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절도 이렇게 살기가 팍팍했었나. 한차례 크게 치르는 홍역처럼 아팠던 97년의 기억이 저만치 멀어져 간다고 느낄 때쯤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장기 불황의 폭풍이 한반도를 집어삼켜 버렸다.

이 폭풍의 위력은 광주에서도 예외 없이 불어 닥쳤다.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광주지역 중소기업 공장들은 운영시간을 단축했으며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가만히 웅크리고 도약을 기다리는 시기가 갈수록 기대보다 늦춰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갑을 여는 것을 꺼려하며 가장 안전한 투자인 저축에만 열을 올렸다.

광주 소비자들의 굳게 닫힌 지갑에 피해를 보는 자들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재래시장, 동네경제가 있었다.

지역경제를 살려보고자 양동 재래시장 상인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시민단체와 관련 시 공무원들과 함께 동네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광주 서구 양동 복개상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는 동네경제와 재래시장을 살리기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쏟아져 나왔다. 간담회가 끝나고 양동시장 내 솜씨가 좋다고 소문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을 먹으며 더욱 구체적인 실천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식당과 제휴해서 쿠폰을 발행하거나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축제를 개최할 계획이라든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올 수 있는 흔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우선 허기진 배를 채우고 보자는 마음이 앞서 그들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려 했다. 그래, 그러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내 귀를 기울여야했다. 대형마트가 어떻게 이익을 챙기고 소비자들을 재래시장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마트에서 나눠주는 할인 전단지에 나온 품목의 가격을 보면 상상 이상으로 낮은 가격에 놀랄 때가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이것을 보고 재래시장 보다 대형마트의 가격이 더 저렴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형마트에서 다루는 품목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물론 이것은 재래시장도 마찬가지.

그들이 배포하는 할인 전단지에 나오는 품목은 그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 일부분만을 재래시장보다 낮은 가격에 제공한다. 소비자들은 제시된 그 품목만으로 재래시장의 가격과 비교하며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보다 비싸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품목에 있어서는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보다 훨씬 더 저렴하다. 여기에 마트의 이익 창출의 방법이 숨어있었다.

이거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의 장단에 놀아난 꼴이지 않은가. 대형마트가 곳곳에 뿌려 댄 광고 전단지를 보고 싼 품목을 사러 갔다가 재래시장과 비교해서 터무니없이 비싼 품목까지 사게 만들다니.

지역 언론이 재래시장에 대해 자주 기사화 하고 좋은 점을 알려주는 것이 상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간담회 참석자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맴돌았다. 이를 알리려는 재래시장의 노력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광주 시민들이여! 재래시장에서 소비를 하자, 출근길의 교통 체증처럼 꽉 막혀 답답한 이 지역 경제와 더 나가 국내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비는 필수적이다.

잘 사는 이들의 배를 채워줄 소비가 아닌 내 이웃의 경제사정을 도와줄 수 있는 동네 경제를 위해 이제 닫혔던 지갑을 열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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