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구도 흔드는 ‘정서 충돌’

2010 지방선거에서 두가지 바람이 불고 있다. ‘노풍’ 대 ‘북풍’ 하나는 예고된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세력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바람이다. 여권과 일부 언론은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북풍몰이’에 공을 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 열기가 MB정권 심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선거 전략이다. 지방선거를 좌우이념 대결로 몰아 반사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전략임을 한눈에 알 수 있지만 두려움을 자극하는 ‘북풍’과 안타까움에 바탕을 둔 ‘노풍’에 대해 유권자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쉽게 점칠 수 없다.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기 때문이다./<미디어오늘> 편집자

선거를 가르는 주요 변수는 인물과 정책, 정당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변수는 선거구도이다. 특히 지방선거처럼 8표나 행사해야 하는 복잡한 선거에서는 선거구도에 의한 ‘묻지 마 투표’가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50% 안팎인 선거이다. 2006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51.6%로 나타났다. 유권자 둘 중 하나는 투표를 하지 않는 셈이다.

여권과 야권 중 어느 쪽 지지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투표장을 찾는지에 따라 선거 판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을 위한 선거로 인식되던 때도 있었다. ‘낮은 투표율=한나라당 승리’라는 공식이 형성될 때이다. 그러나 낮은 투표율이 반드시 한나라당 승리를 담보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결과가 최근 선거에서 잇달아 나왔다.

‘낮은 투표율=한나라 유리’ 공식 깨져

2008년 7월30일 서울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됐던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는 ‘MB교육 심판’을 내걸었던 주경복 후보가 서울 25개구 가운데 17개 구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강남 3구의 몰표로 공정택 후보가 진땀승을 거뒀지만, 서울 각 지역의 바닥민심을 확인해준 선거였다. 당시 투표율은 15.5%에 불과했다.

2009년 4월8일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는 사실상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김상곤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보수성향 후보들을 누르고 당선됐다. 과천 일산 등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완승을 이끌었던 지역까지 김상곤 후보가 승리해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당시 선거 투표율은 12.3%에 머물렀다.

2009년 10월28일 열렸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여야 판세를 갈랐던 핵심 지역은 수원시 장안구였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지지가 강한 곳이었다. 한나라당은 방송인 출신인 박찬숙 전 의원을 내세워 인지도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반면 민주당은 지역 정치인 출신인 이찬열 후보를 내세웠다. 중앙정치 무대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민주당 후보는 10월 초만 해도 한나라당 후보에 20% 포인트 정도 지지율에서 밀렸다.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 강세는 선거 전날까지 이어졌지만, 선거 결과는 민주당 후보의 7% 포인트 승리였다.

여당 위기론 공론화, 보수층 결집 기대

중앙일보는 10월29일자 1면에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난감한 모습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내보내며 <한나라 수도권에서 졌다>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수원 장안구 투표율은 35.8%로 조사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나라당 정당 지지율이 야당에 밀렸던 시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시기 정도이다. 각종 선거를 치를 때 한나라당 지지율은 언제나 부동의 1위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2008년 4월 18대 총선 이후 각종 선거에서 ‘쓴 맛’을 봐야 했다.

이유는 표의 응집력 차이다.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신문이 천안함 사건 이후 ‘북풍 몰이’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여론조사 수치와 바닥 민심이 다를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박순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우리 한나라당이 매우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특히 수도권 지역에서 빨간불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방선거 전략을 총괄하는 정두언 의원은 “서울 강남 빼고 다 어렵다”면서 “엄살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현실로 드러난 ‘노풍’ 파괴력

북풍이 지방선거 중요 변수라는 데는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다만 북풍이 80~90년대와 같은 ‘파괴력’을 가져올 것인지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북풍’을 상쇄하고도 남을 ‘노풍’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500만 명의 조문객을 몰고 왔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분노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끝난 지 열흘 후에 열린다.

민주당 기초단체장 경선에서는 이미 ‘노무현 후광효과’가 만만치 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여론조사 경선에서 자신의 직책 앞에 노무현 정부와의 인연을 넣느냐, 빼느냐에 따라 판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노무현 후광효과가 지방선거에서 실제 표심으로 연결될 경우 주요 접전 지역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북풍을 자극해 노풍을 차단하겠다는 여권과 일부 보수신문 시도에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을지, 그 결과에 따라 선거 판도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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