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KBS, 보도 이어 비평도 물타기식…진상밝힐 의지 있나

KBS는 용산참사의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을 밝힐 의지가 있는가. 목숨걸고 망루까지 올랐다가 시커먼 재로 변한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피맺힌 억울함과 슬픔을 위로해줄 공영방송으로서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는가.

이런 물음은 던지는 이유는 최근 KBS 기자들 스스로의 보도감시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음에도 주요 현안에 대한 뉴스 뿐 아니라 비평 프로그램에서 조차 본질을 외면하고 물타기식 접근, '우리도 이만큼했다'는 생색내기식 방송에 급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 미디어비평 보도비평 "조중동 검찰옹호, 한겨레·경향 시종일관 경찰과잉진압 집중부각"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3일 밤 방송된 KBS <미디어비평> '[이슈&비평] 용산참사,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나?'이다. KBS는 언론의 용산참사의 언론 보도태도를 점검한다면서 철거민의 불법성과 검찰의 주장을 받아쓰다시피한 조중동과, 경찰 과잉진압 책임에 면죄부주기식 수사를 비판한 한겨레와 경향을 똑같이 나무랐다. 이 뿐 아니라 비평의 기본인 자기비판조차 외면했다. 시민단체와 언론계의 비판은 KBS 보도의 수준이 이미 조중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지만 제작진은 KBS 보도가 어디에 큰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방송3사가 모두 비판을 받고 있다, KBS는 사실보도를 나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단순전달'식 비평에 그쳤다.

<미디어비평>의 최규식 기자는 첫머리에 조중동 등의 일방적 보도를 지적한 뒤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지목해 "(두 신문은) 조중동이 검찰 경찰과 함께 이른바 물타기 보도를 하고 있다면서 날을 세웠다"며 "검찰 수사 내용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의혹을 제기하면서 경찰의 과잉진압 부분을 집중부각시켰다"고 주장했다. '시종일관' '집중 부각시켰다'는 등의 표현은 결국 조중동 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 모두 정상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최 기자는 방송의 경우 "사실을 전달하는 데 치중한 쪽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쪽으로 나눌 수 있다"며 "하지만 방송 역시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사건의 근본원인인 재개발 정책과 철거민 대책에 대한 심층적이고 분석적인 기사는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심층취재가 부족했다는 점은 맞는 말이지만 최소한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했는지, 특히 잘못 보도한 대목이 무엇이며 왜 이렇게 보도했는지에 대한 접근이 없다. 또한 공공미디어연구소의 사건 발생직후 열흘간의 분석자료를 들어 KBS는 '사실전달이나 당사자와 이해관계자의 주장을 나열하는 사실보도가 80% 의견기사 20%'였고, 반대로 MBC는 '의견기사 비중이 가장 높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MBC의 의견기사 비중은 26%였다.

또한 KBS에 대해 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시민단체가 지난 5일 "철거민 살인진압에 대해서는 검찰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전하고 있다"며 KBS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연 내용을 전하면서 동시에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가 같은날 MBC에 대해 "철거민들의 불법폭력을 옹호하고 상습적으로 방송의 공적책임을 어겨온 MBC에 대한 방송허가를 취소하라"고 비난한 내용을 나란히 전했다.

KBS에는 "당사자 주장 나열, 단순전달" 지적

시민단체와 학계, 언론계에서 왜 KBS의 용산참사 보도를 비난하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비평이다. KBS는 단순히 검찰주장과 유가족·시민단체의 주장을 나열한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직후엔 분노하는 여론과 경찰의 주장을 놀랍도록 정확히 반반씩 나눠전했고, 한 해설위원은 '경찰이 더 사망했다면 여론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상식이하의 주장을 해댔으며, 망루에서 액체가 떨어진 동영상이 공개되자 이를 톱뉴스로 배치하면서 '흥분'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시너가 아니며 화재원인이 아니라는 유가족쪽 주장은 외면했다. 그 뒤 PD수첩의 용역 물대포 영상 폭로가 있기 전까지 KBS는 '강호순' 파헤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기비판은 자기반성이 담겨있어야 그 진정성을 호소할 수 있다. KBS <미디어비평>은 국내 지상파 방송사를 대표해 미디어를 비평함과 동시에 비평 대상의 가장 앞머리엔 KBS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비평의 출발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는 원칙을 생각하기 이전에 누구보다 보도과정의 문제점과 원인을 잘 알 수 있을 만큼 제작진 스스로 비평의 현장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이병순 사장을 비롯, 그가 임명한 임원과 간부들의 서슬이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라면 맞서 싸워야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며,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용산참사로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유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은 기울였어야 했다. 그것도 어렵다면 이들을 대변하고자 있는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의 의견이라도 들어야 했다. KBS가 자칫 틀린 보도를 했거나 본질을 왜곡해 가족을 잃은 상처가 더 덧나지 않았는지 귀기울여야 했다.

또한 자신들은 기계적 전달을 한 게 문제지만 의견을 잔뜩 보도한 MBC도 문제라는 인상을 주도록 비평한 것은 매우 비겁하다. 여기에 SBS도 끼워넣어 KBS만 잘못한 게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것 역시 객관적인 게 아니다.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철거민·범대위가 왜 KBS 비판하는지, KBS가 어떻게 물타기했는지 언급안해

KBS는 방송에서 "방송이 의혹과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헤치는 보도는 소극적이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경찰과 철거용역이 함께 진압작전을 했다는 교신내용을 공개했을 때 KBS는 이를 단독꼭지가 아니라 이를 정치권의 공방을 전하는 리포트에 끼워넣어 비판을 불렀다"고 했다. 이 마저도 바로 뒤에 SBS의 사례를 들며 "방송들이 의혹은 전하고 후속 검증보도엔 소극적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고 했다.

또한 KBS는 "언론이 지나치게 책임논란만 전하고 근본적 문제인 도시 재개발 정책의 문제점을 되짚는데 소홀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눈여겨볼 만한 예로 두 칼럼을 들었다. 하나는 "도심재개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철거민들이 현실적 수준의 보상을 받고 있는지, 조합이나 시행사가 제대로 보상하는지, 철거민 이주 대책은 적절한지, 철거용역업체들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등을 점검해야 했다"는 한국일보 칼럼(지난 4일자 <낮은 곳은 보지 않는 법치>, 황상진 논설위원)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유감인 것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투쟁 과정에서 두 세력이 두 눈으로 사태를 입체적으로 보려하지 않고 한쪽 눈으로 한 면만 보려 한다는 점"이라는 국민일보 칼럼(같은날 <용산 참사, 두 눈으로 보자> 백화종칼럼)이었다.

국민일보 칼럼의 경우 "보수 쪽은 철거민 불법성만을, 진보쪽은 경찰의 과잉진압 측면만을 보려한다"는 내용이다. 용산참사를 진보와 보수의 잣대로 편가르기해 둘 다 지나치고, 둘 다 나쁘다는 주장을 '눈여겨'보았다면 KBS 보도가 지금보다 나아졌을까. KBS의 비평에는 원칙없는 '기계적 중립'만 있을 뿐 진실을 추구하려는 의지와 열정도, 날카로운 시각도, 자기반성을 통한 진정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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