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124명 시국선언…언론자유 보장 등 4대 요구사항 발표

서울대 교수들이 3일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역행 행태를 지적하며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해 파문이 일 전망이다.

서울대 교수 124명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 교수 일동' 명의로 이날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과 연대 위에서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시국선언문에서 "지난 수십 년 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며 "문제는 정치 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주의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교수 124인이 3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미디어오늘> 기자
서울대 교수들은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 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 아니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들 교수들은 구체적인 요구사항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할 것, 정부·여당도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를 국정 동반자로 받아들일 것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를 인정하고 사죄하며 수사에 대한 반성과 개선 △용산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기본권을 보장할 것 등을 촉구했다.

이날 시국선언 배경에 대해 이준호 교수는 "민주주의 후퇴 징후가 드러났고, 전임 대통령 서거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지만 "현 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것을 교수들과 이야기를 하게 됐다. 지난 월요일 논의했고 그 과정에서 현재의 위기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현 정권, 이명박 대통령 한나라당 과감하게 민심을 수용하라는 것"이라며 "큰 틀에서 대전환을 이뤄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지만 "(정부가)심각하게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혀 현 시국의 엄중함을 내비쳤다.

특히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은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깊었다. 김인걸 교수는 "새는 두 날개 있듯 여러 의견이 공존해 의견을 소통 존중하고 해야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하는데 민주주의를 후퇴하는 것을 균형을 잡는 면에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용찬 교수는 "지난 15개월 동안 민주주의 후퇴들 대운하에서 보듯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들을 아랑곳 않고 진행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라며 "각 대학에서 몇몇 분들이 주변에 있는 교수님들께 권해서 124명 됐다. 전체 교수님들에게 안내 메일하면 더 많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학장님도 참여를 원했지만 보직 교수의 참여는 사양하는게 좋겠다고 해서 뺐다"며 학내 전체적으로 큰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종호(21)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학생도 기자와 만나 "예전에는 이런 것에 무감각한 분위기였는데 최근 분위기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그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그것을 더욱 촉발시켰다"며 "정부가 비민주 적이고 집회를 강경하게 막거나 소수 기득권층을 위한다는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독재라는 얘기도 나오기도 한다"고 학내 분위기를 설명했다. 

▲ 서울대 학생들이 강의실 앞에서 시국선언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이치열 <미디어오늘>기자
한편, 이날 시국선언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시작부터 찾아와 소란이 일기도 했다.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소속 회원 10여 명은 질의 응답 시간에 "토론 제목이 유치하다. 국민적 화합하라면 5백 몇 명 표 얻는 분과 화합을 해야지"라며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강의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야유를 보냈지만, 이들은 박수로 응수했다.

한 회원은 또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이건 자살이야"라고 주장했지만, 한 학생은 "그럼 박정희는 총살이에요"라며 재치있게 맞 받아쳐 학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강의실 출입문에는 수십 여명의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지켜봤고, 교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일부 학생들은 '교수님들의 시국선언을 지지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시국선언문 전문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은 단지 애도와 추모의 물결만은 아니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착잡하기 이를 길 없는 심경으로 나라의 앞날을 가슴속 깊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각계각층의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러낸 것을 계기로 우리 모두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으며 또 열어야만 한다.

지난 수십년 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 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 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 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 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ㅊ팜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과정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검찰은 국가원수를 지낸 이를 소환조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주가 지나도록 사건 처리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추가 비리 의혹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인격적 모독을 집요하게 가했다. 이는 엄정한 공직자 비리 수사라고 하기 곤란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무모한 진압으로 빚어진 참사는 올해 벌어질 갖가지 퇴행적 사건을 예고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이 수사 기록 중 핵심적인 대목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재판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잇다. 지난 5월 22일 서울 서부지법 민사 12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세입자의 재산권, 주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실을 주목하면서 현 정부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속에 주어진 국민적 화해의 소중한 기회를 살리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희망하며, 다음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현 정부는 용산 참사의 피해자에 대해 국민적 화합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 위기 하에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드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집권층이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민주적 요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의 있게 대응함으로써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적 화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큰 길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을 간곡히 바란다.

2009. 6. 3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서명자 명단 (2009년 6월 3일)

강우성 강진호 계승혁 고철환 구명철 구인회 권태억 김길중 김도균 김빛내리 김상종 김세균 김영민 김용익 김월회 김유용 김인걸 김장주 김재범 김종욱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현균 김혜란 김효명 남동신 류재명 모경환 문중양 민은경 박경숙 박동열 박명규 박배균 박태균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방민호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변현태 봉준수 성노현 손영주 송석윤 신광현 신종호 심봉섭 안광석 안삼환 양동휴 양현아 오명석 오석배 오순희 오용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여탁 윤제용 이강재 이건수 이경우 이병민 이성중 이성헌 이애주 이인호 이일하 이창숙 이철범 이현숙 이형목 임호준 임홍배 장덕진 장승일 전종익 전태원 정근식 정용욱 정원규 정향진 조국 조영남 조현설 조형택 조흥식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영찬 최윤영 한상진 한숭희 한영혜 한인섭 한정숙 허원기 홍기선 홍성욱 홍승권 홍재성 홍진호 황상익

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정욱(환경대학원) 김현진(인문대) 이건우(인문대) 이근(국제대학원) 이동수(환경대학원) 이상훈(사회대) 이용환(농생대) 이준호(자연대) 장진성(인문대) 전경수(사회대) 최병선(사회대) 최진영(사회대) 이상 12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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