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다음 아고라에 쓴 추모 글 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 기억 속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첫 모습은 광주학살 청문회에서입니다.
광주학살을 저지른 전직 대통령들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재산이라고는 29만원 밖에 없다면서도 뻔뻔스럽게 골프치고 돌아다니는데,
그들을 질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먼저 떠나야 합니까.

다산 정약용은 길고 긴 유배생활 중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불렀지요.
그 절망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것이었구나, 싶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안타까움도 많았습니다.
이라크 파병이며, 한미FTA며,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물러설 때며,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정을 떼게 하는 그 모습에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좋아했습니다.

부산시장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진 뒤,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그는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출근길에 들은 그 한 마디에 그가 좋아졌습니다.

6월 항쟁의 주역들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제가 본 그의 모습은,
흐르는 역사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숙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작 한 두 시간 지켜본 그 옆 모습에 그가 미더워졌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한 시도가 제가 바라는 역사의 흐름과 똑같지 않았더라도,
그가 10.4 선언으로 대통령 임기를 마감했다는 하나만으로도,
그가 구시대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야, 기분 좋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만으로,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합니다.

가슴 아프게, 떠나보냅니다.
편히 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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