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중이 주인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이죠?"

불온하고 급진적인,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만 취급되던 ‘국유화’라는 단어가 하루가 멀다고 외신에 등장하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1999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등장한 이래 계속된 좌파 정권의 도미노 집권으로 곳곳에서 석유 및 가스뿐만 아니라 전기, 통신, 철강, 금융 등의 국가기간산업들에 대한 국유화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세계대공황의 여파 때문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조차 GM, AIG, 시티은행 등의 거대기업들이 정부지원금을 받으며 국유화되고 있다. 물론 중남미의 국유화와 미국의 국유화가 경우는 다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민영화’라는 단어만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얘기되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상황 변화는 분명 범상치 않다.

필자는 이 글에서 현 시기 ‘국유화’라는 화두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모색하는 진보진영에게 어떤 시사점을 가지고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 ‘국유화’

최근 이명박 정권의 패악질이 극에 달하면서 다시금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저 한줌의 패악질 패거리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국민 누구도 ‘민주주의’가 한층 더 발전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강연을 할 때 가끔 청중들에게 ‘민주주의가 뭘까요?’라는 약간은 짓궂은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을 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민(민중)이 주인 되는 것이 민주주의지요’라는 취지의 정확한 답을 한다. 바로 그 순간 필자는 더욱 짓궂은 표정으로 이렇게 묻는다.

‘국민(민중)이 주인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이죠?’

이 질문에 도달하면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왜냐면, 대부분 여기까지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학자들이 얘기하는 다당제,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국민투표, 지방자치 같은 용어들을 언급하면서 민주주의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벌써 알고 있다.

그런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식의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국민이 뽑은 머슴 이명박은 대다수 주인들(국민들)의 반대를 무시하면서 패악질의 벌이고 있지만, 주인들은 그저 머슴이 휘두르는 방패에 쳐 맞고 닭장차 투어를 하면서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주의’, 그러니까 국민(민중)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어떤 사회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얘기할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 사회의 경우 크게 노예와 노예주인의 두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연히 그 사회의 주인은 노예주인일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생산수단(경제권력)과 국가주권(정치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주들은 토지나 노예를 자신이 직접 소유하면서 그것들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생산할 수 있는 엄청난 경제권력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예제 사회인 로마에서 국가 원로원 구성원이나 집정관들, 그러니까 국가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사람들 역시 노예주들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틀어쥐고 사회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나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 누가 그 사회의 주인일 수 있겠나.

봉건제 사회를 봐도 마찬가지이다. 봉건제 사회의 지주계급과 농노계급 중에서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틀어쥔 계급은 지주계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의 주인은 지주계급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떨까?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규모의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재벌들이다. 그리고 국가권력기관들은 대부분 이런 재벌들과 직간접적으로 선이 닿아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296명 중에서 노동자 서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6명뿐이고 나머지 290명이 가진 자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정치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치이다.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은 소수의 자본가들이다. 그들이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국민(민중)이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답이 나와 있지 않나. 생산수단(경제권력)과 국가주권(정치권력)을 틀어쥐는 세력이 그 사회의 주인이므로, 민중들이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틀어쥐어야 진짜 ‘민주주의’, 국민(민중)의 민주주의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소수의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만의 것이라 우기던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민중의 것으로 바꿔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선거 등의 과정을 통해 민중운동세력이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한 방향이라면, 또 하나의 방향은 소수 기득권 세력의 손아귀에 있는 생산수단을 민중의 소유로 바꿔내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국유화’는 바로 이 생산수단(경제권력)을 민중의 품으로 가져오는 민주주의 실현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할 때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국가권력의 힘으로 추진하는 국유화

국유화를 통해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극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당연히 그렇지 않은가? 이전에는 개인의 소유였던 생산수단이 국가의 소유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 어느 자본가가 자신이 소유하던 생산수단을 국가에게 내주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가 국가에 생산수단을 내어주는 국유화가 가능한 이유는 국가라는 기구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에 따라 집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과 물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주권(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은 ‘국유화’ 조치를 취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다.

간혹 국가권력 자체를 부정하면서 지역차원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운동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그런 운동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지는 않으나, 과연 그런 운동만으로 어떻게 민중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틀어쥐는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들지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베네수엘라나 미국의 국유화 과정을 보면 그에 앞서 ‘정권 교체’라고 불리는 국가주권의 교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와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이전의 정부와는 달리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주어진 상황에서 이러한 신념을 ‘국유화’로 현실화시키고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추진하는 ‘국유화’와 미국 오바마 정권이 추진하는 ‘국유화’가 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국유화’라는 겉모습만 빼고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경우는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을 내걸고 민중의 권력을 확대 강화시켜 나가는 차원에서 국유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소유권뿐만 아니라 해당 국유화 기업의 운영방식이나 이윤의 사용방식에 있어서 국가가 강하게 개입해 들어간다. 석유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이윤으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복지 사업 및 산업다각화를 추진하는 것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반면에 미국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국유화’는 신자유주의가 불러일으킨 시장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의 성격이 강하다. AIG, 시티은행, GM 같은 큰 회사들이 도산하면 미국의 경제시스템 자체가 붕괴하기 때문에 정부가 일시적으로 국유화한 후 강한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털어내고 다시 ‘민영화’ 작업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오바마 정부의 ‘국유화’ 정책은 오히려 국민들의 세금으로 부실을 메워 자본가들에 더욱 안전하고 깨끗한 생산수단을 넘겨주는 것이 목적이라 하겠다.

이렇듯 같은 ‘국유화’ 정책의 모습을 띠더라도 그 정책이 결국 누구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냐는 것은 해당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권력의 성격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국유화’라는 단어 자체만을 놓고 진보적인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확대 강화해주는 정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에는 누가 어떤 의도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갈리게 된다. 우리가 관심 있는 국유화는 당연히 미국 오바마 식이 아닌 베네수엘라 차베스 식이다.

국유화의 실제적 문제들

최근 중남미 좌파 국가들의 국유화 조치를 보면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민중운동세력이 집권을 한 이후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기존의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든다. 새로운 헌법 및 법률에는 정부가 추진할 국유화 등의 조치를 정당화하는 내용들과 구체적인 추진절차에 대한 조항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러한 법률에 근거해서 해당 기업의 소유자들과 협상을 통해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고 주식을 사들인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차베스 대통령의 경우 석유 산업 국유화 조치를 취하다가 보수반동세력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을 뻔했고,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경우도 가스 산업 국유화 조치에 반대하는 우익들의 분리 독립 움직임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의 경우 국부의 대부분이 석유와 가스 같은 자원에서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부분의 국유화에 있어서 미봉책과 타협책이란 있을 수 없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진보 정권이 들어서서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삼성, 현대, LG, SK 같은 소수의 재벌들이 대규모의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러한 기업 주식의 상당량은 미국 등의 금융독점자본들이 소유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나 현대 자동차 같은 국가 기간산업들은 베네수엘라의 석유나 볼리비아의 가스와 같은 자원들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전기, 철도, 수도, 통신 등의 공공서비스는 ‘국유화’ 추진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사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이런 기업들은 사실 만만치 않다. 이럴 경우 오히려 국가에서 공기업을 설립해서 새로운 미래 산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내수 중심의 구조로 바꿔야 하는 만큼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데 이 과정을 사기업에 맡기기 보다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진보 정권이 들어서고 핵심 기간산업들을 국유화하는 것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들도 있다. 국유화한 기업, 즉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이전의 자본주의적 노자관계를 넘어서 자신이 일하는 일터의 주인으로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회사의 운영에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자신이 일터에서 하는 일이 국가 차원에서 그리고 지역 사회 차원에서 가지는 의미를 깨닫고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과거의 사회주의 국가들, 그리고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다. 그들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오류와 한계들은 극복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우리의 현실적 조건에 맞는 방식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생산수단을 민중의 통제 하에 두는 방식이 ‘국유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소유관계나 방식들이 존재할 수 있고 ‘국유화’는 ‘사회화’로 가는 과도적인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도 얘기했지만, 국가권력에 대한 고민 없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매우 순진하면서도 현실감각이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유화’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갈 수 없는 과제이다.

임승수('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 .민중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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