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기자단과 사전조율…MB 회견때 질문 하나도 없어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에서 최대 현안인 세종시 문제가 질문에서 제외된 것은 청와대 핵심관계자와 기자단의 '합작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사전에 정치 현안 질문을 준비하면서 세종시 문제를 포함시켰다가, 청와대 조율 과정에서 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9월30일 오전 10시 주요 방송사 생중계로 진행된 특별기자회견에서 G20 한국 유치의 의미와 과정, 과제 등을 설명했다. 북핵 문제와 선거구제 개편, 행정구역 개편 등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과 이 대통령의 답변도 이어졌다.

▲ 조선일보 1일자 사설.
청와대 기자회견은 사전에 기자들과 청와대가 질문 내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게 오래된 관례이다. 기자들이 질문을 준비하면 청와대 쪽에서 대통령 답변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에 따라 청와대와 기자단은 지난달 29일 춘추관에서 만나 기자회견 질문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했다. 질문자는 한국 언론 기자 4명, 외국 언론 기자 1명 등 5명으로 정해졌다. 한국 언론은 특별기자회견 주관 방송사인 SBS가를 비롯해 일간지는 서울신문과 기호일보, 경제지는 한국경제가 포함됐다.
출입기자들은 최근 세종시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고 이 대통령 견해를 들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질문을 준비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 질문을 하지 못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현안 질문은 세종시로 하는 게 맞다는 데 (기자들이) 공감했다"며 "마침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춘추관에) 들어와서 기자회견 얘기를 하기에 정치 현안으로 세종시 질문을 하겠다고 했는데 난색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세종시 문제는 결론이 난 사항이 아니고 대통령께 보고된 사항도 아니어서 질문을 해도 원론적인 답변만 나올 것 같다'며 '질문을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질문해도 답변은 안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세종시 질문은 빠지게 됐고, 정치 현안 질문은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 등 정치개혁 문제로 방향이 달라졌다.

청와대가 세종시 현안 질문에 난색을 표한 이유는 이 대통령의 견해가 알려질 경우 대부분의 언론이 G20 유치 성과보다는 세종시 문제에 초점을 맞춰 보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판단으로 보인다. G20 유치 보고 특별기자회견을 준비했는데 다음날 주요 아침신문에 세종시 관련 기사가 집중 보도되면 홍보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기자회견이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를 듣는 자리라는 점에서 세종시 문제가 빠진 것은 논란의 대상이다.


▲ 조선일보 10월1일자 사설.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겨레 등은 1일자 신문에 세종시 문제가 빠진 것에 대한 기사를 전했고, 조선일보는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조선일보는 <변방서 중심국 된 대한민국, 그리고 부끄러운 언론>이라는 사설에서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물어보아야 할 기자들이 청와대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여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민 모두가 궁금해 하는 세종시 문제를 대통령에게 단 하나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언론 직무의 포기였다"며 "조선일보도 그 잘못된 한국 언론 속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강인선 정치부 차장 대우는 이날 칼럼에서 “대통령은 말하기 껄끄러운 이슈라 해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고, 기자들은 국민이 궁금해 할 질문은 반드시 해줘야 한다"며 "청와대 참모들이 여기 끼어들어 특정 질문 자제를 요청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기자단에서 안 받으면 그만"이라며 "그 문제(질문을 정하는 문제)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기자단에서 결정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기자들과 질문을 사전 조율한 배경을 묻자 “아무래도 특별 기자회견이고 하니까…”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 기자회견에는 당초 예정된 기자 5명 이외에 조선일보 기자도 질문 대상자가 됐다. 이 대통령과 기자들의 예정된 질의응답이 끝났는데도 방송 생중계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출입기자 가운데 경력이 가장 오래된 기자 중 한 명인 조선일보 기자에게 질문을 요청해 예정에 없었던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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