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민주주의] 20. 이 대통령, 정운찬 총리 내정은 통 큰 선택

정치나 무슨 일이든지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면 눈길을 끈다. 이명박 대통령이 3일 신임 국무총리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내정한 것도 그런 경우다. 그것은 파격이다. 이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나 그의 국정 기조는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총리인선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정부 요직 인사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공식을 이 대통령이 일단 깬 것이다.

정부 인사는 인사권자와 인사권의 대상 둘을 살피게 된다. 이번 개각에서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정 전 총장을 각각 살필 때 국민적 관심을 끌 요소가 다분하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대표적 경제전문가를 총리로 낙점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취임 이래 취해온 ‘YES 맨 일색’의 인사 스타일과 크게 다르다. 야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지목받던 정 전 총장을 총리라는 중책에 기용한 것은 통 큰 선택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대통령 입장에서 어떤 성향의 인물이라 해도 자기 밑에 오게 되면 대통령 자신의 통치철학을 보좌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희망한다. 이 대통령도 정 전 총장을 총리로 내정한 것에서 그런 희망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정 전 총장이 총리로 취임한 이후 이 대통령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정치 스타일의 기본을 바꾸지 않고 정 전 총장도 자신의 학자적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면 둘은 업무 추진 과정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둘 중에 하나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정반대의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정 전 총장이 과거를 송두리째 버리고 청와대의 지침에 완전 투항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둘 다 망가지는 결과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신자유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던 학자다. 그가 신자유주의를 노 대통령보다 더 강력히 추진하는 이 대통령 정부에 몸을 던진 것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그는 지금껏 보여준 경제철학을 버리기는커녕 현 정권에서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트로이 목마’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인가, 아니면 보수 성향 일색의 행정 조직 속에서 고립된 ‘곰바우’ 총리로 전락할 것인가? 권력의 세계가 흔히 그렇듯 청와대 앞에 소신을 버리거나 변질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전락할 것인가? 여러 가지 가능성이 그 앞에 펼쳐져 있고 어떤 결과를 얻느냐 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 달렸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은 흔히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보인다. 선출직 가운데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 자신의 정치철학을 실현하려는 강한 의욕에 넘쳐 있다. 그래서 대통령 앞에서 NO를 외치는 사람을 대통령은 싫어한다. 대통령 자신의 의지나 통치 지침을 잘 파악하고 그것이 행정조직을 통해 잘 집행하는 인물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대통령이 정 전 총장을 총리로 내정한 것은 신선한 측면이 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에서 대통령은 가장 주목을 받는 정치인이다. 동일한 법체제인데도 대통령에 따라 정치 현실은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보자. 국민의 표현의 자유, 공권력 집행과정에서의 인권 보호 등은 동일한 법체계지만 이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시절에 큰 차이가 있다.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 통치권력 구조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검찰, 경찰 수뇌부가 이명박 정부 들어 노무현 정부 때와는 판이한 법 집행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도 중요하지만 정부 조직에 몸담고 있는 공직자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정부와 정당 조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 조직을 채우고 있는 사람도 매우 중요하다. 똑같은 제도라 해도 그것을 어떤 사람이 운영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선진 민주사회의 정치제도를 후진국에서 도입했을 때 엉뚱한 제도로 변질되는 등 제대로 운용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민주적 제도가 정착하고 민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그 제도를 시행하면서 민주사회가 이뤄진다. 이처럼 정치에는 그 조직을 채우는 인물의 됨됨이가 매우 중요하다. 이번 개각 이후의 미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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