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내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서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가는 느낌. 주인공들의 인생과 사랑 속에서 울고 웃으며, 우리 앞의 생을 반추하고 생을 더욱 보람 있게 하기위하여, 더욱 삶에 매진 할 것을, 그리하여 삶에 대한 열정을 담은 것. 그것이 또한 영화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예술이 주는 힘인지도 모른다. 나도 한 때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나의 꿈 이였던 때도 있었다.

국산 영화를 본다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은 발상 같아 보였다. 왠지 외국 영화를 봐야 낮이 깍 이지 않고 유행의 반열에 드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최신의 유행을 걷고 있는 듯한 자만심에 사로 잡혀 자존심은 내팽개쳐진 아주 왜소화된, 소외된, 자신이 아닌 세계의 시민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 외국 영화를 맘대로 골라보는 것이 세계화, 자유화는 아니다.

집에서 케이블 TV를 틀라치면 미국 영화 일색이다. 마치 미국의 안방 같은, 민족을 잊어버리고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에 몰입되고 우리는 얼마나 허구와 허상들에 사로잡혀 사는가? 한쪽이 쏟아낸 조작된 이미지들, 그것은 오히려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식민지라는 것을, 가장 위험하게 민족을 잊어버리고 미국이라는 거대 공룡만을 생각하는 자주성의 말살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단순한 영화의 감상이 아니라 야누스의 이율배반적인 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나 무서운 정신의 지배인가?

나는 여기서 쌍화점에 대한 영화의 내용 보다는 우리나라 영화를 보면 좋은 점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예전에는 무조건 외국영화를 보았는데 그것이 그렇게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영화 속엔 왠지 모를 행복이 묻어 있다. 우리나라 영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자주성이야말로 우리들의 행복의 근원이다.

내가 즐겨 본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가 절반이 였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럽에서는 헐리우드 영화가 거의 맥을 못 춘다는 이야기다. 나는 언젠가 내가 그렇게 즐겨보았던 인디아나존스나 람보를 훗날 TV에서 부끄럽게 바라보았던 기억을 지울 수 가 없다. 헐리우드 영화의 뒷면에는 오만한 미국의 얼굴이 도사리고 있다. 한때 나는 아프리카나, 유럽, 아시아 등 지구의 외딴 마을들에서 오로지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 만 본다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매개의 나라마다 민족적이고 독창성 있는 영화들이 창작되고 상영되어져야 진정한 예술이다. 자주성이 담보 될 때 진정한 예술이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가상의 현실들이 실제 일어나고 총 한방 못 쏘고 미국 앞에 무릎을 꿇은 소련도 있지 않았던가?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가 가상의 현실로 별들의 전쟁(스타워즈)을 만들고 실제로 사람들이 그것을 착각하여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겁을 무지하게도 집어 먹고 미국에게 백기를 들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역사 교과서에 나온 전쟁 의 기록보다 한편의 영화나 한권의 문학 작품에서 전쟁을 더욱 쉽게 이해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화도 세계 영화제를 석권 할 만큼 영화의 수준도 매우 높아졌다. 언젠가 세계 영화제 수상작 취화선과 올드보이를 감상한적 있었는데 지금도 잊지못할 만큼 너무도 감동적인 화폭의 영화였다. 나에게 우리 영화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준 영화,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우리 영화를 무척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영화를 사랑하자' 그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의 출발점이다. 우리 영화를 만나는 순간 행복한 미래가 다가 온다.

쌍화점은 원의 억압을 받던 격정의 고려 말. 왕과 왕의 친위부대인 건룡위의 수장 '홍림'이라는 사람과 대내외적 위기에 후사 문제를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원과 원에서 보낸 왕비. 세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금기의 사랑 이야기이다. 미국의 광우병 소 수입 강요에 굴복하고 해마다 예산이 증폭되는 미국의 천문학적인 주둔비 요구와 이에 굴복하는 현 정권 친미사대세력들을 보면 지금의 현실과 비추어 볼 때 조금도 다르지 않다.

원에서의 무리한 조공 요구에 미리 걱정을 하는 근심어린 조정의 대신들과 원에서 사신이 오면 고려의 왕이 무릎을 꿇고 원의 사신을 맞이하는 굴욕적인 장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원의 역모에 협력하는 서명을 했던 신하들을 왕이 모조리 처단하는 장면은 통쾌하기 까지 한다. 얼마나 큰 나라에 짓눌려 설움을 당한 민족인가? 우리가 역사에서 바르게 가져가야 할 자주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 인지 쌍화점은 일깨워 주었다. 나도 한편의 영화에서 자주성을 더욱 쉽게 이해했다고나 할까.

인간은 후대와 역사 앞에 함부로 살 권리가 없다, 다시는 그런 치욕의 역사가 이 땅에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위하여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마치 인도인들이 자기 나라의 영화만을 사랑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영화만을 사랑하자. 미국의 영화를 거부하라. 당당히 그것이 우리들의 자주권에 대한 침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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