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 20 09.06.01 15:30 http://cafe.daum.net/charmgood/JndX/75
교직에 회의가 생길 때마다 다른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만 했습니다. 목수와 택시 기사, 농사 짓기 등을 대체 직업으로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우리학교 상황을 보면서 교사와 교직에 대해 회의를 품습니다.

아이들만 보고 희망을 가지라고 하지만 동료들과 선후배 교사들을 보면서 절망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중학교로 처음 오던 해에도 그랬고 올 2월에 시작되어 진행형인 정광학권 사태를 대하는 동료교사들을 보면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노아무개 선생의 가르침을 나도 보여 주고 싶은데, 이 학교에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 포기하고자 합니다.

다만 메시지는 좀 전하고 포기하려구요.

<<<수업갔다 올게요>>>

수업도 갔다 왔고 집에 와 있습니다. 2009년 6월 2일 저녁이구요.

저의 포기는 매우 희망적인 포기입니다. 제가 사범대에 다닐 때 다소 서정적인 풍의 민중가요들이 등장했는데 "나이 서른엔 우리"라는 노래도 그때 그 시절 노래입니다. 그 노래 한번 찾아 볼게요.

제가 나이 서른이 훌쩍 넘었고 마흔도 넘어서 참 우스워 졌는데, 난 그 노래 가사대로 서른살에 어디에 있을까 무척 고민을 했고 그 곳에 아직 있어 보지 못했습니다.

어찌 인연에 없는 사립학교에 굴러 들어오게 되었고 사립 상황과 적당히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10년 넘게 사립학교에 근무하면서 적당히 싸웠고 적당히 타협했습니다. 이제 좀 지루한 감이 있네요.



교사가 되기전에 역마살이 있었거든요. 교사가 되면서 소멸했지요. 요즈음 다시 역마살이 느껴지는 걸요. 난 10년 넘게 근무한 이 학교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나기 참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구요. 이 학교 문제 가지고 박터지게 한번 싸우고 정리하려고 합니다. 나이 서른에 살고 싶었던 그 모습으로 잠시 잠깐만이라도 살아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포기는 희망적인 것입니다. 여기(정광중학교 교사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데 재고 가늠하고 할 것 있겠습니까?



잘못한 사람이 조금 자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정나미 떨어졌어요. 오히려 더 큰 소리 치는 것 같죠.

사소한 권력에 약간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아부하는 보통 교사들의 모습에도 정이 안가고, 42명 교육동지들의 정의감이 너무 약해져 있는 것 같아 마음 편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종립학교인데 종립학교의 특장점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종립학교를 상징하는 인물들에게도(본사 주지인 이사들, 교법사들) 적지 않이 실망입니다.

정광중학교라는 사립학교에 근무하기에 나의 계급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집은 국가로부터 정부보호양곡을 받아 먹는 영세민(생활보호대상자-기초생활수급자)이었거든요. 이 출신 성분이 다소 불편합니다. 내가 사립학교의 교사가 되었을 때 나의 옛 친구들이 나의 처가가 짱짱한 것으로 다들 판단하더군요. 씁쓸하지요. 내가 이런 상류층에 속해서 나도 상류층인 것처럼 하류인생들(적어도 우리반의 70% 정도)을 대하고, 만나다 보니 상당한 허위의식 없이는 어렵더라고요.



난 교직 처음 들어온 신규교사의 눈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려고 해요. 동료교사들과 그럭저럭 섞아려고 하지 않을 거구요. 날선 사람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좀 먹었으니 나이에 어울리게 해야겠는데 그것이 좀 그려지지 않습니다.



잘해 볼게요. 포기는 그런 포기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시작도 되고 친구도 생기고 그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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