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전환 시대'…다시 '리영희'다!  뉴스검색 재공제외
[화제의 책] <리영희 프리즘>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당시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간여한 적 없는 한 해직 교수가 법정에 섰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난 모든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계한 일은 없지만 거의 모든 사건의 '간접적 주범'이 됩니다. 주범인 문부식, 김은숙 두 사람의 재판에도 나는 증인으로 불려나갔어요. 내 책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고 그들이 진술했으니까."

▲ 지난 2008년 6월 5일 리영희 선생이 전남대학교 특강 모습 ⓒ전남대 제공
그는 리영희다. 1980년 프랑스의 <르몽드>는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라 불렀다. 1970~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이 말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글을 읽고 나서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 혹자는 "진실을 안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다"고도 했다. 리영희 스스로는 "그들의 '은사'가 되고자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수많은 '그들'은 한결같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

'우상'이 지배하던 시대를 '이성'의 힘으로 마주했던 그는 한 시대, 비판적 지성의 상징이었다. 시대를 고민하는 청년에게는 '사상의 은사'로, 권력에게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됐던 리영희를 다시 불러낸 책이 출간됐다.

책은 그의 팔순(2009년 12월 2일)을 기념해 기획됐지만, 그에 대한 존경만이 담긴 헌정 도서는 아니다. 리영희가 보여줬던 지성의 역할도, 그가 폭로했던 '우상'의 형상도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했지만, 저자들은 리영희라는 '프리즘'을 통해 현재를 읽는다. 바로 <리영희 프리즘>(고병권 외 지음, 사계절 펴냄)이다.

리영희, '지식'이 아닌 '각성'을 전달한 사람

책은 리영희로부터 "삶의 중요한 변곡점을 얻었다"는 홍세화를 필두로, '리영희의 제자'가 아니었다는 1990년대 학번, 2000년대 학번까지 세대를 넘나선 10명의 필자들이 참여했다. 책의 제목처럼, 이들은 모두 리영희라는 프리즘을 통해 현재의 '우상', '이성', '자유'의 의미를 되짚는다.

▲ <리영희 프리즘>(고병권 외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훌륭한 '정보'나 '견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 그는 지식을 전달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각성을 전달한 사람이었다. 각성이란 누군가를 배울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나는 리영희를 통해 보건대, 스승이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리영희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선생님'이 되어버린 지금, 저자들에게 그는 새로운 지성, 새로운 교양을 배출해내는 산파다.

고병권은 리영희가 말한 '우상 파괴'란 "사유의 전제까지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힘"이라는 점을 되짚으며, 그런 '의식화의 과정'이 곧 '민주화'라고 분석한다. 이찬수는 일관된 종교 비판자였지만 누구보다 종교의 가치를 좇았던 리영희를 통해, 제도와 교리의 감옥에서 벗어난 진정한 종교가 무엇인지 되새긴다.

그를 통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이 시대에 지식인의 책무를 묻고(이대근), 사회과학이 던져야 할 고민은 무엇인지(은수미), 자본의 '부속품'이 아닌 기자 정신은 무엇인지(안수찬)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우리를 '각성'케 한 리영희가 남긴 숙제다.

'우상'과 '이성'이 모호한 시대…다시 리영희를 불러내는 이유

그렇다면 지금, 왜 하필 '리영희'인가. 김동춘은 '냉전의 우상'을 대체한 '시장의 우상'을 꼬집으며, 외적인 전쟁 상태를 내면화한 한국인의 자화상을 고발한다. 홍세화는 "인간의 본성인 자유를 지향하며 일생 동안 시대와 치열하게 마주했던" 리영희와는 달리, 자본의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 사람들이 "편안하게 죽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의 물리적 폭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해야 했던 사람들은 오늘 오로지 '하반신적 욕구우월주의'만 살아 꿈틀대는 사회에서 자본의 힘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그들은 복종하면서도 복종하는지 알지 못한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임을 알아차릴 때 저항을 모색하거나 반란을 꾀하기도 하지만, 노예임을 모를 때는 다만 '편안하게' 죽어간다.

과거 자본 권력은 정치 권력 뒤에 숨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자본의 지배 방식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인 자유를 지향하여 일생 동안 시대와 치열하게 마주했던 리영희를 오늘 여기에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유다."

▲ 리영희 교수. ⓒ시민의소리 제공
한윤형은 리영희가 말하던 '자유' 대신 (자본주의로의) '편입'을 갈망하는 대학생의 모습을 통해, '우상'과 '이성'의 구별이 모호해진 현대인의 '분열증적 자화상'을 짚어낸다. '편입'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상은 바로 '삶 자체'이며 이성은 그를 향해 달려가는 '도구'일 뿐이다.

리영희에 의해 처형됐던 '우상'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훨씬 모호하고 복잡한 형태로 살아남았다. 물신주의라는 우상을 깨뜨리기 위해 고투했던 리영희 사상의 '당대적 해석'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윗 기사는 <프레시안>에 게재 된 것을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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