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의 미디어워치] 한미 대북 강경책 공조로 당분간 큰 진전 힘들 듯

남북이 추석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다. 남북은 지난 26~28일 금강산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적십자회담을 통해 오는 9월26일~10월1일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갖는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7년 10월 이래 중단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2년 만에 재개된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중단 없이 실시되어야 한다. 상봉 신청자 대부분이 일흔 이상인 고령이고 해마다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남북은 향후 이 사업을 지속해야 한다. 남북은 지난 2007년 11월의 적십자회담에서 합의한 `연간 400명 수준으로 상봉규모 확대' `화상상봉, 영상편지 교환' `전쟁시기와 그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국군 포로. 납북자)의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의 테두리 안에서 계속 해결' 등을 이행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이번 남북적십자사가 합의서를 발표한 날 북한에 나포됐던 `800연안호' 선원 4명과 선박이 풀려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북한 고위급 조문사절단의 서울 방문 등을 계기로 급반전한 남북관계의 동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북측은 최근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를 석방하고 개성공단 육로통행을 제한. 차단했던 `12.1 조치'를 해제한 바 있다.

이번 적십자 회담이 결실을 맺으면서 향후 예상되는 당국 간 회담의 전망에 일단 청신호가 켜졌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기간 발표된 ‘공동보도문’의 5개 합의사항에는 이산상봉과 함께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활성화 등이 포함되어 있어 당국 간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금강산, 개성 관광 사업은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한미 간 의견 조율이 이뤄져 머잖아 남북 당국 간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남북 교류협력 관계가 단기간에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남측은 ‘북한의 비핵화’를 관계개선의 출발점으로 강조하고 있고 북측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남측 정부는 남북 간 국면변화 흐름이 가속도를 내고 있지만 북한이 핵 문제에서 진전된 조치를 취해야 본격적인 대북 접근을 취한다는 입장이다. 남측 정부는 최근 남북 간 일련의 해빙 무드에 대해 남북관계를 변화시킬 긍정적인 새 변수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제거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남측 정부의 대북 접근 기조인 ‘비핵개방 3000’이 변화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북측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특사 조문단이 청와대를 방문함으로써 이 대통령 정부를 대화상대로 인정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그러나 그런 변화의 상한선이 어디까지 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남측 정부가 취하는 최근의 대북 정책은 미국의 그것과 유사하다. 미국은 북한의 북미 직접대화 요구에 대해 "먼저 비핵화를 약속해야 하며, 6자회담의 틀에서만 이뤄질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6자회담 핵심 참가국 순방을 통한 공조 강화를 강조하면서 방북 가능성을 차단하는 등 북한에 대한 압박과 봉쇄라는 공식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무기를 싣고 이란으로 향하던 북한 선박을 억류한 것도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의 일환이다.

미국은 대북 강경책을 강조하면서도 물밑에서는 민간 교류,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의 카드를 통해 관계 개선
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이어 현정은 현대 그룹 회장의 방북과 그 이후 북미, 남북관계는 경색국면 해소를 목표로 변화를 모색한다는 추정이 나올 정도로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은 반드시 상대방을 배려하는 기본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식의 일방적인 외교는 성공하기 어렵다. 남북한과 미국 등 한반도 문제 관련 당사자들은 이런 점을 깊이 살펴 현명한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 차원의 남북관계 복원이 전면적인 교류협력과 북미관계 개선의 첫 걸음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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