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주고 더 많이 받아내는 '터프한 협상' 준비해야

내달 8일 6자회담 개최를 앞두고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김성배 책임연구위원(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이 26일 코리아연구원에 특별 기고한 「6자회담과 북핵검증 "진실게임"」전문을 코리아연구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이 글의 원문 및 관련 자료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편집자주


한미일 정상의 합의에 따라 다음 달 초에 6자회담이 열릴 전망이다.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이번 회담의 변수는 북한의 태도라지만 애초에 6자회담 개최가 지연된 것은 북한이 회담 자체에 소극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북미간 평양합의의 실체가 무엇이었고, 이를 6자회담에서 추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다.

평양합의에 대한 미국의 브리핑(10.11)과 달리 북한이 합의사항에 시료채취가 없다고 주장(11.12)함으로써 이번 사태는 진실게임의 양상을 띠기도 했다. 그러나, 북미의 주장은 모두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북미는 궁극적으로 시료채취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양해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검증의정서 문안에 "시료채취"라는 네 글자가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북한과 핵 검증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북했던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10월 3일 오후 서울 외교통상부에서 김숙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핵검증 진실게임의 이면에 가려진 6자회담 참가국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이다. 일본은 평양합의를 대놓고 비난했지만 우리도 충분히 만족하는 입장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은 6자회담에서 채택될 검증의정서에는 반드시 시료채취 등 철저한 검증방법이 명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불능화에 대한 보상이 지연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북한은 당연히 반발했다. 북한의 일부 남북관계 차단 조치가 취해진 11월 12일에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나온 것도 우연은 아니다. 북한의 칼날은 미국이 아니라 평양합의에 불만을 가진 "일부 세력들"을 향해 있었다.

이렇듯 10월 초 평양합의 이후 바로 열릴 것 같던 6자회담이 미국 대선 이후로 지연된 것은 6자회담을 열어도 관련국 간의 입장 차이로 결렬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결과가 달랐다면 평양합의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외교 치적에 목마른 부시 행정부의 적극 중재로 6자회담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시료채취 등 검증방법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만약 핵검증 문제로 검증의정서 채택이 무한정 지연될 경우에는 결국 6자회담이 장기간 공전되게 되고 북미간 양자협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를 포함한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의 역할 공간 축소로 이어지게 될 뿐이다.

6자회담에서도 핵검증 문제를 북미간 진실게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북미간 평양합의를 끝까지 추궁하여 힐 차관보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만들어서 우리가 얻을 실익은 없다. 어차피 평양합의가 전략적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를 추인해 주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이다. "과학적 절차"라는 표현 채택 등 시료채취 논란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가 2단계의 끝이 아니라 3단계의 시작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착수할 수 있게 도와줄 필요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북미간 고위급 직접 외교 표명으로 이제 본격적인 큰 판이 벌어질 전망이다. 며칠 전 국제학술회의에서 만난 오바마 외교팀의 북핵팀장 도날드 그로스는 필자가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 제시된 "터프하고 직접적인(tough and direct)" 외교의 의미를 묻자,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받아내는 "터프한 협상"의 의미로 해석했다. 주저함이 없는 외교, 결과를 만들어 내는 협상이라는 뜻일 것이다.

북핵 검증은 당연히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3단계 협상의 진입에 장애를 조성하는 방식이 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이제 바야흐로 "터프한" 협상이 시작된다. 그 때 가서 검증 문제에 대해 보다 "터프한" 입장을 취해도 늦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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