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의 미디어창] 방송통신위원장의 월권발언 논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침없는 월권적 행태가 언론계에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최 방통위원장이 최근 ‘방송의 정상화’운운하며 초법적 발언을 늘어놓고 있는데 정작 국내 주요 언론은 침묵하거나 반론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겨우 ‘경향신문’에서 “최시중 ‘색깔없는 KBS’ 등 비판 무력화 시도” 등의 제하 기사에서 이를 문제시하고 있는 정도다. 이를 보다 정확하게 지적한 기사는 ‘프레시안’의 ‘최진봉의 뷰파인더’ “<20>방통위는 언론 보도 감시 기관이 아니다”에서 나왔다.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의 최 교수는 “최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국가기관의 장이 주요 방송국에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감시의 대상인 국가기관이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 기관의 자율적인 운영에 대한 통제를 통해 언론의 권력 감시 활동을 억압하려는 시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치열 <미디어오늘> 기자
최 교수가 문제삼은 ‘이번 발언’이란 8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최 위원장이 "KBS, MBC, 그리고 EBS의 과제는 한마디로 정상화"라고 강조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각 방송사 이사회가 구조, 예산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 이라며 나아가 "각 방송사들이 제자리 돌아올 수 있도록 전면적인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다 최 위원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엄기영 MBC 사장의 거취에 대해 "최근 엄기영 사장의 진퇴문제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뒤 "이를 포함해서 MBC가 국민의 전파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방문진 이사회가 책임을 지고 소신있게 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발언에 대해 경향신문은 ‘미디어법의 강행 처리로 조·중·동 및 재벌의 방송 진출 물꼬를 터준 여권이 방송사들을 길들이기 위한 2단계 시나리오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해석과 진단을 했다.

내용을 자세히 보지않으면 방통위원장이 ‘할 말을 했을 뿐’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그의 발언 자체가 모호한 추상적인 표현 ‘정명, 정상화, 제자리, 합당한 대우, 소신있게’ 등으로 교묘하게 조합돼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원장이 이런 모호한 표현을 동원하더라도 대중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미디어는 되물어서라도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해석해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우선 그가 말하는 ‘MBC의 정명’은 무엇인가. 그가 말하는 ‘KBS, MBC, EBS의 정상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이 세 방송사의 어떤 점을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봤기에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가. 특정 방송사 사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 그가 왜 ‘이사회가 책임지고 소신있게 해 나가기를’ 요구하고 있는가. 그가 말하는 ‘MBC의 합당한 대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방문진 첫 이사회가 열린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방문진 사무실 앞에서 MBC조합원들이 부적절한 이사진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치열 <미디어오늘> 기자
기자간담회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런 내용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기자들의 실패다. 그가 기자간담회를 자처한 자리에서 자세하고 분명하게 확인했어야 했다. 물론 기자들은 내용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하더라도 직접 그의 입을 통해 분명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어느 보도를 통해서도 그가 저런 추상적인 표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의도를 확인할 수 없고 다만 언론의 해석을 통해 또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는 것은 오도의 소지가 농후하게 된다. 이것은 위험한 저널리즘의 영역이 된다.

분명한 것은 방통위원회라는 국가조직이 이를 감시, 견제하는 방송사 사장의 인사문제, 이사회의 영역까지 간섭, 지시하는 메시지가 담긴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 사장의 거취문제는 이사회에서 결정할 문제이며 보도의 편파성이나 정확성 등은 방통위원장이 지적할 사안이 아니다. 그가 ‘색깔없는 KBS’를 만들겠다는 것도 문제의 소지를 다분히 지닌 월권적 발언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KBS는 무슨 색깔이라고 본인은 생각했기에 앞으로 색깔없는 방송사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가 KBS 사장도 보도 본부장도 아닌데 어떻게 ‘색깔없는 방송사’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 모든 기사에는 그 나름의 색깔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보도기사(straight news)에서조차 색깔은 있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의 어법으로 봤을 때 ‘색깔없는 방송사’란 정부의 비판이나 견제기능을 거세시킨 관영방송으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최 교수는 “이처럼 FCC (미국연방통신위원회)가 언론사의 운영과 방송내용에 간섭을 하지 않는 이유는 언론사의 운영과 인사, 그리고 방송 내용에 대한 간섭이 언론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FCC는 방송, 통신과 관련된 법률과 규제의 제정 그리고 방송국과 통신업체의 인.허가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어떠한 권한도 갖고 있지 않은 기관이다.”라고 주장했다.

국가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의 발언이 과연 적절한지, 타기관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민주주의란 힘있는 몇 명이 모든 권력과 권한을 마음대로 휘둘러 ‘있는 색깔’조차 없게 만드는 요술을 부리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방통위원장의 초법적, 공격적 발언에 대해 방송사들은 이제 답변을 해야 할 차례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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