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 잡지도 못하고 세월이 야속하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알고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생무상이라고 하듯이 때가 되면 세상을 떠야 한다. 죽는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독재자라도 역시 세월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아무리 움켜쥐고 발발 떨어도 놔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기독재를 한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이들은 불행한 권력자였고 독재자였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도 권력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결코 행복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구차스럽다.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이른바 레임덕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대개 집권 말기에 나타난다. 집권 초기에 간이라도 빼 줄 것 같던 동지들이 등을 돌리고 목숨까지 줄 것 같았던 측근 참모들이 얼굴을 돌린다.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던 졸개들도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을 레임덕이라고 한다. 쩔뚝발이 오리라던가. 잘 조직된 당을 배경으로 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당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날개 꺾인 처량한 새다. 여기저기서 공격이 시작된다. 비판이 가해진다. 한 번 비판이 시작되면 마치 물꼬가 터진 것처럼 거침이 없다.

처음에는 공갈도 치고 겁도 주고 해서 입을 막지만 한두 번 지나면 겁도 안 낸다. 약발이 떨어지는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놈이라고 아무리 혼을 내도 눈 하나 꿈쩍 안 한다. 이제 좋은 시절 다 가버린 것이다.

김영삼의 경우 당에서 탈당을 요구했다. 스스로 탈당을 했지만 사실은 쫓겨난 것이다. 노태우도 마찬가지. 노무현의 경우도 따지고 보면 정치판의 비정함이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난 것이지만 권력의 속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이제 2년이 지나고 3년이 다가온다. 아직은 까딱 없다고 할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국민들도 그렇다고 할 것이다. 누가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운운하면 한 마디도 ‘야 임마. 까불지 마. 내 사전에 레임덕은 없어.’ 분명히 그렇게 말할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성격을 봐서도 그렇다.

그러나 레임덕은 대통령의 성격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는 모양이다. 오늘 아침 모 언론매체의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다니. 이거 사실이야?’

사연인즉 한나라당의 권영세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을 거론한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당 의원으로서는 최초다.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이명박 대통령의 거취를 방송을 통해 거론한 것이다.

권영세 의원은 평화방송에 출연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이 필요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했고 그중에서 분당을 막기 위해서도 탈당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의 발언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제 이명박 정부도 집권 하반기에 들어서게 되지 않나? 이제 그럴수록 민의에 반하는 정책을 선택하거나, 또 민의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민의에 부합하지 않은 방식으로 정책을 집행해 나간다면 레임덕이 가속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서 국정혼란도 가중될 것이다.”

이는 바로 6.2 지방선거로 이미 심판을 받았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나 그 밖에 정책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국민들은 이번 6.2지방선거의 결과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레임덕이란 수렁으로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믿고 있다.

객관적 조건이 국민으로 하여금 그 같은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를 어기는 것이 바로 레임덕을 가중시키는 결과만 가져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면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대통령은 절대로 정상적인 정치를 펴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종시 4대강 천안함 집시법 미디어법 국민 웃기는 한명숙 별건수사 전시작전권 환수연기 FTA 문제. 세계에서 몇 번째 간다고 큰소리치는 한국군이 미군이 운전하는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미군의 얼굴만 바라보게 되었다. 자존심 팍팍 상한다는 군인들의 울분을 이해하고 남는다.

이런 것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져오는 복합적인 이유라고 설명하고 싶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하나 둘일까. 그들은 모두가 정치인이다. 배지 떨어지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더구나 이번 6·2선거로 민심의 소재를 소름끼치게 지켜봤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감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눈치라면 날고 기는 의원들이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야 임기 마치면 전임대통령으로서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나 정치인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위에서 지적한 대통령의 실정으로 금배지가 날아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왜 대통령 때문에 정치생명을 버린단 말인가.”라고 할 의원들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여기에 제1번 타자로 권영세 의원이 입을 연 것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묘해서 잔뜩 겁을 먹고 꼼짝 못하다가도 누가 나서면 이때다 싶은지 너도나도 겁 없이 덤빈다.

박근혜 의원을 지지하는 박사모는 권영세 의원을 격려하며 정치인으로서 쉽지 않은 용기를 보여 주었다고 박수를 보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나라당 내에서 그것도 현역 의원이 최초로 분당 가능성을 말했고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라고 했으며 오늘의 한나라당 위기는 모두 대통령한테서 나왔고, 모든 책임도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대통령 책임론을 정면에서 거론했다.

이어서 이런 상태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계속해서 당에 남아 있을 명분은 없다고 지적하며 간곡한 부탁의 말도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 부탁드린다. 이제 물러설 곳은 없다. 한나라당의 회생을 위하여, 그리고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하여 탈당하라.”

권영세 의원이 불을 지핀 대통령의 탈당요구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는지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는 속단 금물이다. 그러나 일단 물꼬가 터졌다는 의미에서 온 국민의 관심이 증폭될 것이다.

거대한 댐의 붕괴도 쥐구멍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집권여당.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 과연 지금 레임덕의 물꼬가 터졌는가.

그러나 탈당이 거론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공불락으로 자만하던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국민은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2010년 6월 28일
이 기 명(전 노무현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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