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심마당]정해구 논설위원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법과 질서’라는 말이 자주 운위되고 있다.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공권력 행사의 주체들인 경찰과 검찰이 자주 그러한 언급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과 질서’가 제대로 지켜져야 ‘선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해왔다. ‘법과 질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에 우리는 아직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법과 질서’가 운위되는 바로 같은 시기에 민주주의의 ‘역진’ 또는 ‘후퇴’라는 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이나 운동권 인사들에 의해 빈번하게 언급되는 이 말은 과도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존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이 이제까지 쌓아온 우리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을 담고 있다.

법과 질서 파괴인가 정당한 항의인가

그렇다면 정부의 공권력 행사와 관련하여 ‘법과 질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선진화를 위해 꼭 지켜져야 할, 그러나 아직 우리 의식이 이에 미치지 못한 시민적 덕성과 문화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공권력 남용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호도하기 위한 정부당국의 자기 정당화의 레토릭에 불과한 것인가? 즉 ‘법과 질서’는 선진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후진화의 표시인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우선 지난해에 발생했던 촛불시위와 관련하여 정부당국은 그 시위를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판단, 공권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위 참여자들은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우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자체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촛불시위는 이 같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에 대한 정당한 항의로 간주하고 있다.

다음으로 올해 초에 발생한 용산참사와 관련해서도 정부당국은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시위자들의 과격한 불법시위가 문제의 근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항의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시위가 원천적으로 불평등한 조건 속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불가피하고도 정당한 항의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공권력의 과도한 개입이 참사의 원인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입법전쟁’ 과정에서 국회에서 야기되었던 물리적 충돌에 대해서도 사법당국은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국회의원을, 그것도 주로 야당 국회의원 중심으로 소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법안을 둘러싼 국회 갈등은 기본적으로 정치를 통해 해결되어야 하며, 따라서 이에 대한 사법당국의 개입은 무리할 뿐만 아니라 편파적인 것으로 비추어진다.

이상과 같은 사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정부당국이 주장하는 ‘법과 질서’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과나 공권력 남용에 대해 아래로부터 제기되는 비판과 저항을 통제하기 위한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즉 그것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봉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나 공권력 남용 비판 차단용?

기실 ‘법과 질서’로 표현되는 법치국가의 본래적 의미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의 행사가 법에 의한 절차에 의해 행사되고 그럼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키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정부당국이 주장하는 ‘법과 질서’의 의미는 이와는 정반대다. 오히려 그것은 시민들의 항의와 시위가 정부당국이 정한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통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즉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제어하기 위한 ‘법과 질서’의 본래적 의미가 그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또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법과 질서’의 목소리가 가장 컸던 시기는 독재정권 치하의 권위주의 시기였다. 이와는 반대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진전될 때에는 오히려 ‘법과 질서’의 목소리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위에서 강조하지 않아도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법과 질서’가 지켜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과 질서’가 수시로 강조되고 있는 지금은 어느 시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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