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창]반 민주, 반 공정성 폭거 지탄 받을 것

법치사회에서 법과 원칙에 대한 수호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없다. 입법부가 사법부의 판결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면 법적절차에 따라 불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존재방식이며 이것은 상호존중, 상호감시,견제체제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최근 조전혁 국회의원(한나라당)이 법원 결정을 잇따라 무시하고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명단 공개에 동조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김효재·정두언 의원 등 1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조 의원의 싸움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조 의원 혼자 골목길에서 좌파에게 뭇매를 맞게 해서는 안된다”며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동참하자고 제안했다.

법치를 부정하는 여당의원들의 집단행동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법원의 권위와 존재자체를 거부하는 폭력적 행위다. 전교조 명단 공개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법원의 결정이 내려진 뒤 취하고 있는 여당 의원들의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1심 판결이 내려진 것이고 불만이 있다면 2 심 등 다른 법적 조처를 취하여 제도권안에서 문제해결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 의원은 법원의 판결을 거듭 부정했다. 여당 의원들은 집단적으로 ‘좌파’운운 하며 법치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였다. 향후 일반 시민이 법원 판결에 불복해서 이런 행태를 보이면 무엇이라고 비난할 것인가. 더구나 법을 만드는 입법의원들이 스스로 법치를 부정하고 힘의 논리에 기대는 모습은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반민주적 폭거로 지탄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논조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각 신문사의 주장을 담은 사설을 보면 ‘법치부정행태’를 비판하거나 옹호하거나 무시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정 신문만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편향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어느 쪽 의견을 취하든 다른 신문의 논리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미디어의 특성, 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는 이번 사태에 대해 매우 단호한 어조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겨레신문(5월1일자) 사설을 보면, “한나라당 떼법 시위는 ‘국가 변란 행위’다”라는 제목으로 “이것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무법천지다. 법치주의는 능멸당했고, 헌정질서는 유린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인터넷 누리집에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공개하고 나선 것은 단순히 전교조 죽이기나 사법부 흔들기 차원을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사법부의 판단이 싫다고 다른 의원들까지 무리를 지어 법원 결정문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리려는 행동이야말로 정확히 조폭들의 모습이다. 이런 집단행동의 밑바탕에는 ‘떼를 지어 위법행위를 저지르면 법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오만하고 교활한 계산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사설(5월1일)에서도 “조전혁 의원의 판결 불복 및 대(對)법원투쟁에 동참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막힌 일이다. 이들의 행태는 민주사회의 기본 구성원리인 법치주의를 명백히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시위ㆍ파업 때마다 원칙적 대응을 촉구하면서 부르짖던 법치주의는 무엇이며,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국회의원 선서는 또 무엇인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향신문 사설 역시 “정말인지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언동들이다. 집권 여당 의원이 한 사람도 아니고 조직적으로 법원 결정에 불복하자며 어깨를 겯고 나섰으니 제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하급심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2심도 있고 3심도 있다. 이런 절차를 밟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떼를 지어 판결문을 걷어찬다면 재판 제도는 애당초 둘 필요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경향 사설은 더 나아가 “한나라당이 누가 봐도 무리한 전교조 명단 공개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6월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반(反)전교조’ 정서에 불을 붙여보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며 그 배경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역시 달랐다. 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역시 ‘조중동’이라는 한묶음에서 옹호, 제한적 비판, 무시 등의 행태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4월 29일자 사설 “시민 배심원이라면 전교조 명단 공개 금지했을까”라는 제목에서 “이번 판결을 내린 판사는 어디 한번 친가(親家) 쪽 가족들, 처가(妻家) 쪽 가족들에게 자신의 결정이 옳은가 그른가를 물어보라.”라며 1심판결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법치부정 사태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중앙일보의 경우 신중한 절충적 자세를 취했다. 중앙 사설(5월1일자) “조 의원은 승복하고, 전교조는 명단 자진공개를”이라는 제목에서 “여당 의원들이 법원 결정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형국이다. 여당과 사법부 간 심각한 갈등이 우려된다.”며 “‘조폭 판결’ ‘판사의 무모한 도발에 대한 결연한 대응’ 운운하며 법원 판결에 집단 불복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행태가 아니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어서 “떳떳하게 명단을 자진 공개하고 학생·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진정한 교사 집단으로 거듭나는 게 전교조가 살길이다.”라며 명단 자진공개를 주장했다.

동아일보 사설(5월1일자)의 경우, “학부모는 ‘교원평가 거부’ 교사 명단 알고 싶다”라는 제목에서 “전교조는 ‘명단 공개는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하지만 어떤 부모가 빨치산을 미화할 정도로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교사에게 자녀 교육을 맡기고 싶겠는가. 어떤 부모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교사가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교원평가를 거부하는 것을 납득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동아는 정작 여당의원들의 법치 부정 행태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짐짓 눈감아 주는 행태를 보였다.

시대를 넘어 논리의 일관성, 공정성은 모든 언론이 추구해야 할 주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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