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MBC 사장에 공개편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말라"

뉴라이트·친여인사가 다수로 구성된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의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엄기영 MBC 사장에 대해 지난해 이명박 정부에 의해 해임됐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이 31일 "(방문진·정부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야만성과 폭력성을 폭로하기 위해서라도 포클레인으로 강제로 들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텨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엄기영 MBC 사장에 "절대 스스로 물러나지 말아야" 공개편지 기고

정 전 사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에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라는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지난해 해임되기까지의 고통과 수모를 견뎌낸 경험을 바탕으로 엄 사장에게 충고와 조언을 공개적으로 전달했다.

▲ 정연주 전 KBS 사장. ⓒ이치열 <미디어오늘>기자
정 전 사장은 편지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엄 사장이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 가슴 저미게 느낄 고뇌와 고통, 북풍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외로움을 제가 지난해 비슷한 처지에서 절실하게 경험한 터여서, 그 고뇌와 고통,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정 전 사장은 자신이 해임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아주 단순하게도 원칙의 문제였다"며 "공영방송 KBS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치적 독립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바탕은 공영방송 KBS 사장의 임기 보장이라고 믿었고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자유, 민주, 인권, 평화, 평등을 위해 온갖 희생과 고난을 치르면서 성취한 것 중 하나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었다"고 했다.

"신태섭 교수해임 부당판결·내 배임 무죄판결, 정권 야만성 폭로된 것…역사의 축복"

정 전 사장은 신태섭 교수 해임 취소판결·자신의 배임혐의 무죄판결을 들어 "'해임'에 이르기까지 온갖 무리한 짓을 다한 이 정권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여지없이 폭로됐다"며 "그런 기회를 준 것은 분명 역사의 축복이며, 그런 것을 통해 역사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정 전 사장은 엄 사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힘들고, 온갖 모욕과 비난과 인신공격이 당신에게 가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그것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이 바로 MBC 사장이 지금 이 시점에 우리 역사 앞에서 감당해야 하는 책무"라며 "그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역사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정 전 사장은 노동조합의 차이점을 들어 엄 사장이 자신보다 훨씬 '좋은 조건' 속에 놓여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노동조합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3년 8개월 동안 적대적인 노조의 저주와 해괴망칙한 인신공격을 당했고, 회사 주변은 온통 저주와 증오의 글귀로 가득찬 만장이 펄럭였습니다.…밖에서 휘몰아쳐 오는 핍박과 압박도 힘에 벅찬데, 내부에서 이렇게 나오니,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MBC 노조는 그런 악다구니 저주와 증오를 당신에게 쏟아 붓기는커녕, 지켜주겠다고,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고 나오니, 그렇다면 정말 해볼 만한 싸움 아닙니까."

"엄기영 사장 나보다 좋은 조건…노조가 모든 것 희생하겠다니 해볼 만한 싸움아닌가"

▲ 엄기영 MBC 사장. ⓒ이치열 <미디어오늘> 기자
정 전 사장은 "게다가 MBC는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니, 감사원 망나니들이 거짓, 왜곡 감사로 골탕 먹이는 짓을 할 수도 없고, 세금 소송문제가 없어서, 무슨 배임죄니 뭐니 그런 것으로 순식간에 중범으로 만드는 일은 없을 것 아닌가"라고 그 이유를 보탰다.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에 대해 정 전 사장은 "김 이사장이 지휘하는 방문진 이사회가 그 모든 총대를 대신 메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MBC에서 온갖 초강수를 두려고 할 것"이라고 지목했다.

정 전 사장은 엄 사장에게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말라"며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전 사장은 "엄 사장의 모습이나 인품이 신사여서, 이런저런 모멸에 '에이 더러운 것, 나쁜 사람들, 그냥 떠나자'고 할지도 몰라 걱정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던지고 나면, 후배들은 어찌 되며, 방송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는 MBC는 어떻게 되며,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겠느냐"고 되물었다.

정 전 사장은 "최소한 저들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폭로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역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포클레인으로 당신을 강제로 들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텨야 한다"며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많은 벗들이 당신과 함께하고 있다"고 북돋웠다.

"엄 사장, 벗들이 함께있어…최시중 방통위원장 보면 '망나니' 떠올라"

한편, 정 전 사장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이분 요즘 보면, '방통' 위원장 자리를 '방송대통령' 자리로 착각하는 것 같다"며 "KBS는 색깔 없는 방송으로 만들겠다, MBC의 정명을 찾아주겠다, EBS를 어디 하고 합치겠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이 정권의 오만함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혹평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런 오만에는 반드시 국민의 심판이 뒤따릅니다. 국민을 바보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오만한 짓을 주저 없이 함부로 하는지, 이분을 볼 때마다 조선왕조 때 참수형을 집행한 '망나니'가 떠오릅니다. 오만에 더하여 무모함까지 있습니다. 정권이 무한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오만하고 무모할까 심히 걱정이 됩니다. 이 정권은 이제 3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 게다가 레임덕이다, 대선 국면이다 어쩌고 하면 3년도 채 남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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