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 있으면 국회 경위들이 폭력적으로 해산시키면서, 한나라당이 점거하면 봉사정신까지 발휘하는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의 못된 버릇장머리는 논외로 하자.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채, 국회의장을 포위한 채, 협상 테이블에 야당을 불러 앉힌 채, 진행된 협상. 과연 이것이 협상이라고 할 수 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협박이었다. 그 결과 이른바 ‘MB악법’이 거의 모두 직권상정, 통과되었다.

민주당 권력획득 가능성 남아있나

언론악법도 갖은 독소조항을 담은 채 일부 통과되었고, 신문법·방송법 등‘조중동TV, 재벌방송’을 초래할 수 있는 ‘신문의 뉴스방송 겸영’관련 법안만 100일의 시한부로 남아있게 되었다. 한나라당이 가한 협박의 결과다.

주변을 협박의 기구로 둘러싸고, 합의문을 강탈해 간 한나라당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운운할 자격을 상실했다. 하지만, 협박한다고 굴복하는 민주당은 또 뭔가. 그들이 협박을 당하면서 지키려고 한 것은 오직 하나, 금배지뿐이었다. 의원직 총사퇴의 배수진을 쳤다면, 결코 굴욕적 합의문을 작성하지 않았을 터였다. 금배지 하나 지키려고, 조중동TV에 의한 일상적인 여론조작을 제도화시켜 준 꼴이다.

애초 일본의 자민당식 장기집권의 밑자락이 한나라당이 제출했던 언론악법들이었다. 민주당은 그 악법들을 이제 고스란히 내 줄 수밖에 없는 합의문을 작성함으로써, 정당의 기본목표인 ‘권력획득’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조중동은 민주당 관련 사안을 공정하게 보도해 주지 않을 것이고, 조중동TV는 한나라당 기관방송으로서 역할하면서, 정치권력과 재벌 그리고 조중동 지배의 신문과 방송이라는 ‘수구적 3각 동맹’을 굳건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그래서 바보짓을 한 것이다.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바보인지, 아니면 한나라당의 2중대로, 조금만 먹고 지금의 권력을 누리려고 하는 것인지 이제 우리는 판단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마지막 기회마저 모두 날려 버린 것은 아니다. 합의문 자체에 대한 재협상이라는 카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합의문에 있는, 국회 문방위 자문기구인 ‘사회적 논의 기구’설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문기구가 뭔가. 문방위, 아니 한나라당이 듣고 싶으면 듣고, 말고 싶으면 마는 기구이다. 애초 한나라당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한 언론관계법 개정을 거부했던 터, 자문기구를 설치해도 이들은 관심 밖의 일이다. 논의 따로, 표결 따로. 전형적인 ‘따로국밥’식 합의문이다.

옛날 굿판을 가서 보면, 새벽녘에 사이비 무당들이 ‘해만 뜨면 내 돈이요, 해만 뜨면 내 돈이요’하고 주문을 외운다. 지금 한나라당이 그 모양이다. 앞으로 100일 동안 외울 주문은 ‘날만 가면 장기집권, 날만 가면 장기집권’이다.

사회적 합의기구, 국회의장 산하기구로 재편해야

그래서 민주당은, 자문기구가 아닌 ‘사회적 합의기구’로, 문방위 산하가 아닌 국회의장 산하기구로 재편하는 재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100일의 시한부가 아니라, 합의기구에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국회의장 직권으로 연장할 수 있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자문기구인 사회적 논의기구를 문방위 산하에 설치하고, 형식적으로 논의한 후, 형식적 절차를 거친 법안처럼 포장해, 한나라당의 언론악법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들러리 역을 자임한 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기본장치를 재협상을 통해서 민주당은 확보해야 한다. 이마저 한나라당이 거부하면, 의원직 총사퇴를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열어가야 한다.

일상적인 여론조작의 제도화, 한나라당의 일본 자민당식 장기집권 기도에 부역한 범죄집단으로서 민주당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의미있는 정당 민주당으로 남을 것인지, 이제 민주당이 결정해야 한다. 부디 민주당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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