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 충청북도 단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까지 조그마한 산골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경찰 공무원이신 아버지의 발령근무지에 따라 영광, 목포, 신안군 압해도 등을 떠돌며 2년을 보낸 후 5학년이 되던 해 광주 수창초등학교로 자리를 잡았다.

1950년생인 장휘국은 소위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살아왔다. 6남2녀 중 넷째 아들이었던 장휘국은 "가난을 빼놓고 내 청소년 시절을 이야기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 유세 중인 장휘국 광주교육감 후보. ⓒ광주인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집안사정은 더욱 어려워졌고, 어머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어물 경매장에 나가 행상을 하셨다. 광주서중을 다녔던 장휘국은 등록금 미납자 명단의 단골손님이었다. 심지어 등록금을 계속 못내서 교실 밖으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던 장휘국은 그 당시 가난이 참 창피했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겨우 친척들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장휘국은 광주서중 졸업생 대부분이 진학하는 광주일고나 서울소재 고등학교로 가지 않고, 등록금 때문에 광주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장휘국은 졸업할 때까지 광주고 매점에서 학용품과 간식을 파는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면서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휘국은 약대나 치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학비도 적게 들고 취직도 빨리 할 수 있는 광주교대로 진학했다.

17년차 중견교사의 해직을 각오한 교육민주화 운동

1970년 초등교사로 발령받은 그는 1987년 교육민주화 운동에 뛰어들기 전까지 17년간 교직생활을 했다.

단순히 정의감 넘치는 젊은 교사의 치기어린 도전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면 손해보고, 어떻게 하면 승진하는지 교직사회의 섭리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중견 교사의 결단이었다.

그를 전교조 활동에 뛰어들게 한 것은 교사로서의 양심이었다. "고3 학생 300여명 중 평균 12명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여고에 재직했었다. 그런데 고3 전체를 대상으로 입시공부를 시켰다. 농번기에 초등학생들도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돕던 시절인데, 고등학생들을 매일 저녁 9~10시까지 붙잡고 있으면 아이들은 부모님 고생한다고 울면서 힘들어했다."

대학진학이 사실상 어려운 아이들에게조차 무조건 입시교육을 강제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성적이 썩 좋은 한 아이에게 전남대 진학을 권했는데 그 아이는 울면서 입학원서를 안쓰겠다고 했다. '합격해도 가정형편상 나는 못갑니다'라는 아이에게 '학교 평가를 위해 (시험을)한 번 봐줄 수 없냐'고 물었다. 4년제 대학 합격한 학생 수에 따라 학교 등급이 정해지던 때다." "그 말을 하고선 '내가 장사꾼인가'하는 자괴감이 느껴졌다. 진짜 교사라면 '그래, 너가 대학을 가기 어려우면 공무원 시험을 봐라' 혹은 '취직 준비를 하라'고 일찍부터 지도를 했어야 한다. 가정형편상 도저히 갈 수 없다는 것을 교사가 알면서도 입시교육을 시키는 것은 교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진정한 교사인가' 고뇌...해직과 복직

▲ 장휘국 광주교육감 후보. ⓒ광주인
'나는 진정한 교사인가'로 시작된 그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교육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학교에서 혼자 노력한다고 바뀌는 것은 전혀 없었고, 무력감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런 고민들을 가진 교사들이 하나 둘 모여 전교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교육민주화운동에 열성적이었던 장휘국은 1989년 전교조 전남지부 사무국장을 맡았고, 전교조 결성 주도를 이유로 해직을 당했다.

광주과학고에 근무 중 해직됐던 장휘국은 해직 투쟁중에 교사로서 가장 감동적인 경험도 할 수 있었다. "해직교사들이 통일민주당 건물 앞에서 단식농성중이었다. 그런데 광주과학고 졸업생들인 한국과학기술대(KAIST) 재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단체로 내려와 스승의 부당한 해고를 반대하는 침묵․연좌 농성을 벌였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1994년 복직되어 전교조 광주지부장을 역임한 그는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고 사회활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그는 활동영역은 교육운동에만 머물지 않았고 반부패국민운동광주본부, 광주전남언론개혁시민연대, 우리겨레하나되기 광주전남운동본부 등의 공동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 무등산에서 쓰레기 되가져오기, 나무에 복토주기, 공유화 운동 등의 환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이 인정받아 그는 국무총리에게 교육유공자 표창과 환경부장관에게 환경운동유공자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어 그는 교육행정 영역에 뛰어들어 교육감을 견제.감시하는 광주교육위원으로 활동하다가, 광주교육을 바꾸기 위해 교육감 선거에 직접 출마했다.

그는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우리의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을 되새기고 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곧은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다는 다짐이다.

"가정형편도 괜찮고, 가정에서 사랑받고, 공부도 잘하고, 행동도 잘하는 아이들이 있다. 반면 진짜 교사가 아니면 보살펴줄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 가정도, 사회도 돌보지 않는 그런 아이들은 공부도 못하고 행동도 거칠 수 있다. 그러나 모름지기 교사라면 그런 아이들을 품어서 일탈 없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돌봐줘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현직 교사는 아니지만 그는 천상 '선생님'의 마음이다. 20여년 전 입시교육에 맞서 해직까지 무릅쓰며 싸워왔던 장휘국은 이제 당당하게 광주시민의 힘으로 광주시교육감에 당선되어 입시교육으로 황폐화되는 광주교육을 광주시민과 함께 되살릴 각오다.

○ 제자들이 바라 본 장휘국
- “대한민국 참교육을 24시간 고민하던 선생님” (박성훈 광주과학고 제자, 현재 순천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 “우리들에게 꿈을 심어주시던 선생님” (윤순기 광주충장중학교 제자)

- “공부에 지친 학생들의 발을 씻겨준 선생님” (남성숙 전남 담양여고 제자, 현 여성단체 재직)

- “일방적 가르침보다 학생 스스로 판단하도록 배려” (라준영 광주과학고 제자, 현 대학교수)

- “참교육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생님” (박용득 광주충장중학교 제자)

- “매사에 진지하고 적극적인 선생님” (김옥실 전남 담양여고 제자, 현 담양여고 교사)

- “늘 자신을 꾸짖던 선생님” (박종숙 전남 담양여고 제자)

- “열정적으로 수업을 가르치셨던 선생님” (전치우 전남 노화중학교 제자, 현 한국전력공사 재직)

- “꼴등을 해도 그 아이에게 꿈을 심어줬던 선생님” (정애종 전남 담양여고 제자, 현 여행사 대표)

- “누구에게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 (임화선 전남 노화중학교 제자, 현 전업주부)

○ 동료들이 바라 본 장휘국
- “교육위원으로서 학교비리를 옴 몸으로 파헤쳤던 사람” (윤보현 초등교사 38년 경력)

- “우리들의 영원한 1번, 장휘국 친구” (박성수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광주고 17회 동기동창)

- “밤을 새워가며 수업자료 준비했던 교사, 그리고 교육위원” (성길모 전남화순교육청 교육장, 광주교대 8회 동창)

-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연금술사, 장휘국” (정팔기 광주서중.일고 43회 동창)

- “늘 한결같은 사람” (오종렬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

- “생각을 실천하는, 발로 뛰는 참일꾼” (김선호 광주효광중학교 교장)

- “장휘국은 물과 같은 절대적 존재입니다” (조수웅 전남문인협회장)

- “교육에 대하여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분” (이세천 광주상무고등학교 교감)

- “늘 푸른 소나무처럼, 장휘국” (구제섭 광주남초등학교 교감)

- “속이 깊고 넓은 사람, 장휘국” (이인범 시인, 전 중등학교 교사)

-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남겼던 장휘국” (박상철 광주서광초등학교 교사)

- “바보 노무현, 바보 장휘국” (고익종 전남고등학교 교사)

- “바른생활의 멋진 사나이” (김선영 전 초등학교 교사)

- “닫힌 교문을 열게 했던 장휘국” (정병표 광주치평중학교 교장)

- “전교조 그 자체이며, 나의 행운인 장휘국 선생님” (이효영 전 전교조 광주지부장)

-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부모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최은순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광주지부장)

● 학력사항
- 1950년 8월 충북 단양 출생
- 광주수창초, 광주서중, 광주고, 광주교육대학교 졸업
- 조선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
- 초·중등 교사생활 28년(광주고, 광주과학고 등)
- 조선대학교 사학과 강사
- 교육민주화운동으로 해직
- 2010 광주광역시교육감 시민추대위 추대후보

● 병 역
1969. 6~1970.2 육군 예비역하사(RNTC 전역)

● 경력사항
대표 경력
‣ 전교조 광주지부장(전)
‣ 반부패국민운동 광주본부 공동대표(전)

- 전교조 광주지부장(전)
- 반부패국민운동광주본부 공동대표(전)
- 광주광역시 교육위원(현)
- 광주전남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 광주학생인권조례제정추진위원회 대표(현)
- 새교육공동체광주시민모임 공동대표
-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부본부장
- (사)광주교육문제연구소 이사(현)
- (사)우리겨레하나되기 광주전남운동본부 공동대표(현)
- (사)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공동의장(현)
- (사)광주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현)
- (사)북구자활후견센터 ‘일하는 사람들’ 이사(현)
- (재)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사
- (재)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후원회 상임위원(현)
- 광주환경교원협의회 대표(현)
- 무등산사랑청소년환경학교 교장(현)

● 훈·표창
- 국무총리 표창장(교육유공자 수상)
- 환경부장관 표창장(환경의날 기념 환경운동유공자 수상)
- 광주광역시장 표창장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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