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의 미디어창] 한국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

2009년 3월, 또 다시 정체불명의 리스트가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에는 ‘검은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검찰 고위직, 정치인, 국회의원들의 명단이 들어있다고 한다. ‘장자연 리스트’에는 불법으로 성을 거래한 유력언론사 대표, 금융권 고위직, IT업체 대표 등이 연루돼 있다고 한다.

두 사건 모두 현재 동시 수사중이라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진실이 밝혀질지는 의문이다. ‘리스트 사건’치고 제대로 속시원히 밝힌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 제대로 진실이 밝혀질 때 쯤이면 이 사건은 국민들의 기억속에 아스라이 사라지고 ‘옛이야기’로 언론의 주목조차 받지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진실은 대부분 밋밋하게 감동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이 두가지 다른 듯 하지만 비슷한 성격의 사건에 주목한 것은 한국사회의 도덕성, 특히 사회적 강자들의 부도덕한 행태의 단절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매춘과 검은 돈 거래는 있지만 선진사회의 엘리트층들에게는 고도의 사회적 책무의식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사회가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진자들, 사회적 강자들이 지금처럼 타락한 모습,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목표지상주의에 일대 수술이 가해져야 한다. 그런 사회적 규범 준수운동이 엘리트층의 솔선수범을 통해 국민적으로 퍼져나갈 때 한국은 진정한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설 수 있기때문이다.

두 리스트 사건이 주는 의미와 교훈에 대해 이렇게 다소 성급하게 결론을 내는 것은 사실상 이미 사건의 내용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사건의 실체를 수사기관이 제대로 밝혀내지 못해왔다는 그동안의 경험칙도 한몫한다.

박연차 리스트에 올라 검은 돈을 받은 혐의로 이미 체포된 경남 지역 유력 정치인들외에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3월 22일일 부정한 청탁과 함께 수억 원대의 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추부길(53)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활동하며 일부 시민들을 향해 ‘사탄의 무리들’이라고 큰소리치던 그를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물증확보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측근들은 이렇게 검은돈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해 경찰의 오랏줄에 묶이는 신세가 됐다. 이런 측근들로 무슨 새시대를 열어가겠는가. ‘인사청탁, 비리 문제’에 관한한 ‘패가망신’운운하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하나둘 감방신세가 됐다. 박연차 리스트의 명단에 오른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중의 한사람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 역시 소환돼 수사받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5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의원쪽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두고볼 일이다.

또한 박연차 리스트에는 고검장까지 10만 달러의 검은 돈을 받았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전직 국회의장 등 70여명이 박연차씨의 돈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는 것이다. 국회의원, 검찰 고위직, 유력정치인들 등 소위 한국사회 가진자들, 사회적 강자들이다. 이들은 검은 돈을 뿌려대는 한 기업체 회장과 비밀리에 검은 거래를 주고받았다는 점에서 국민적 기대와 역사적 사명을 저버렸다는 큰 죄를 범했다.

당초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장자연씨의 사건은 한꺼풀씩 실체가 드러나면서 자살도, 단순연예사건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신인 배우의 꿈을 무참히 짓밟은 사회적 강자들의 폭력과 성상납구조속에 자살아닌 자살사건이 된 것으로 보인다.

명명백백히 진실을 밝혀내 죄지은 자에게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수사기관이 휘청거리고 있는 사이, 장씨 소속 연예매니지먼트 사 대표는 해외에서 돌아오지않고 온갖 억측만 난무하고 있다. 장자연씨의 유서내용은 처절하다. 더구나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어렵게 연예계에서 ‘스타’의 꿈을 키워온 신인 배우를 불법적 성매매 도구로 활용했다는 주장은 한국사회, 연예세계의 타락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 이면에 주요고객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강자들이다.

절망적인 현실속에 사회적 강자들의 반윤리적 행태와 반복되는 요구는 한 힘없는 연예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다. 그 타살의 대열에 선 살인마들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그러나 쉽지않을 것이다. 한국의 사회적 강자, 권력을 가진 자들은 수사를 축소하거나 방향을 틀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다. 한국처럼 대법관이 일선 법관에게 판결에 개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사기관, 사법부의 독립과 법집행의 형평성은 별로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리스트에 오른 사회적 강자들은 한국의 법과 윤리적 질서를 임의로 재단해나가는 힘이 있다. 물론 이들이 원했던 상대가 먼저 돈다발을 들고오거나 옷을 벗고 들어왔든 결과가 달라진 것은 없다. 물증이 돼야 할 현금은 사라졌고 증언해야 할 당사자는 이미 고인이 됐다. 한국은 또다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대형사건, 사고가 꼬리를 물고 터져나온다. 경찰은 장자연 사건에 경찰병력을 더 투입한다고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내일이면 잊으리. 죽은 자만 서럽고 한국사회는 그렇게 정신없이 굴러간다. 박연차 사건은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 만큼 당분간 일정 목표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진행될 것이다. 작은 권력이 있는 곳, 심지어 노동조합, 시민단체 같은 곳에서도 도덕성을 상실하고 타락한 악취를 풍겨낸다. 제발 폭탄주를 멈추고 한국사회의 가치와 목표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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