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창]박원순이 결박당한 올가미를 생각하며...

내가 처음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당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무렵. 신문사를 떠나 홀로 ‘자유기고가’ 생활을 할 때였다. 지방 주재기자들의 횡포를 한 월간지에 보도한 것을 문제삼아 기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조직에 소속된 기자의 신분으로 검사방에 취재차 들렀을 때는 검사와 함께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도 나눈 적이 있지만 소환돼 불려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갓 검사가 된 듯한 그는 초면에 먼저 성질부터냈다.

“왜 이따위 글을 쓰고 그래요?”

나는 ‘이따위 글’이라는 표현이 귀에 거슬렸지만 검사와 다퉈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 ‘무엇이 잘못됐습니까’라고 정중하게 물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나고 짜증스럽다는 듯 대꾸도 하지않고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다. 조사계장이 나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죄인 심문하듯이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과 방식에 분노가 일었지만 약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었다. 진상조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만들어가려는 듯한 행태에 자괴감과 분노,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2차 출두 날짜를 정하고 검찰문을 나섰지만 그때의 참담한 심정은 내 기억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한국이 ‘끗발의 사회’ ‘연줄의 사회’ ‘로비의 사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대책없이 검사방에 들어간 것부터 잘못이었다. 2차 출두에 앞서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으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던 타지역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

“유죄를 무죄로 만들어 달라는 것 아닙니다. 잘못이 있다면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나 제발 인간적 모멸감을 받지않도록 해주세요. 제가 검사와 싸울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얘기해놓겠습니다.”

그는 내 말에 동의해줬고 부드러운 말로 나를 위로했다. 한때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며 좀은 친해졌던 검사. 그러나 이제 타지역으로 가버렸지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한데 대해 기꺼이 나서준데 대해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2차 출두한 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해당 검사의 말과 행동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우선 호칭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 ‘김창룡씨’에서 ‘김박사님’으로 바꿔 불렀다.

“김박사님, 김박사님 같은 분이 이런 글을 자주 많이 써주는 것이 우리들이 사이비 기자 수사하는 것 보다 훨씬 낫습니다.”

나는 잠시 멍했다. ‘같은 검사 맞나‘ 어떻게 똑같은 검사입에서 이렇게 다른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바로 대응했다.

“아니 이런 글을 많이 쓰게 되면 이렇게 검찰에 불려다녀야 하는데...나더러...”

그는 더 이상 방문하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관련 저서나 논문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고 수사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그 이후 인제대학교 교수가 되고난 뒤 2천연대초, 한국기자협회 주관으로 ‘대전법조비리’사건에 대한 1심판결문을 분석하여 ‘법리 적용에 문제있다’며 기자들을 두둔하다가 이번에는 변호사로부터 명예훼손소송을 당했다. 변호사의 소송은 집요했고 변호사없이 혼자 대응한 나는 논문을 쓰고남을 분량의 노력과 정성으로 민,형사 소송을 이겼다.

참여연대를 거쳐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로 이어지는 시민운동의 대부 박원순 변호사. 그가 국정원이라는 국가조직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국정원은 소송당사자 부적격이면서도 소송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과 국민은 박원순으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시도한 여러 가지 사회활동과 나눔의 미학은 한국사회를 품격있고 따스한 공동집합체로 격상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에게 명예훼손이라는 올가미를 뒤집어 씌운다는 것은 그 개인이 아닌 그의 봉사활동과 조직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명예훼손이라는 괴물이 검찰에서 어떻게 둔갑하게 될 지 우려가 앞선다.

명예훼손을 정확하게 알라. 현재 대한민국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들은 명백한 실정법을 위반하고도 말한마디로 떼우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대법관, 법무부 장관 같은 사람들이다. 박원순에 대한 국정원의 압박에 침묵을 지키는 언론은 공익을 우선하는 언론이 아니다. 의로운 사람이 핍박받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이를 보고도 침묵하는 저널리즘은 사이비들이다. 공분하지 못하는 시민은 민주주의 시민 자격을 되물어야 한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는 누가 만들어주지않으며 너와 내가 함께 만들어내야 할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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