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마을(장흥읍 송산마을)로 작년 8월 베트남에서 새댁이 시집 왔다. 베트남새댁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를 둔 남편에게 시집 왔으니 졸지에 큰 아이가 두 명이나 생겼다. 딸 지현이는 새 엄마와 금방 친해졌다. 엄마가 김치는 아직 못 담그지만 다른 음식은 맛있다고 자랑한다. 지현이는 엄마에게 베트남 말을 배워서 아빠보다 더 잘한다.

지난 마을 청년회 모임 때 베트남의 기본적인 일상어 몇 가지를 복사하여 가져간 적이 있다. 지가 먼저 우리말을 배워야 한다, 아니다 우리도 기본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베트남어를 배우자. 설왕설래 말이 오고갔지만 판티로안(베트남새댁 이름)의 발음을 우리가 따라하며 몇 마디를 배우기로 했다.

판티로안이 시집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마을 잔치를 벌였다. 아무래도 새로 장가를 간 것을 알리고 축하해달라기보다는 멀리서 시집 온 새색시를 마을에서 따뜻하게 받아주기를 당부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판티로안은 남편이 참여하고 있는 마을청년회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마을 모임에도 남편과 함께 자주 나온다.

한 번은 음식을 가려 먹는 종교적 금기 기간이라 전혀 고기를 먹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의 관습에서 보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놔두고 먹지 않는 것은 실례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티로안이 지니며 살았던 문화(불교적 전통)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일진대 우리가 서둘러 한국문화의 습관으로 통합 시키려 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다. 하물며 전쟁에서 강대국 미국을 이긴 나라라는 자존감이 내심 있는 베트남 여자 판티로안이 이상한 분위기를 느껴 그냥 집으로 달려가 버렸다고 해서 고집 세고 이상한 여자라고 볼 일이 아닌 것이다.

지난 가을 경상도 산청에서 같은 시기에 시집 온 베트남 새댁이 남편과 함께 판티로안 집을 방문했다.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두 사람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자매가 만난 듯 얼싸안으며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옆에 있던 우리도 덩달아 즐거웠다. 그들은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자연스럽게 삶의 문화를 배우고 외로움과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판티로안의 남편 석봉씨는 이런저런 대화 속에서 어눌한 몇 마디로 농촌지역으로 시집 온 외국인 여성정책을 비판하며 생산적인 제안을 한다. "그런데 장흥군에서 제일 먼저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자꾸만 어디 데리고 놀러 다니고 그러데요. 한글도 가르치고 하는 것은 좋은데 먼저는 마을사람들이랑 많이 어울리고 한 일 년이나 있다가 어디 데리고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 사람들 언어 때문에 불편하고 그런 건 없어요." 비교적 화목한 마을 분위기와 외국인 새 엄마를 잘 따르는 남매가 있는 환경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괜한 투정을 하고 있다고 여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석봉씨 말 속에는 마을에서 외국인 주부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각을 돌아보게 하는 핵심적인 사항이 들어있다. 먼저는 아주 낯선 문화와 조화롭게 공존하려는 넉넉한 마을공동체문화의 활성화이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일상 속의 배려이며 마을의 이런저런 모임에서 함께하는 나눔의 문화일 것이다. 다음으로 해당 지자체 교육프로그램의 다양화이다. 그것은 강좌 중심에서 자연스런 삶이 녹아있는 현장프로그램으로 바꾸는 일이다.

멀리 문화답사를 갈 것이 아니라 사는 마을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김장도 담그고 우리 음식도 만들어 함께 먹고 즐기는 삶의 문화. 더 나아가서 각 나라의 풍습과 문화를 함께 나누는 사진 자료와 음악을 준비하여 외국인 새색시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공간의 창조까지도 생각해 본다. 이제 강좌 중심의 표준적인 교육프로그램에서 마을 속의 다양한 삶의 문화프로그램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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