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민주주의] 46. 입이 백개라도 할말 없는 군
천안함 사고는 군의 존재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군은 국방을 위해 전투에 대비한 조직으로 승리를 항상 목표로 한다. 군이 패배한다는 것은 국방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전투에서의 승리는 군의 지상 목표다. 어떤 이유라 해도 승리하지 못한 군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법이다.
천안함 사고는 한미해군의 연합훈련 도중 임무를 수행하다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연합훈련은 전투상황에 대비해 모든 인원, 장비를 총가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총성만 울리지 않았지 그것은 전투와 흡사한 상황이다. 천안함은 전투상황에 대비한 훈련 도중 침몰했다. 천안함 주변에 최첨단 함정들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는 상황 속에서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수십 명의 장병이 극도로 긴장된 훈련 상황에서 목숨을 잃은 비극을 막아야 하는 것이 군의 임무였고 군 최고 명령권자들은 이 점에 대해 군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질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소리는 작은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군은 적군의 불의의 공격에 언제나 대비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를 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점을 망각한 것은 비극적 최후를 마친 장병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다.
천안함 사고 뒤처리는 군이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목표로 국민과 정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 곧 본격화될 감사원의 감사에서 다뤄질 목록만 보아도 이번 비극이 어느 방향으로 정리되어야 할지는 누구의 눈에도 뻔하다. 사고 발생 시점이 9시15분에서 45분까지 4차례나 혼선을 빚었고, 지휘보고 체계의 문제점도 이미 공개된 상황이다. 합참의장이 사고 후 49분, 김태영 국방장관은 52분 만에 첫 보고를 받는 등 보고체계에 큰 구멍이 뚫린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이 생존자 58명을 구조하는 동안 해군은 1명도 구조하지 못했고 함미를 어선이 먼저 발견한 것도 감사 대상이다. 또한 열상감시장비 TOD 동영상 추가 존재 여부, 지진파연구소 자료 은폐 의혹도 다뤄진다.
감사원 감사를 앞둔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국방부 장관과 해군 총사령관은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 대신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쪽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소리를 되풀이 하고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일 KBS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 우리 장병들을 순국하게 한 세력에 대해선 어떤 형태든 간에 분명한 응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발언에 동의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해군참모총장이 지난 29일 천안함 장병 영결식 도중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수뇌부 앞에서 사실상 보복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부 장관과 군은 천안함의 젊은 장병들의 영결식이 끝났으면 국방과 군의 본연의 의무에 충실한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심증만 있지 실증이 전혀 없는 북한 책임론의 수위를 높이는 태도를 고집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과 동시에 군의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반성과 시정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천안함 비극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이 사죄하고 대비태세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도리다.
천안함 비극의 주인공 46명은 국민의 가슴에 묻혔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날 시점에 큰 매듭이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것도 매우 부적절한 모습으로,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이 천안함 사고를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장본인이고 그들의 그런 행동을 가능케 하는 최고 권력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면서 남북관계를 관리할 국정 최고 책임자다. 군이 비상한 상황에서 삼척동자도 비웃을 사고를 당한 것에 대해 군과 같이 책임을 지는 자세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다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군통수권자의 묵인하에 천안함 사고 뒤처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물증을 찾지 못해도 대북 대응 수위를 높일 거라는 관측이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다.
천안함 사고 한 달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고 원인에 대해 국내외에서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군의 최대의 수치다. 어뢰·버블제트냐, 침수냐, 좌초냐 등의 추측이 백출한다. 한 해 수십조 원의 국방예산이 투입되고 수년전부터 천문학적인 액수로 군 현대화가 진행되는 세계 10위권 이내의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모습이다.
외국 언론은 천안함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국내 일부 정치인, 언론의 성급한 결론과 여론몰이를 비웃고 있다.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미 해군함정 등이 동원된 합동훈련 도중 발생한 사고이지만 원인 제공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포착하지 못한 미스테리는 세계적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 정부도 다국적 사고 조사단을 발족하고 이 대통령에 중국에 가서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통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국제적 관심의 불길을 계속 부채질하고 있다. 국방은 제 나라를 스스로 지키는 것인데 수십 명의 장병이 사망한 사고 원인 규명과 대처조차 스스로 규명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지구촌에 비춰지지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