대한민국 면적 221,336㎢ - 내 땅 없음, 서울특별시 면적 605.41㎢ - 내 땅 없음, 빼곡한 건물 한 뼘만큼의 소유도 없음, 꼬리물린 자동차들 저 중에 내차는 없음, 세상이 다 내 것이 되는 그날까지……”로 끝나는 작업노트에서 작가가 풍자하고자 하는 내용을 엿볼 수 있다.

윤준영 작가는 미술가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삶의 낙을 표현했다. 윤준영은 작품 <내려놓음의 공간>에서 막힌 공간 안에서의 쉼을 묘사한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소통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유일한 평온”을 간구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 사이에서 파생한 모든 문제들을 차단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이것이 오히려 작가가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의 상징이 아닐까 반문한다.

살아가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재미, 혹은 고통 없이 편안히 지내는 즐거움을 ‘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아직은 창작의 고통이 버거운 청년작가들에게 즐거움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은 의미 그대로 숙제가 될 수 있다. 이번 정기전은 전시 주제의 독해력이 다소 부족하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극명한 ‘락(樂)’은 “붓 한 자루, 선 하나의 행복”이라 역설한다. 표현의 즐거움과 창작의 난해함 사이를 오가는 젊은 한국화가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기원하며, 여름 휴가철 전시장 안에서의 의미 있는 휴식도 즐겨보기를 바란다. / 광주롯데갤러리 제공.

♦ 전시기간 : 2010. 7. 27(화) ~ 8. 11(수) / 초대 일시 : 7. 27(화) 오후 6시
   관람시간: 10:00 ~ 20:00(월~목) / 10:00 ~ 20:30(금~일) / 전시기간 중 휴관 없음
♦ 장 소 : 광주롯데갤러리(광주은행 본점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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