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에도 쉼표를 찍어보세요


마음의 쉼표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습니까(도종환 지음/프레시안북/256쪽/12,000원)

▲ 마음의 쉼표(프레시안북)
도종환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아니 그는 시인이기 전에 선생님입니다.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했다가 해직되기도 했습니다. 그 즈음에 그는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으로 대중적인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길은 굽이치는 우리 역사의 갈래만큼이나 굽이칩니다. 선생님으로, 시인으로, 요즘에는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그리고 앞으로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 충청북도 교육감에 나설 수 있다고 합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처럼 진보진영의 교육감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지요. 그 한 가지, 한 가지 다 쉽지 않은 삶일 것입니다. 때론 역사의 전면에서, 때론 중학교 선생님으로, 또 삶과 사회의 진실을 시와 산문에 실어서 역사의 굽이를 헤쳐온 길입니다.

도종환의 시와 산문들을 읽다 보면, 도대체 왜 이 사람은 자신에게 이렇게 집요하게 성찰의 자를 들이대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일까 하는 물음표를 달게 합니다. 그만큼 그의 시와 산문들에서 그는 강하게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그리고 그런 성찰과 사색 위에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회를 향해 칼날 같은 비판을 시에 담아냅니다. 그가 써낸 산문도 역시 하나 하나 시와 다를 바 없이 섬세합니다. 산문이라면서 시와 같이 사색하고 성찰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그에게서 시와 산문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도종환이 이번에는 <마음의 쉼표>라는 산문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프레시안>에서 '손문상의 그림세상'을 연재하고 있는 손문상씨가 도종환의 시와 같은 산문에 맞춰 아름다운 동양화 풍경을 새겨 넣었습니다.

책에서 몇 구절을 옮겨 보겠습니다.

"봄은 소리없이 옵니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옵니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몸 바깥으로 새순과 꽃봉오리를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겨울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겨울에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봄의 나무들은 작고 여린 이 꽃을 겨울부터 준비한 것입니다."
- '누구일까요'에서(12쪽)

"...우리는 만들어진 지도를 신뢰하고 과학을 신뢰합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자료와 과학에 근거하여 길을 찾아갑니다. 이미 근거가 있고 앞선 사례가 있는 것만을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서 길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지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 '내비게이션에 없는 길'에서(32쪽)

"새로운 시대도 그렇게 옵니다. 여린 가지처럼 싱싱하게 살아 있는 젊은 소년 소녀, 연둣빛 잎처럼 푸른 젊은이들이 변화의 맨 앞에 서 있을 때 새로운 시대는 오는 겁니다. 경직된 나무, 움직임이 둔해지고 껍질이 딱딱해지는 나무에는 새로운 생명이 깃들지 않습니다. 이미 몸집이 너무 커지고 스스로를 주체하기 힘든 고목의 둥치에는 새로운 꽃이 피지 않습니다."
- '여린 가지'에서(80쪽)

"사람의 몸만 그런 게 아니라 사회도 병을 앓고 있습니다. 무능과 부조리와 부패, 비리와 뇌물과 부정직한 거래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종양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과 비인간적인 경쟁 제일주의, 시장 만능주의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만성질환입니다. 이런 병들은 쉽게 뿌리 뽑히지도 않습니다. 내성이 강해 웬만한 약은 듣지도 않습니다. 아니 이런 병을 부추겨 이득을 보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 '병은 스승이다'에서(122쪽)

그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봄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꽃을 보며, 차를 운전하다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 자신의 거처를 발견하며, 여린 가지에서 뻗어나오는 연둣빛 새순을 보며, 병에 걸려 앓다가 생각에 잠기며...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일상의 사소한 것이 다 자신과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성찰과 사색의 길로 이끄는 소중한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명절인 설입니다. 설을 보내면서 당신도 삶과 마음 속에 '쉼표'를 찍어보시기 바랍니다. '쉼표'는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그 여운처럼 몸과 마음 속에 켜켜이 쌓아둔 묵은 짐을 벗어던지고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움으로 다시 채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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