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뉴스는 “MB에 협조적” 내부비판엔 “징계” 칼날

용산 참사, 노 전 대통령 서거보도 등 시민 불만 현장서도 표출
경영진, 안팎 평가 모르쇠 “흑자전환” 강조


27일 이병순 사장이 KBS 사장으로 취임한지 1주년을 맞는다. KBS는 이를 앞두고 적자였던 경영구조를 올 상반기부터 흑자로 돌려놨으며, 이에 따라 25년째 동결된 수신료 2500원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홍보하는 데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KBS 내부와 언론계·시민단체·정치권 등에서는 이병순 사장 취임 뒤 KBS의 뉴스와 프로그램에서 권력을 향한 비판은 사라지고 되레 권력에 협조적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비판여론을 외면하거나 물타기하는 모양새가 굳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KBS가 권력의 나팔수 시절로 되돌아갔다는 평가와 함께 스스로 내세운 지표인 ‘공정·공익’과 ‘국민의 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지 않고서는 수신료 인상은커녕 수신료거부운동이 나올 판이라는 냉혹한 목소리가 KBS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KBS뉴스 “MB 띄우기·감싸기·비판여론 잠재우기”

▲ KBS 이병순 사장이 첫 출근하던 지난 해 8월 KBS사원행동의 김현석 대변인(오른쪽)과 양승동 공동대표가 서울여의도 KBS사옥 앞에 연좌해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치열 <미디어오늘> 기자 truth710@

KBS 보도본부의 한 기자는 25일 KBS 뉴스에 대해 “비판은 뉴스에서 이미 실종됐고, MB에 협조적인 보도로 굳어졌다”며 “심층적 접근도 부재할 뿐 아니라 뉴스 자체의 경쟁력도 많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시사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KBS의 신뢰도가 MBC에 뒤처진 것을 두고 “신뢰도가 떨어진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꼼꼼히 해석해야겠지만 신뢰도 하락은 분명하다”며 “1년 간 KBS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누적된 불만들이 반영된 것을 의미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은 지난 24일 열린 ‘이병순 사장 1년의 KBS 평가 토론회’에서 지난 1년 간 KBS 보도의 특성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 띄우기와 감싸기, 두둔하기 △친MB식 경제보도 △MB측근 인사에 민감한 이슈 외면 △시국선언·비정규직법·디도스공격 등 정부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 ‘비판여론 잠재우기’식 보도등으로 분류했다.

시민들의 불만을 산 대표적인 KBS 보도사례는 지난 1월말 용산참사 때와 5월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보도였다. KBS의 용산참사 보도는 “용산철거민 참사를 일반적인 화재사고와 다름없는 ‘사고’로 취급하며 참사의 근본원인은 침묵한 반면, 발화원인과 철거민 투쟁의 폭력성을 부각했다”(공공미디어연구소 2월5일 보고서) “검찰 주장 받아쓰기에 급급했고, 균형을 잃었으며 공권력과 관련된 문제를 홀대하고, 작게 처리했다”(민필규 전 KBS기자협회장)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의 노 전 대통령 서거 땐 △‘정부비판’ 인터뷰가 보도본부장의 지시로 삭제된 일(5월24일 아침뉴스) △‘관련자 인터뷰 지양하라’ 지시 의혹 △봉하마을 취재 PD 철수지시 △대한문의 시민보다 정부의 공식조문 현장을 비중 있게 보도 등의 문제로 KBS 노동조합과 기자협회·PD협회의 책임자 문책요구를 받기도 했다. 이 두 가지 KBS 뉴스 때문에 취재현장에서 기자들과 PD들은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폭행을 당했을 뿐 아니라 중계차 철수 등의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KBS 기자와 PD들은 결국 보도·TV제작·라디오·편성본부장에 대해 신임투표를 실시해 압도적인 비율로 불신임했다.

이밖에도 이명박 대통령 동정 등의 ‘일일’ 리포트·MB경제정책에 대한 친정부적 뉴스가 계속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번지기 시작한 시국선언의 물결에 대해서 KBS는 ‘보혁대결’ ‘반대하는 교수의 움직임도 구체화’(6월8·9일 <뉴스9>) 등으로 물타기했고, 비정규직법안·미디어법안 날치기처리에 대해서도 현 정부·여당의 입장에 서서 보도해 안팎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프로그램 공영성 붕괴되는 과정”

▲ 지난해 8월 이병순 KBS 사장이 첫 출근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KBS는 지난해 12월31일 밤 서울 보신각 일대 시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면서 외친 함성과 구호를 당시 생방송 중이던 재야 타종 방송에서 음향효과로 대체해 방송을 조작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이병순 체제의 KBS는 ‘권력의 나팔수’라는 오명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이후 미담방송인 <현장르포 동행>(1월8일)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미화하고, <시사기획 쌈>(2월24일)에서는 이 대통령에 대해 낯뜨거운 찬사를 한 소망교회 예배 현장을 그대로 방송했다.

지난달 5일 4대강을 심층취재한 <KBS스페셜> ‘4대강 사업, 득인가 실인가’에 대해 한 KBS 시사교양 PD는 “정부편향으로 방송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템 자체가 위에서 내려온 것으로 안다”이라며 “4대강 살리기를 하면 좋아진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막연하게 4대강 사업이 실시된다는 가정아래 여러 지엽적인 문제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달 15일부터 네 차례 연속 방영된 <국민대토론 통합의 길을 찾는다>라는 특집 토론프로그램에 대해서는 “KBS만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논점도 드러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토론 전개가 되지 않았다”며 “KBS의 프로그램이 퇴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단적인 사례“이라고 비판했다.

“춤추는 징계 칼날…의사소통의 붕괴…권위주의 복원”
이병순 체제의 KBS 조직은 사실상 수평적 팀제를 해체하고 수직적 권위주의를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장·EP 등이 신설되면서 중층적 결재구조가 형성됐고, 프로그램 기획·제작단계의 게이트키핑 과정도 강해졌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종적’ 게이트키핑이 조직구조에서 횡행하는 대신 토론과 회의문화가 사라졌으며, 옆 사람이 뭘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됐다”며 “게이트키핑을 하는 간부와 취재당사자만 남게 됐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이런 개인들이 문제점을 거른다고 공정과 공익이 실현된다는 주장은 대단히 오만한 잣대”라고 비판했다.

보도본부의 한 기자도 “내부적으로 징계라는 칼을 마구 휘두르면서 의사소통은 사실상 붕괴돼버렸다”며 “조직이 토론하고 타협하는 대화의 문화가 사라진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팀장급 이상의 고참 기자들과 평기자 사이의 대화는 단절돼있고, 중간역할의 데스크진(차장급)은 침묵하고 있다”며 “팀장 회의에 들어가면 보도국장이 혼자 말할 뿐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 TV제작본부의 중견 PD는 “공영방송에서 프로그램 자율성의 심각한 위협과 그 부작용이 나타나는 등 공영방송이 망가져 간 1년이었다”며 “공영방송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과정이라는 위기의식과 불임방송이 되는 것 아니냐는 냉소가 있다”고 우려했다.

KBS “적자구조의 흑자전환…신뢰도 추락은 일부 주장”

▲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민주광장에서 KBS 조합원 700여명이 양승동 PD 김현석 기자 파면, 성재호 기자 해임 등의 조치를 단행한 이병순 사장과 KBS 경영진에 대해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같은 안팎의 평가를 KBS 경영진은 전혀 수용하려 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을 정도다. KBS는 지난해 정부가 정연주 사장 몰아내려 할 때 다음아고라에 오른 글에 댓글로 ‘수신료도 거부하라’는 의견을 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황보영근(김제송신소)씨를 정직 3개월에 처했다.

또한 지난 6월 TV제작본부·라디오본부·편성본부장 불신임 투표를 실시·공표한 김덕재 KBS PD협회장과, 지난해 1월말 파면·해임 징계철회를 촉구하는 제작거부를 주도한 민필규 전 KBS 기자협회장, 보도본부장 불신임투표를 실시·개표한 평기자 3명에 대해 KBS는 징계방침을 밝히고 조만간 인사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미디어악법 저지 총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강동구 KBS 노조위원장과 최재훈 부위원장을 각각 감봉 6개월과 4개월에 처했다. 이 모두 이달 들어 단행된 징계 또는 징계방침이다.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 숙청을 방불케한다.

KBS는 안팎의 비판이 일부의 시각일 뿐이며, 적자구조를 흑자로 전환해 수신료현실화의 초석을 닦았다는 주장만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다. 강선규 홍보팀장은 “그동안 KBS에 대해 방만경영에 대한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경영개선 조치를 통해 적자구조를 흑자로 돌아서게 했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에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강 팀장은 “일부 시민단체의 평가를 전체라 재단할 수 없다. 여론조사라도 해봐야 할 일”이라며 ‘신뢰도가 MBC에 밀렸다’는 시사인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선 “전체적인 평가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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