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초 문화부 옛 전남도청 별관 문제 결정 앞두고 갈등 재현 우려"
"1년 2개월의 논란 핵심 파악해야... 민.관.정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광주가 다시 갈등이 심화될 조짐이 보인다. 민주, 인권, 평화의 보편적 가치의 실천과 화해를 통한 세상의 진일보를 위해 평생을 살다 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나보낸 지 불과 며칠만의 일이다.

갈등의 핵심은 여전히 옛 전남도청의 별관문제이고, 갈등의 주된 내용은 서로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누구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갈등의 내용을 파악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것 또한 사실이다.

▲ 22일 저녁 옛 전남도청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은 광주시민들이 옛 전남도청 원형보존을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광주인

보존은 너무나 당연한 가치를 지키려는 몸부림이지만 철거의 주장 또한 나름의 당위성을 제시한다. 원탁회의와 10인 대책위원회가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을 거쳤고, 정상적이지 못한 과정이었지만 어쨌거나 시민의 뜻을 묻는 여론조사도 강행되었다.

도청을 보존하려는 측은 이 기회를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과 국회의원이 장관을 만나 원형보존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냈음에도 그 결과를 도청보존이라는 지역의 단일한 입장으로 세우지 못한 것이다. 처음 여론조사를 반대하다가 결과가 예측보다 높게 나오면서 다소 느슨해진 것이 아닌 것인지 돌아볼 일이다.

철거를 주장하는 측 역시 그 과정에 모두 참여했던 단체도 있고,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사람들도 있다. 한 예로 ‘문화광주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모임’이 그렇다. 이들은 이 시점에서 철거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원탁회의와 10인 대책위원회, 그리고 여론조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기 역할을 내놓았어야 했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적절한 논리를 앞세워 대응하겠다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마도 이들은 틀림없이 여론조사의 결과가 반대로 나왔더라면 더 강도 높은 목소리로 철거를 주장하고 나왔을 것이고, 그동안 지역의 시민사회가 다양한 노력 끝에 합의안도 만들고 합의안을 정부 측인 장관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도 이끌어냈지만 그 모든 과정을 여론조사의 결과에 파묻어버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거쳤다. 광주의 미래와 경제를 위한 절대적 사업이다. 노무현정부에서 결정된 일이고 현 정부 들어서는 추진만 하고 있는 사업이다. 7개의 사적을 보존하고 단 하나의 사적만 철거한다. 5.18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꼭 사적지를 보존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특별법에 의한 국책사업으로 광주가 잘못하면 사업자체가 축소되거나 물 건너 갈 수도 있다.”

언뜻 보기엔 모두 타당하고 그럴듯한 주장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논리와 주장은 세 가지만 생각하면 그 답은 오히려 명료해진다.

그 하나는 시장이 언급했듯이 국책사업이고 특별법에 의해 규정된 사업이므로 사업이 물 건너 갈 가능성은 없을 뿐 더러 부분설계변경 등의 절차를 통해 사업비를 더 끌어오면 오히려 광주에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주무장관부터 광주시민이 원한다면 그 뜻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지역민의 삶과 정서가 응축되어 있는 역사적 가치야말로 문화산업의 산술적 계산으로 계량화할 수 없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경험과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나 더 보태자면 광주는 5.18사적지 27곳 중에서 지금 온전하게 남아있는 곳이 옛 전남도청 일원의 사적지를 제외하고 어디에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늘 이런 식으로 개발논리를 앞세우고 다른 사적지도 많이 있으니 이것 정도는 허물어도 좋다는 논리를 앞세워 이제까지 모든 의미 있는 사적지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헐어버리고 다른 곳에 재현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이제 갈등은 해결되어야 한다. 보존을 주장하는 측은 조금 더 열린 자세와 전문적인 대안을 갖고 치밀하게 설득하는 정치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는 낮은 자세도 요구된다. 철거 측은 더 이상 억지논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주장해 온 이러저러한 논리와 명분은 이미 1년 2개월여 동안 충분히 논의되었고, 시민들에게도 그 사실은 충분하게 알려졌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왜 이것을 철거하려는 것인지의 의도와 입장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임을 인정하는 것이 더 지성인답고 사회운동가로서의 도덕성을 갖추는 일이다.

고 김대중 전대통령이 우리에게 주고 가신 유지가 바로 ‘합리적 문제해결을 위한 화해와 협력의 방법을 묵묵히 실천해 온 삶’이었기에 이제 국장을 치르면서 지난 10년의 민주, 인권, 평화의 현주소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되돌아보았던 것처럼 지난 1년 2개월의 논란과 갈등의 핵심과 내용이 무엇이었고,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어디에 서 있었는지 겸허한 자세로 자성해 볼 일이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