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연 수증기 사이로 강연자(55.여.동구 동명동)씨의 미소 띤 얼굴이 보인다ⓒ광주인
광주시 동구 금남로 1가 고층빌딩 사이에 포장마차를 하는 조그마한 트럭이 보인다. 그 트럭의 주인은 강연자(55.여.동구 동명동)씨. 인사를 나누며 들은 그녀의 첫마디에서 전라도의 특유의 억양을 느낄 수 없었다. 물어보니 남편을 만나 강원도에서 터전을 옮겨와 광주에 뿌리를 내린지 벌써 34년이란다.

그녀의 출근 시간은 남들과는 약간 다르다. 오후 5시 쯤 출근 준비를 시작해 6시에 장사를 시작한다. 그 이유는 퇴근하며 오가는 사람들, 학원가기 위한 아이들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출출할 시간이기 때문.

그녀를 만난 그날은 올 겨울 들어서 광주가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한 추운 날이었다. 이런 날은 하루쯤 쉴 만도 하건만 강연자씨는 오늘도 나와 자리를 지킨다.

“매일 나오지 뭐, 아주 더운 여름을 빼고는 날마다 나와. 자리를 지켜야 하거든. 며칠 자리를 비우면 다른 장사꾼이 차지할지도 모르니까.” 길거리 먹을거리 장사를 하는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구역이 정해져 있다. 장사가 잘 되는 장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매일 장사를 나오는 것은 필수.

날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그녀, 만나는 사람의 수만큼 일을 하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그녀는 들려주었다.

“지난여름 매우 무더운 날이었어. 청년 한명이 오더니 이것저거 포장을 하겠다고 주문을 하는 거야. 어림잡아 2만원을 훌쩍 넘어 보였어. 땀을 뻘뻘 흘리며 포장을 다 해서 건네주고 돈을 받으려는 순간 그 청년은 이미 저만치 도망가 있더군. 어치나 황당하고 화가 나던지 한동안은 멍해있었다니까. 뭐 어쩌겠어. 내가 쫓아갈 수 없으니까 그냥 잊어버리는 수밖에.”

그날의 일이 떠오르는지 그녀는 힘 없이 웃었다. 하지만 양심 있는 손님도 여전히 남아있다. “한번은 손님이랑 유쾌하게 떠들다 손님이 돌아가고 나서야 돈을 받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 뭐야. 허탈해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손님이 찾아왔더라고. 돈을 자기가 안내고 간 것 같다고.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어. 아직은 살만하다니까.”

경기 불황을 일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지 묻자 그녀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진다. “분식이라서 아이들 돈으로 장사하는 거잖아. 그나마 경기를 적게 타는 편이야. 그래도 재료비가 올라서 힘들어. 물량도 절반도 안 나가고. 원가가 상승해서 분식 값도 올려야 하는 형편이니 갈수록 팍팍해져.”

늘어가는 노숙자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많다. 그래서 그녀는 종종 장사하고 남은 분식을 노숙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물건 팔고 남은 것을 자주 주는 편이야. 다들 살기가 어려운데 그 사람들도 얼마나 어렵겠어. 먹고 싶어서 바라만 보는 노숙자들이 태반이야. 동정심에 주는 거지 뭐.”

2009년 그녀의 바람은 오로지 건강이다. “매일 나와서 하는 장사라 건강이 최고야. 올해도 아무 탈 없이 건강했으면 좋겠어. 우리 손자도 건강하고 자식도 건강하고.... 자식이 건강해야 부모가 걱정안하고 부모가 건강해야 자식이 걱정안하는 거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찾아오는 손님 다들 올해 건강하고 잘살면 좋겠어. 더 바라는 건 없어.” 이렇게 말하며 웃는 그녀의 미소는 참으로 건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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