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순수 기초과목 폐강 속출, 경영학과 취업 관련 과목 학생 대거 몰림. 최근 신학기마다 각 대학에서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 만큼 대학의 인문학 위기가 운위된 지는 이미 오래됐고, 일부 인문학 학과는 시장성을 지닌 다른 학과로 간판을 갈아 달기도 했다. 반면 취직 관련 전공이나 학과는 날로 그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 전공의 대다수 학생들이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인문학, 대학 안에선 사라지고 밖에선 열풍

반면 대학 밖에서는 최근 또 다른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독서대학, 시민강좌, 인문강좌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개설되고 있는 인문학 강좌들이 그것이다. 인문학 강좌를 개설해주는 주체도 종교 및 시민단체들로부터 각급 관공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수강자층 역시 노숙자와 서민들로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학 밖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 열풍이 불고 있다.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위기’가 언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열풍’이 언급되는, 어쩌면 상호 모순적인 이 같은 현상이 야기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의 어떤 흐름과 심리를 드러내주는 것인가?
대학의 인문학 위기를 설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치열한 취직 경쟁 속에서 대학을 나오더라도 취직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취직에 유리한 전공과 학과를 더 선호하고, 취직에 유리한 과목을 하나라도 더 수강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밖에서 인문학 열풍이 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다음의 두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첫째는 심각한 경제불황 속에서 그 어디에도 마음 둘 데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하는 경향이다. 경제위기가 덜 심각했더라면 그 자체를 극복하는데 더 신경을 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심각한 불황의 현실에서 사람들은 인문학을 통해 자기 내면의 안정을 찾으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인문학 열풍은 경제위기에 따른 외적 불안에 대해 인문학적 관심을 통한 내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일 수 있다.

둘째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로서, 혹독한 경쟁 속에서 온통 물질적 발전에만 관심을 쏟아왔던 그 동안의 우리 자신과 사회에 대한 내면적 성찰이다. 그 동안 우리는 경제성장, 개발, 재테크, 사교육 등등, 극단적인 물질주의 경쟁에 내몰려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성취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 우리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질문명 속에서 황폐화되고 피로해진 우리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내면의 영혼과 가치이며 그것을 살찌울 문화적 환경인 것이다. 인문학은 그것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열풍 저변엔 심리적 도피, 물질주의 반성 혼재

대학 밖의 인문학 열풍이 경제불황에 대한 심리적 도피에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물질주의 경쟁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에 기인하는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 두 경향이 뒤섞여 있는 것이 최근 인문학 열풍의 원인이 아닌가 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경기회복이 이루어진다면 두 경향 중 어느 경향이 더 우선적인 원인인지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인문학 위기가 거론되고 대학 밖에서의 인문학 열풍이 부는 이 같은 모순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양적 발전과 물질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계속 고수하고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물질 못지 않게 영혼과 가치가 존재하고, 그리하여 양적 발전뿐만 아니라 삶의 질 자체를 향상시키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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