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악인 김현수 씨 · 안나푸르나봉 등반 대원

오은선 대장이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14좌 완등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고, 14좌 완등의 의미에 대한 의구심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안나푸르나 등반 경험이 있는 산악인 김현수 씨가 미디어오늘에 "14좌 완등은 상업주의가 만들어 낸 종합선물세트이며 언론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신화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도발적인 글을 보내 와 게재한다. 미디어오늘은 김씨의 주장에 반대하는 기고글을 보내온다면 언제든 게재할 방침이다. -편집자 주


지난 28일자 아침 7개 일간지 1면 머리기사는 “세계최초 히말라야 14좌 오은선”이었다. 왜 그토록 전 언론들이 “오은선 히말라야 여제 등극, 국민에 꿈과 희망을 심어준 영웅“이라며 흥분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축전으로 “과연 도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 준 인간 승리의 과정이었다. 정말 장하고 자랑스럽다”고 치하까지 했다. 오은선 대장의 14좌(좌는 일본식 표기이므로 이하 봉으로 표기) 완등이 과연 이 정도로 국가차원의 관심사항이 될 만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은 어느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통 전문산악인(아마추어)들은 프로산악인들과 후원업체, 언론사의 이벤트로 영웅 만들기를 가공하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보내고 있다. 14봉 완등이 산악사에서 갖는 의미는 차치하고 산악정신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을 우롱하는 우민화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과 진실한 가치를 보도해야 할 언론사는 합리적인 의문 없이 찬사일색이다.

▲ 동아일보 4월28일자 1면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세계 산악사에 어떤 의미일까

산악정신(Alpinism 알피니즘)은 미지의 세계를 도전하여 개척하고, 극한의 과정을 극복 하는 것이 본질이고 이로서 진정한 등반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즉,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정상에 이르거나 가파른 경사도의 절벽을 최소의 장비로 인간한계를 돌파 할 때 비로소 훌륭한 산악인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산악인이라는 ‘무상의 행위자’에게 신뢰와 사랑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오은선 씨의 14봉 세계최초 과정은 어느 것에 적용이 되는가? 스스로 길을 개척하여 올랐는가, 누군가가 설치한 로프를 잡고 올랐는가? 고난이도의 절벽을 손발 4지점을 사용하여 기어올랐는가, 완만한 길을 두발로 걸어서 올랐는가? 객관적인 인간 한계를 극복했는가 주관적인 한계를 극복했는가? 그 답은 KBS 생방송으로 확인이 되었다.

14봉 완등이라는 것은 무수한 여성 산악인들이 이미 정상을 오른 8천 미터 산을 단지 ‘14개봉’이라는 종합세트로 만들어서 여성최초 타이틀 브랜드를 부착한 것 일뿐이다. 마찬가지로 엄홍길의 인류최초 히말라야 16좌 정복도 스스로 만든 브랜드 상품일 뿐이다. 물론 그들 자신에게는 주관적인 극한의 도전이고 영광스러운 기록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월등한 세계 산악인들이 도전하여 못 올라가는 것을 그들이 올라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14개봉은 유수한 전문산악인들이 올라야할 가치가 없는 도전의 대상이기에 안 오른 것뿐이다.

위대한 도전은 인간의 능력으로 올랐을 때에만 적용된다. 돈과 물량으로 정상의 개수 채우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의 이런 행태를 두고 언론들은 ‘인류역사상 위대한 인간 승리의 대기록’이라고 호도한다.

'14좌'는 상업성이 만들어낸 종합선물세트

엄홍길 씨는 오은선 대장이 세계산악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KBS 나와서 강조하고 언론은 대서특필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소위 ‘세계 최초 16개봉’과 더불어 오은선의 ‘세계 여성 최초’가 어느 세계산악사에 기록이 되는지 밝혀주길 엄홍길 씨에게 정중히 요청한다. 과학의 네이처, 사이언스처럼 세계 산악 전문 잡지 몽따뉴, 클라이밍 같은 데서 엄씨와 오씨의 등반 행위가 기록으로 평가가 되기나 했는지 묻고 싶다. 국민들이 히말라야 정보 부재를 이용 하는 것은 산악인이라는 이미지의 도덕성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 중앙일보 4월 28일자 28면
정치·종교·인종·상업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등산의 기본이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무상의 행위이고 타이틀이 필요치 않는 평화로운 것이다. 그러나 튀는 브랜드를 필요로 하는 상업자본과 돈과 명예를 쫓는 프로산악인들이 숭고한 산악정신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다. 도전하는 산악인의 가장 큰 중심인 도덕성과 양심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런 과정 속에서 후배산악인이 목숨까지 희생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히말라야 등산은 다른 국가대표의 국제대회처럼 국내에서 예선, 본선 선발대회 검증 과정도 없다. 수억의 돈이 있으면 누구나 스스로 태극기 들고 가면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심판도 없고 시간제한도 규칙도 없다. 그런데 최고, 최초라고 누가 평가하는가? 그 평가를 비전문가인 한국 언론사들이 한다고 전문산악인(프로산악인이 아닌 아마추어)들은 조롱한다.

이는 최근 언론보도에서 증명되고 있다. 일간지 보도를 보면 히말라야 14개봉을 등정한 세계 20인 중에 한국인이 4명이나 된다며 한국이 세계 최강 산악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국위를 선양한 쾌거라고 한다. 같은 국민으로서 정말 그렇게 인정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국제 산악계에서 한국 프로산악인들의 유치한 정상정복 영웅주의 행태에 대한 냉소는 심각할 정도다. 헬기를 타고 5천 미터 중턱에 내려서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로 8천 미터 정상사냥을 하고 다시 헬기로 이동한다. 이들의 히말라야 환경오염 유발이 국제 언론에 보도까지 하는 지경이다.

'고봉 등정' 이해관계 얽매인 기업과 프로 산악인, 그리고 언론

세계 산악운동사의 전통과 역사의 핵심에 해당하는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 등이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에는 왜 14개봉 등정자가 한명도 없는지 한국 언론은 의문을 품지 않는다. 14개 봉은 단지 이벤트이지 인간의 한계 도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산악연맹(UIAA)는 등반가에 대하여 ‘공인’ ‘공식’이라는 제도가 없다. 왜냐하면 산악에서는 그것은 평가 할 대상도 조건도 아니기에 그렇다. 히말라야 8천 미터 14개봉을 오르는데 가장 큰 요인은 재력이다. 돈만 있다면 불과 3년 만에도 오를 수가 있다.

▲ 한겨레 4월 28일자 3면
한국에서 나이 30세를 전후해 체력과 기량이 뛰어난 산악인 중에서 14개봉 후원 한다고 모집하면 100명은 족히 모일 것이다. 세계 산악계에 최초 공인 자체가 없는데 최초라고 남발 하는 것은 그만큼 주최 측이 임의대로 주장하는 것이고 객관성이 없다는 증거다.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돈이 정상을 가는 것은 산악정신에 위배된다. ‘산악인’이 아니라 ‘이벤트 산악인’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 논란도 사실은 따지고 보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일부 언론들은 오씨가 14봉 완등을 인정받으려면 네팔에 거주하는 홀리 씨(87세)의 공인이 필요하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그는 개인일 뿐 객관적 평가기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네팔 정부에서 정상 등정자에게 발급하는 ‘등정확인증’도 마찬가지로 공신력이 없다. 엄격한 증빙이나 검증 절차도 없다. 등정했다고 통보하면 발급해 준다. 얼마나 엉망인가 하면 최근에 한국인 중에서 에베레스트 등정증을 받은 사람이 정상에 가지 않았음이 노출되자 본인이 실토하고 사과한 적이 있다. 다른 히말라야 등반대원 중에는 정상을 가지 않았지만 정상 등정증으로 정부 훈장을 받았으나 나중에 스스로 양심고백을 한 산악인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왜 일부 산악인들은 그토록 최초, 최고의 타이틀에 매달릴까. 그건 결국 돈과 명예 때문이다. 유명세는 곧 돈이다. 과대 포장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과 산악인의 고상한 이미지를 결합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우러러 본다. 운이 좋으면 정상정복 타이틀로 하산해 청와대에도 불려갈 수 있고, 각종 기관에서 도전정신에 대해 강연할 기회도 얻는다. 고봉 등정이 방송출연, 동기부여 강연, 자신을 위한 후원회 조직, 저서, 대기업 광고모델, 사회단체 홍보대사 위촉 등등 신분상승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타가 되는 것이다.

타이틀 쫓는 언론과 상업주의, 정치가 산악정신 죽인다

여기에는 앞서 밝혔듯이 자본과 정치, 개인의 성공 등이 만들어낸 고봉 등정에 대한 합리적 의문이 없는 언론들의 ‘영웅 만들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정보가 부족한 국민들은 언론이 그렇다고 하니 근거나 원인을 따지기 보다는 영웅찬사에 도취한다. 한국 언론은 검증과 의문에 대해 너무 인색하다. 언론에 ‘인류 최초’ ‘세계 산악사 대기록’ ‘세계 산악 최강국 한국’ ‘세계 산악계 공인’ 등 무책임한 표현에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언론의 이런 기사는 어디서 정보가 생산되는지 한번이라도 의문을 가져보고 확인을 거친 적이 있는가.

산악계의 잘못도 크다. 정보를 지원하고 산악계의 타락을 제어하는 곳이 산악단체여야 하는데, 오히려 상업주의에 편승해 눈앞의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오은선 씨를 비롯해 지금 여성 산안인들이 이른바 ‘세계최초’ 라며 경쟁하는 14봉 완등은 세계산악계가 추구하는 진정한 산악가치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산악계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산악정신 알피니즘은 도덕성과 철학을 근거로 하는 매우 고상한 취미활동이다. 여기에 타이틀을 쫓는 언론과 상업주의, 정치가 개입되면 죽음으로 연결 되는 지름길이다.” 선·후배 산악인들에게도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