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만에 돌아온다는 복된 돼지의 해, 정해년의 문턱에 서서 되돌아본 작년 한해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던 기억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한미FTA문제는 지금도 우리에게 큰 이슈로 남아있다.

이러한 국가 간의 협약 속에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도 언제든지 자유무역이라는 명목아래 무차별적인 경쟁에 내 몰리게 될 수 있다. 전면적인 문화시장개방이 이루어진다면 당장 상업적으로 발달한 영화, 방송 음반분야가 거대 미디어기업이 생산한 문화상품과의 경쟁에 내몰려 큰 타격을 입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순수예술도 자유무역의 파고 앞에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순수예술도 산업논리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의무이자 권리인 각종 문화지원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 무역은 우리 문화정체성을 파괴하고, 한국의 문화수용자들에게 획일화된 하나의 문화만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사실, 문화는 한 공동체나 국가, 민족의 사상과 삶의 궤적을 표현하는 의사표현의 수단이다. 문화를 잃는다는 것은 한 공동체의 언어와 영혼을 잃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때문에 문화는 일반상품과 똑같이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경쟁력이 있는 산업은 성장하고,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는 시장경제의 논리가 문화예술분야에까지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 세계 수많은 국가와 민족의 다양한 문화 중에 시장경쟁력을 기준으로 도태되어야 할 문화는 단 한 가지도 없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순수예술분야를 지켜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래서 문화는 1등만이 살아남는다.

이런 세계 문화선진국들의 경쟁시장에서 현재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에서 열광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류열풍은 일종의 틈새시장으로 보아야한다. 즉 문화적 할인을 감안하더라도 자국의 문화상품의 수준이 크게 떨어져서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 경우, 경쟁력 있는 외국의 상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문화와 같이 경쟁력 있는 우세종들이겠지만, 하지만 이때 미국의 대중문화에 비해 경쟁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문화적 할인의 폭이 낮은 국가의 문화 산물을 위한 틈새가 생겨나게 된다. 문제는 자국의 문화 산물의 수준이 높아져서 문화적 할인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는 상황이 발생할 때 일어난다. 이럴 경우 가장 먼저 메워지는 것이 틈새시장인 것이다. 우리는 홍콩영화를 통해 이를 경험한 바 있다.

한국에서 홍콩영화의 인기가 떨어진 것은 물론 다른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한국영화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틈새시장을 메워갔던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요컨대 한국 문화 산물이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선전한 것은 한국문화 산물이 이들 지역 문화 산물에 대한 일종의 대체재였다는데 원인이 있으며, 자국의 문화 산물의 수준이 향상된다면 그 인기가 시들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류를 멈추지 않고 더 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제부터라도 대 시민 파급 효과가 큰 공연 예술분야에 대해 다각적인 정책을 입안하여 지원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공연 예술 분야와 같은 기초예술이 튼튼하지 못하면 문화산업으로서의 수익창출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한류열풍이 드라마와 CD 몇 편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광주가 기초 예술분야의 생산자들에게 천국과 같은 도시가 될 때 아시아 한류열풍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문화수도, 즉 아시아 문화중심도시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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