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회의 릴레이 기고] 영산강을 두 번 죽이지 마라!

나주 삼한지테마파크에서 내려다본 영산강은 굽이굽이 굴곡 많은 남도를 닮았다. 강을 끼고 펼쳐진 광활한 벌판은 기꺼이 드라마 <주몽>의 주무대가 되어 주었다.

위로 무등산, 백암산에서 흐르는 젖줄은 마르지 않고 나주평야를 적시며 물고기를 산란케 하고, 벼랑의 넌출 한 줄기조차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는 뱃길을 따라 일주일 뒤 영산포에 닿으면서 특유의 알싸한 맛으로 삭아 뭇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홍어의 본고장 영산포는 번성했다 적어도 하구둑이 생기기 전 까지는.

1981년에 완공되었다는 하구둑 덕에 더 많은 농사를 짓고, 홍수와 가뭄에도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자연의 흐름을 교란한 무지의 대가는 침전물의 오염과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다는 수질이 말해준다. 홍어와 멸치젓을 실은 배들은 고사하고 작은 어선조차 보이지 않는 강,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버린 강.
바다와의 연결이 끊긴 데 이어 보 물막이 작업이 시작되면서 영산강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공사가 한창인 강을 따라 둑길로 천천히 나아갔다. 군데군데 원색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무슨 표시일까? 모내기가 한창이어야 할 이 봄날에 농부 하나 보이지 않는 들은 참으로 황망하다. 보이느니 포클레인이요, 들리느니 먼지 폴폴 날리며 달리는 덤프트럭의 소음이다. 죽산보와 승촌보가 건설되면 주변 지하수 수위가 높아져 여의도 세 배 규모의 농경지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은 비단 전문가의 말 뿐이 아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에도 환경부와 시행사들은 피해 없음으로 일관하고 있다.

삼한지테마파크가 마주보이는 죽산1구, 죽지마을 앞에서 인부 두 사람이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 몇 마디를 꺼내며 묻자 보다보다 이런 공사는 처음이란다. 야근까지 강해해 실효성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보가 터지믄 저짝 마을이 위험하제. 그라고 난 담에 인제라먼 무슨 소용이까이!”
윗사람들은 모다 경상도에서 온 모양이라 말도 제대로 못 붙이겠다는 인부의 하소연을 뒤로 하고 강가로 나갔다. 파헤쳐진 물길 위에서 영문도 모른 체 두루미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긴 목을 빼고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주몽은 다시 말을 타고 힘차게 달릴 수 있을까? 모래톱은 깎이고, 풀꽃들은 사라지고 제아무리 좋은 조경수로, 잔디로 치장을 한들 어울리는 풍광은 아닐 터. 강변 유채꽃이 사라져버린 홍어축제에서 탁배기 한 잔 걸친들 신명이 날까?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배경이 된 강은 죽음의 강으로 전락해 엄마야 “누나야 다시는 강변에 살지 말자” 할까?

사진으로만 보았던 해오름의 몽환적인 동섬의 풍경이 아득했다. 누군가는 전라도의 작은 우포늪이라고 부르던 섬. 부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영원하기를.

군데군데 떠오른 섬은 나무들을 키우고, 나뭇가지에 새들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때가 되면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사라져버린 고향을 보며 화들짝 놀라 헤매지 않을까.

죽산보에서 20여km 상류의 승촌보를 찾아가다 근처에서 길을 잃었다. 운전자가 없는 트럭 하나가 떠억 버티고 있으니 후진하며 나오다가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이곳의 주 소득원은 미나리다. 봄이 오면 막 건져 올린 연한 미나리를 몇 다발씩 사들고 가 이웃들과 나눠먹고는 했었다.
좁은 농로를 빙빙 헤매기를 몇 번. 겨우 다리를 건너서 내려다본 공사현장은 참담했다. 온전한 몸을 해부하기 위해 갈기갈기 살점을 찢고, 피의 순환을 막아놓은 꼴이다. 철심을 박고 파헤치고 또 파헤치고 콘크리트를 입히고 수술도 이런 수술이 없다.

정자에서 놀던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우르르 마을 아래로 달리고 있다. 포클레인이 그 뒤를 따라가더니 미나리꽝의 미나리를 갈아엎는다.

이것이 개발인가? 아래는 S중공업 위에는 H건설 강마다 건설사들의 나눠 먹기식 공사로 한반도가 파헤쳐지는 것을 두 눈 뜨고는 볼 수가 없다. 이것이 이천년을 흘러온 남도의 숨결, 새롭게 태어나는 영산강의 힘찬 기상이라고? 지역민을 배제한 지역경제 활성화라고? 하기사, 망월묘역에서 난데없는 방아타령을 부르지 못해 안달하던 황당한 정부의 국책사업이니 오죽하랴.

두 개의 보를 만드는 공사가 이러한데 한강이나 낙동강은 상상할 수도 없겠구나. 어서 빨리 큰물이 져서 이 공사가 중단되기를 바란다는 주민의 말이 뼈아프다. 온 줄도 모르게 가버리는 속절없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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