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반대 ‘대못’, 난감한 조중동 속사정
한나라당, 세종시 수정 부결 후폭풍…언론, 비판보도 수위 조절 고심


아래 기사는 <미디어오늘>이 세종시 수정안 부결 결과를 보도한 30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을 분석한 기사를 전재한 것 입니다. /광주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섰다. '여의도 정치'를 오래 경험했다는 기자들도 박근혜 전 대표가 본회의장에서 특정 법안 찬반 토론에 나선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놀랬다. 이유가 있었다. 본회의 안건 찬반 토론은 1998년 15대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진입한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들도 국회의원들도 처음 보는 진풍경이었다.

동아일보는 30일자 3면 <직접 나선 박, 12년 의정생활 첫 본회의 토론>이라는 기사에서 "본회의 안건 찬반토론에 나선 것은 1998년 15대 국회의원으로 의정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이다. 박 전 대표가 단상에 올라 반대 토론에 나서자 대부분의 여야 의원들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한 한나라당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3면 <"어, 어…박근혜가…">라는 기사에서 "맨 뒤쪽에 앉아 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일어나 발언대 바로 앞자리로 걸어가자 야당 의원석에서 '어, 어…', '직접 나서나 봐'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일부 여당 의원들도 놀란 표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돼야 하는 사유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내용으로 보이지만,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발언은 청와대의 누군가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날 찬반 토론에는 12명이 나섰다. 세종시 수정안 반대 토론에 나선 한나라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유일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을 들였던, '세종시 총리'로 불리며 세종시 수정에 전력을 다했던 정운찬 전 총리가 사활을 걸었던 바로 그 국정과제에 제동을 거는 역할이었다.

한나라당 친박근혜계가 똘똘 뭉쳐서 야당과 투표 공조를 이뤄냈고,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찬성 105명, 반대 164명이었다. 한나라당은 하나의 정치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냈고, 친박근혜계와 친이명박계의 뿌리깊은 갈등의 골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은 정치적 승부수로 볼 수 있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뒤집기 정치'와 차별성도 부각시켰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반대하면 이 대통령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킨, '박근혜 대못'을 확인시켰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이번 선택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선호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다른 정치인이 그런 선택을 했다면 조중동의 '융단 폭격'이 퍼부어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랬다. 한 때 한나라당 대표로 정치적 위세를 떨치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조중동으로부터 매서운 비판을 받았다. 세종시 문제에 대한 정치적 스탠스 때문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관련 선택은 이회창 대표의 선택과 큰 차이가 없다. 조중동은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매섭고 날카로운 비판 보도를 쏟아냈을까. 조중동 사설에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에 대한 비판과 울분, 분노가 담겨 있다.

조중동이 세종시와 관련해 보여준 논조는 분명했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정치인에 '포퓰리즘' 이미지를 덧씌웠고, 국가지도자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이어갔다. 그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던 때도 있었고, 이회창 대표이기도 했으며, 민주당 지도자일 때도 있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조중동의 융단폭격 대상에 박근혜 전 대표는 사실상 빠져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이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6월29일 국회 본회의 표결 부결의 가장 큰 힘은 박근혜 전 대표로 봐야 한다.

중앙일보는 <포퓰리즘과 불통 정치가 남긴 교훈>이라는 사설에서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휘둘려 잘못된 결론에 이른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정치가 표만 구걸하러 다녀서는 천박한 정치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천박한 정치꾼'이라는 표현은 격한 언어이다. 누구를 겨냥한 내용일까. 중앙일보 사설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인지,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세종시안이 옳고 그르고는 제쳐놓고 약속 이행만을 주장했다. 원칙은 지켰는지 모르지만 사안의 본질에 대해 협의할 정치력을 보이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표 행위에 대한 중앙일보는 공식적인 평가는 "아쉽다"는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세종시 수정안 반대 의원들 역사적 책임 무겁다>라는 사설에서 "수정안 반대에 이름을 남긴 국회의원들은 앞으로 세종시 원안 추진의 결과에 대해 무거운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세종시와 관련해 "지역주의에 기대어 충청권 표를 노린 정략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가 비판 대상으로 삼은 실명은 지금은 세상에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동아일보는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바로 전날 세종시 수정안 반대를 주도했던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했다.

조선일보는 보다 분명한 어조로 비판의 목소리를 전했다. 조선일보는 <세종시 8년 논란, 대한민국은 무엇을 얻고 잃었나>라는 사설에서 "세종시는 대한민국 앞길을 가로막고 나설 정치적 포퓰리즘의 본격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면서 "선동적 정치가와 자기 이익 우선의 유권자가 여기서 함께 손을 잡으면 대한민국은 페론 유령에 50년 동안 끌려 다녔던, 아시아의 아르헨티나가 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누구를 '페론 유령'으로 묘사한 것일까. 박근혜 전 대표일까. 물음표가 남는다. 조선일보는 "통일에 대비한 국가 행정력의 비효율적 배치, 경제적 역효과 등 핵심 쟁점은 변두리로 밀려버리고 유권자와의 약속을 앞세운, 선거에 관련한 득실 계산과 논란으로 시종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날 5년2개월만에 본회의 발언대에 올라 '(원안 추진)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얘기로 들렸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직접 비판 대상으로 삼은 인물은 박근혜 전 대표는 아니었다. 주인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다 "박근혜 전 대표 주장도 같은 얘기로 들렸다"는 간접 비판을 선택했다.

조선일보가 비판적으로 보는 정치적 행위는 박근혜 전 대표가 했는데 비판은 엉뚱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정치인을 향한 날 선 보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평소 조선일보 모습과 다르다. 왜 그럴까.

현실 정치에서 조중동의 위세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야 할 것 없이 조중동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은 널렸다. 조중동 선택에 따라 대통령 선거 지형도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은 이미 대선 레이스를 뛰는 또 하나의 선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론을 쥐락 펴락하는 막강한 힘을 지닌 그 선수들도 어찌하지 못하는 대상이 있다. 현실 정치에서 조중동과 맞서는 정치인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몇몇이 있다. 그러나 조중동도 눈치를 보는 정치인은 박근혜 전 대표가 거의 유일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보수와 대구·경북에 정치적 기반을 둔 인물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 조중동의 미묘한 역학 관계는 차기 대선구도의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후보군 가운데 부동의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조중동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