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민주당원] 3일 동안 1천명 시민 서명을 도둑 맞은 사연

지난 7월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시도하려다 무효논란에  그친 미디어 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이 130만명을 모았다. 광주 북갑 출신 민주당 강기정 의원도 온몸으로 미디어 악법 통과를 막으려 했다. 당시 강 의원은 이른바 '국회의 타잔' 으로 불리며 언론과 국민들에게 강하게 인식된 바 있다. 

나 역시 미디어 악법 원천 무효라는 대의에 십분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미디어 악법을 원천무효해야만 이 땅의 민주주의가 지켜진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 열심히 지역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이는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즈음 스스로가 결심한 사항이었다. 오후 4시부터 저녁7시까지 지역 주민이 가장 많이 다니는 대형상가 앞에서 하루도 빠짐 없이 서명운동을 했다. 미디어 악법 통과의 부당성을 선전하고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이 와중에 역사의 불행인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가 있었고 이러한 사정상 단 하루만에 서명 운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영결식을 마치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원내투쟁과 원외투쟁 병행을 선언했다. 원외 투쟁으로 그동안 중단하였던 미디어 악법 원천 무효투쟁을 다시 전개한다는 것. 나도 그동안 중단했던 서명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비록 며칠간의 서명운동이었지만 매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지역주민들을 직접 만나서 언론악법에 대해 설명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사흘 동안  같은 장소에서 서명운동을 펼치자 한 중학생이 친구를 데려오기도 하고 미디어 악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일부러 그 장소를 찾는 주민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간의 해프닝도 벌어졌다. 11살의 딸 아이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기 엄마에게 아빠가 불쌍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빠가 무언가를 팔거나 무언가를 사정하기 위해 가판을 벌인거라 오해한 것. 엄마가 충분히 설명해주자 그럼 당분간 휼륭한 일을 하고 있는 아빠를 절대 야단치지 말라고 했단다. 딸 아이 마음에도 나름 아빠가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다.

서명운동을 전개하자 많은 당원들이 개별적으로 찾아와 힘을 모아주기도 했다. 우리는 지역에 대한 지역민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미디어 악법에 대한 의견도 지역민과 꾸준히 나누고 있다. 

미디어 악법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은 '이렇게 서명을 받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라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미디어 악법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추상적일지라도 다들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결코 손바닥 뒤집는 것 같은 반전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의견이었다. 동안의 과정에서 패배주의적인 사고가 만연해졌음을 나는 실감했다.

나는 그 분 모두에게 말씀드렸다.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1980년 광주시민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거라고 생각하며 목숨을 바쳐 싸웠느냐고. 정의를 위해 있는 힘 다해 싸우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정의는, 역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주민들은 이러한 의견에 기꺼이 동감하며 의미 있는 서명을 해 주셨다.

3일의 성과로 약 1000여명의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그런데 3일째의 날, 서명을 다 끝내고 인근 학원에서 빌려온 책상을 반납하러 가는 사이 서명용지를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평상시처럼 공원 벤치에 서명지와 프랑카드등 다른 도구들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갔다 왔는데 서명지만 감쪽 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겨우 3분만에 벌어진 일이라 순간 눈 앞이 깜깜하고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받은 서명인데? 주민 한 분, 한 분과 이야기 나누며 서명 받았던 것이 떠올라 허망했다.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아마 폐지를 수집하시는 어르신이 폐지로 착각하고 가져갔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딸의 손을 잡고 동네를 뛰어 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영문도 모르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아버지를 무작정 뒤따랐다. 단 30초도 입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 딸인데 그날 만은 진지하게 아빠 뒤를 따라다녔다. 저도 무언가 아빠 표정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 같았다. 딸이 말했다. 아빠, 중요한 것 잊어 버렸어? 알았어. 나 그럼 조용히 있을게.

그런 딸의 마음까지를 모아 열심히 찾아봤지만 잃어버린 서명지 파일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30분을 헤매이다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가며 나는 스스로를 위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미디어악법 원천무효도 우리 국민을 위해 하는 투쟁인데 서명용지를 모르고 가져간 그 분도 분명 우리 국민이다. 아마, 조그마한 도움이 됐겠지! 아마, 서명 용지에 쓰여진 선전 내용을 그 분이 읽으셨을지도 몰라. 미디어 악법에 대해 그 분도 분명히 아셨을 거라고. 그럼 된 것 아닌가? 그리고 1000명의 이름이 들어 있으니 최소한 1000킬로그램의 무게로 돈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자위는 손에서 놓친 노란풍선처럼 허망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삶이 힘드셨을 그 분이 가져간거라고 믿으니 그나마 견딜만했다. 어쨌든 서명 운동은 계속 전개될 것이니까 말이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