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위원장 최협, 전남대 교수)와 추진단(단장 이병훈)! 지난 한 달 동안 보여준 몇 가지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도대체 ‘광주’를 어떻게 보면 이런 일들을 버젓이 벌일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못해 억장이 무너지고 말문이 막힌다.

우선 조성위원회가 회의에 참고하기 위해 실시했다는 여론조사를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참고자료를 공개하는 이례적인 행태도 문제지만 참고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는 설문의 문항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자문자답으로 채워진 설문문항에, 그것도 조사대상 1,000명 중 절반이 조금 넘는 수의 답변을 갖고 기존 설계대로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철거)는 의견이 높게 나왔다며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지역의 언론사가 많은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를 강행하여 파장을 일으킨 지 불과 며칠만의 일이다.

조성위원회의 회의 내용 또한 그렇다. 14명 조성위원 단 한사람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여 객관적인 사실 확인을 시도하거나 노력이 없이 추진단 사무실에 앉아 추진단의 설명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회의 끝에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오죽하면 전문가와 설계자의 의견을 더 들은 뒤 정부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정리를 했을까? 그 현장을 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10인 대책위원회가 원형보존을 비롯한 문제해결의 방안을 장관을 만나 협의한 후 결과를 발표하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추진단은 이른바 설명회를 통해 왜 철거를 해야 하는지를 다양하고 자상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곧바로 지역의 언론사가 나서 여론조사를 강행하였다. 누가 봐도 ‘오비이락’이다. 시쳇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도 이 정도면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지만 결과는 그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드러났다.

시민들의 뜻은 보존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것도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여론조사를 강행하였던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지역사회의 시민적 합의를 위한 시민사회의 원탁회의, 지역의 책임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10인대책위원회의 활동, 그리고 이들의 활동과 성과에 대한 5.18단체와 시도민대책위원회의 수용 입장 등으로 그동안의 갈등은 일정하게 해결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문제는 이러한 모든 과정이 추진단에 의해 부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선출직 대표로 구성된 10인 대책위원회가 지역의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면 광주시민은 자신들이 투표로 선출한 대표들마저 부정당하는 꼴이 된 셈이다. 더 가관인 것은 그런 부정에 상당한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지성과 일부 사회단체를 표방하는 집단의 이해관계이며, 지역의 일부언론의 적절한 포장이다.

‘문화광주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모임’의 성명과 일부 지역 단체의 시위가 어쩌면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지? 그 과정에 시도민대책위원회 관계자의 카메라에 돈을 나눠주는 장면까지 포착되었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일련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추진단과 일부 지역의 지성과 시민단체, 그리고 일부 언론은 시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이런 행태를 한 두 차례도 아니고 거듭하여 벌일 수 있는가?

추진단은 실무기구여서 그렇다 치자. 조성위원회가 과연 광주를 문화중심도시로 조성하려는 의지와 지혜를 갖고 있는 것인지 광주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곰곰이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추진단의 설명만 듣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추진단이 요청하니 형식을 갖춰주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하신 것인지? ‘문화중심도시’에 담겨져야 할 기본적인 철학과 가치, 그리고 그것이 추구하는 이상이 무엇인지부터 조성위원들은 재고해야 할 것으로 조인다.

조성위원들에게 광주의 현실과 미래가 전당을 비롯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에 어떻게 녹아들어야 하는지를 고민이라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광주를, 광주가 가져야 할 자존심과 지켜가야 할 가치와 정신을, 광주시민의 명예와 참을성을 시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광주시민은 정치권력이나 행정력을 앞세워 밀어붙이거나 현혹되지 않는다.

더구나 최근 광주가 선택한 영남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냈고,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늘 가슴 한켠에 담고 살아왔던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보내고 난 허탈과 비탄의 심정에 있는 시민들이다. 그리고 그 두 분을 떠나보내는 광주시민들은 예전처럼 또다시 광주의 상징이자 한국 민주화의 성지인 옛 전남도청 앞마당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눈물과 회한으로 떠나보냈다.

이제 확인된 사실과 시민의 뜻, 그리고 해결 가능한 방법이 명백해진 이상 과감하게 매듭짓자. 그 매듭을 유인촌 장관이 광주에서 문화인답게, 문화정책의 결정권자답게 정리하는 모습을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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