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지방선거, 영혼 잃은 언론의 직무유기…합리적 의문 내던진 언론 뉴스검색 제공제외

검찰이 지난해 연말 '곽영욱 사건'을 놓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압박할 때도 그랬다. "검찰이 설마 생사람을 잡겠느냐" "한명숙 총리 서울시장 출마는 물 건너 간 것 아니냐." 여의도 정가 주변의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반응이었다.

검찰이 전직 총리를 상대로 체포영장 집행이라는 강수를 두는 것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검찰의 그런 행동에 '정치적 의도'는 없었는지 합리적 의문이 필요했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인 언론인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검찰은 언론의 생리를 꿰뚫고 있었고, 적당한 정보를 여러 언론에 나눠주며 '단독 보도'의 스릴을 맛보게 했다. 4월9일 법원이 1심 판결을 하기 전까지 검찰 행위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적어도 깨끗한 이미지를 지녔던 전직 총리의 도덕성 의혹을 부풀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한명숙 무죄'로 나왔다. 사실 파악 노력도 진실 파악 노력도 게을리 하던 언론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2010 지방선거가 정확하게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언론은 다시 '합리적 의문'에 눈을 감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가 왜 그렇게 언론장악을 강행하려 했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선거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초반부터 지금 중반전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특징은 한나라당에 불리한 의제는 언론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그 자리는 '천안함 이슈'가 들어차 있다는 점이다. 무상급식, 4대강사업, 세종시 수정 등 주요 쟁점 역시 한나라당에 불리한 까닭으로 언론의 무관심 대상에 놓여 있다.

대통령과 특수관계인 인물이 공영방송 수장에 앉아 있고, 큰집에서 조인트를 까였다고 지목 받는 인물이 다른 공영방송 수장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지방선거 '공정 보도'에 대한 근본적 의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다수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여러 경제지, 통신사 등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선거 보도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 광고 때문인지,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간부들의 보신주의 때문인지, 젊은 언론인들의 자기검열 때문인지 언론의 '합리적 의문'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5월20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바로 그 날에 두 달 전에 발생했던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할 이유가 있었는지, 그 날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 가스터빈실 인양과 분석 작업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원인 결과 발표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가.

파란색 매직으로 1번이라고 쓴 게 정말로 결정적 물증이라고 볼 수 있는지, 1번을 북한 글씨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 등 합리적 의문이 필요했지만 언론은 대충 넘어갔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다수 언론은 그냥 정부가 말하는 데로 받아쓰고 있을 뿐이다. 26일에는 한국과 미국의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이 또 주요 방송 생중계를 통해 전국에 전파를 탔다. 물론 내용의 핵심은 천안함 문제이다.

지방선거는 이미 언론의 주요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구색 맞추기용 뉴스일 뿐이다. KBS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당일인 5월20일 첫 번째 뉴스부터 스물 여섯 번째 뉴스까지 천안함 소식으로 도배하고, 스물 일곱 번째 뉴스에서 지방선거 소식을 전한 현실은 '김인규 KBS'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언론계 안팎으로부터 공영방송 수장을 맡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인물이 KBS를 이끄는 동안 선거에서 KBS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언론은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

언론이 지방선거 소식을 전하기는 한다. 서울 인천 경기에서 한나라당이 유리하다, 심지어 큰 변화가 없으면 한나라당 우세로 끝나지 않겠느냐, 이런 류의 보도를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물론 주장의 근거는 여론조사 결과이다. 하지만 최근 2년 간 수도권 재보궐 선거(기초단체장, 국회의원)에전패한 배경은 무었인지, 여론조사를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지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언론인들은 많지 않다.

언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천안함으로 뉴스를 도배하고, 지방선거에서 특정 정당 홍보요원처럼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하면 정부 광고가 쏟아지고 자기의 부장 국장 논설위원 자리가 보장되는가. 아니면 언론인 퇴직 이후 '따뜻한 미래'가 보장되는가.

언론이 합리적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더는 언론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냥 권력의 충실한 소모품일 뿐이다. 언론이 권력에 부역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동안 한반도는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언론은 '전쟁 불사'를 외치고 있다. 한번 물어보자. 그렇게 주장하는 그 언론인들은 본인이, 본인의 자식들이, 조카들이 전쟁터에 나서는 것에 대해 찬성하나. 국지전이라도 벌어지고 예비군 동원령이 발효되면 군대를 제대한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예비군들은 다시 군대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 대상에는 언론인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전쟁불사를 외치면서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군 면제' 최고위층도 그렇지만, 그들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 '묻지 마' 받아쓰기 보도를 일삼는 그런 언론들도 정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언론장악' 부속품이 돼 버린 언론인들, 그렇게 살아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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