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친구로부터 <파주,철원 민통선 평화 통일 기행> 행사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통일에 무관심했던 나로서는 썩 내키지 않았으나 그냥 바람 한번  쐬고 오자는 생각으로 10월 3일~4일 1박2일 일정으로 통일단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전남본부'가 주관한 행사를 다녀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산 여행에서만 느끼는 꿈틀대는 특별한 감동이 있었기에 통일기행 감상문을 올려 본다.

3일 오전 8시30분 전대 정문앞에서 집결한후 출발한 버스는 의정부를 거처 포천,철원까지 6시간 이동끝에 일차 목적지인 철원 전쟁 기념 공원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본거지로 삼아 활동하였다는 철원 제일의 명승지 '고석정`으로 유명한 한탄강변에 위치한 곳이다. 또한 20년전 3년여 동안 나의 군생활 텃밭이기도 하여 감회가 새롭다. 문뜩 함께한 그때의 전우들이 보고 싶다.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에 있는 평화 전망대. 멀리 6.25 당시 철원평야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낙타고지가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당선 이후 연말에 평화전망대를 찾아 글을 남겼다. '강한 안보의식'이 눈의 띈다.    
그네들도 같은 상황이라면 나와 똑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베시시 혼자 웃음 지어 본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기억 창고에 저장된 씨알들이 하나 둘 기억 저편에서 뛰쳐 나온다. 그동안 잊고 살았었는데... 갈말. 자일리. 이동. 일동. 펀치볼. 행군. 유격. 훈련...

이제 민통선이라는 약간 어색하고 왠지 이름만으로도 두려운 곳으로 출입하려 한다. *출입증-부대장 :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  여러분의 느낌은? 안내를 맡으신 철원군 농민회 김용빈 부회장의 인솔하에 들어선 민통선에는 평화의 무드가 조성되 있었다. 약식 신분 조회와 안보 관광을 대신한 통일 견학이라는 이름의 의미 변화가 이미 그곳에서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대야 잔평' 철원의 또다른 이름이다.철원 평야의 미곡 오대쌀은 전국 생산량의 약1%를 차지하는 6만~7만톤이라 한다.이중 수확 중에 논 바닥에 떨어진 낙곡 3~7%가 이곳을 찾는 겨울 철새의 먹이가 된단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가 뛰어난 천연 생태계를 유지하는 자연 보고의 으뜸 평야라 하겠다.

또한 옛적 궁예가 태봉이라는 이름의 나라를 세울만큼 살기 좋은 곳이었고,전쟁의 절대적 요충지 이기도 한 곳이다. 늦게 도착한 바람에 일정상 땅굴 견학은 제외했다. 땅굴 견학이 우리에게 주었던 무게가 이제는 불필요 할테니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1950년 6.25 전까지 사용했던 북한 조선노동당사.
길이 120M 폭 8M에 35M 높이의 한탄강 최고의 다리 승일교가 눈 앞에 펼쳐진다. 본시 한탄교라는 이름으로 시공 되었으나 남과북의 합작품이라는 상징성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의 승자와 김일성 주석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라 지었다는 설을 뒤로하고 차창을 통해 보이는 키작은 벼 이삭에 시선을 모아본다.

유난히 작은 키의 벼 이삭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간지름 피우기 시작한다. 차오른 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 고개 숙인 키작은 나락의 비밀은 지역적 특성인 큰 일교차에 따른 것으로 이른 모내기에 빠른 성장으로 많은 수확량을 만들어 준다하니 정말이지 하늘이 내린 땅 강원도 그중 최고라 할만하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낯에 익은 표말이 선 월정역을 지나 철의 삼각 전망대에 올라 무심한듯 한가로운 비무장 지대를 내려다 본다. 혹시 운이 좋으면 고라니가 뛰는 모습이나,같으면서 다른 또 한 민족인 인민들을 볼수는 있지 않을까. 바램은 아쉽게도 바램으로 끝나 버린다.

통일기행단을 안내 중인 김용빈 철원군 농민회 부회장(왼쪽 첫번째).  
하늘이 그다지 맑지가 않았다. 내려오는 길에 강산(동성)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철새들의 군무를 감상한다. 전쟁의 상흔이 가장 심했던곳 그곳에 비무장 지대라는 선을 그어 출입이 50년간 통제된 곳. 이곳이 지금은 지상 최고의 자연생태 보고가 되었다. 이곳에서 밤 낚시를 한번 하고 싶다는 나의 '강태공' 끼가 발동한다. 천천히 오르는 찌의 용트름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을 뒤로하고 절망적이지 않는 답답함으로 북녁 땅을 바라보며 오후의 아쉬움을 묻어 버린다.

일제치하 철원평야의 미곡을 강제수탈했던 당시 농산물 검사소, 승일교와 함께 전쟁에서 거의 기적적으로 일부 뼈대가 살아남은 노동당사를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있다. 갖은 만행과 악행으로 표현치 못할 민중의 고초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의 광장정치.대의정치.자발적 민중의 참여정치의 상징성을 간직한 이곳이 과연 그러 했을까? 잠시 반문 해본다.

이익을 원하는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의 피해자가 되어 역사의 아픔을 대변하듯 서럽게 서 있는 노동당사. 벽돌과 벽돌사이사이 간극에 나무 기둥이나 대들보를 끼워넣는 독특한 형태의 설계. 간부를 위한 건물이 아니고 주민들을 위한 건물임을 당당히 몸으로 보여주려 애쓴 흔적이 못내 안스럽다.

6.25 당시 폭격을 맞은 그대로 보존돼 있는 노동당사의 뒷면. 지금은 평화 안보여행의 단골 코스로 자리잡아 주변을 단장 중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유명한 월정리역의 녹슬은 철도 이정표.
539G.P :539번째고지에 세워진 초소를 나타낸 숫자라 한다. 서울에서 104KM 평양에서 200KM 떨어진 거리. 이렇게 가까운 곳을 너무도 멀리한 나 그리고 우리들... 여행이란 무엇일까? "평화전망대는 눈으로 보지말고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안내자의 설명에 그 답이 있었다.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얻는 기쁨이 바로 이번 통일여행이 내게 준 선물이리라.

"여러분 있는 그대로를 보세요" 선생님은 개발이나 이익을 따지지 말고 그냥 그대로 지켜만 봐 주시면 된다 말씀 하신다.지금의 비무장지대가 '통일의 띠'로써 통일의 상징지대로,  자연생태의 보고로 보존돼 주기를 기도해 본다.

전방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쓰이는 용어들이 참 많이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영문으로 <DMZ.GP.MP.GOP...>되어 있지만 유독 한글 표기된 게 하나 있는데 다름아닌 '땅굴'이다. 이유인즉 그것 자체를 비하 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 되었다 하는 말에 실소가 나온다. 

사실 나는 분단의 아픔도 현실도 잘 모르고 지내 왔다. 다만 이곳을 통하여 대리 체험을 할 뿐인데 지금 막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화를 누르며 이름이 너무 멋진 '잡곡 으뜸 마을'(033-458-8040) 에 여장을 풀어 하루를 마감 시킨다.

맛있는 음식과 통일기행에 함께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들이 장작과 함께 타오르며 톨일의 희망을 심어 놓는다. 폐교를 개사하여 체험 학습장으로 만들어 놓은 철원군 농민회원들의 고향마을 학교 사랑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분들이 직접 재배한 무공해 토마토 맛는 꿀맛 그 자체였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내려다 본 임진강 위로 새로 놓인 경의선 철도 철교(왼쪽)와 오른쪽으로 6.25 당시 폭격을 맞아 교각만 남은 모습이 대조적이다. 
임진각에서 경의선 철교를 뒤로하고 선 필자.
다음 날 변함없는 새벽 6시 기상. 피곤도 하겠지만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 탓 일까.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발길 닿는대로 몸이 움직여 준다. 잣나무가 뿜어 논 숨결도 느끼고,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의 노래도 들어가며 즐거운 산책으로 남은 여정을 시작 한다.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요 남북 교류 중심지로 급부상한 파주로의 여행을 서두른다.

판문점으로 가는 통일로 1번 국도인 의주로는 한양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한반도의 6대 도로 중 제1도로로서 한양~개성~평양~의주를 연결짓는 남북 교류의 핵심로이다. 비단 도로뿐만이 아니라 지난 2000년 9월18 일 한국 전쟁 이후 꼭 50년 되는 해에 공사가 시작된 서울~의주간철도(경의선 철도)가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 

단순히 끊어진 철도의 연결이 아니라 한민족의 단절된 현대사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곧게 뻗은 경의선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힌다.

민간이 출입이 허용된 비부장 지대 최북단 도라 전망대. 외국인 관광객들이 60~70%를 차지한다.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소감을 나누고 있다.  
안내자가 박치기 영화에서 나오는 '임진강 노래'를 예를 들어 분단의 고통을 간직한 임진강의 운명을 설명한다. 군인들이 직접 버스에 올라 검문을 한다. 철책을 뚫고 통일 대교를 처음으로 건넌것이 아이러니 하게도 고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통일소 떼' 였다고 한다.

이 통일대교는 작년까지만 해도 유일하게 민통선 내에서 미군이 직접 검문 했었던 곳인데 이제는 1사단이 검문권을 이양 받았다고 한다. 지금 나는 임진강을 건너고 있다. 나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건너 보지 못한 곳을 건너고 있다. 41살의 나이에  웬지 까닭 모를 두려움이 밀려온다. 

일본에서 제작된 '박치기'라는 영화를 권하고 싶다. 거창한 애국심이 아니라  통일의 염원과 통일로 가는 우리들의 마음의 준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도라 전망대를 찾은 일본 중국 관광객들이 경비 중인 미군병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가 일컫는 '민통선' 명칭이 북한에는 없다고 한다. 다만 남한에는 미군측이 군사적 목적으로 남한 땅에 민간인 통제구역을 지정해서 출입을 금지 시켰다 하니 속히 통일이 되어 하나된 민족으로 우리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세계속에 역할을 다하는 당당함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

자유의 다리를 뒤로하고 도라 전망대에 오른다. 이산가족의 망향의 한을 달래주고 통일 교육의 체험 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2년 지상5층 지하1층 건물로 지어진 도라산 전망대. 서부전선 최북단 휴전선에 위치한 도라 전망대는 북으로 개성 송악산, 남으로는 서울의 63 빌딩까지 한눈에 볼수 있다하며 유일하게 비무장 지대 안에있는 전망대라 하겠다.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 법률에 따라 모든 것이 운영된다고 한다. 형식은 유엔 관할 구역이지만 사실상  미군의 관할지역이라 하겠다. 지난해 10월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으로 도보로 건널 때도  유엔사의 허가를 받았다. 한반도에 속한 '타인의 땅'이란 분단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대목이다. 

희한하게도 이곳 도라산 통일전망대를 찾는 관광객중 다수인 60~70%가 외국인들이고 그중 80%정도는 중국인이라는데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찾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몰려온다. 분단의 상처와 아픔. 세계 최대의 군사력 대치 현장이 그들에게는 눈요기 관광지가 된 것. 

파주시 비무장 지대에 자리한 허준 선생의 묘.
지척에 인민기가 보이고 멀리 개성 공단이 보인다. 상상처럼 대치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다만 뒷동산에서 볼수 있는 잡목과 우거진 산림뿐 . 느낌은 같은데 다른 현실만 보이니 참으로 이상할 따름이다. 사진촬영 금지구역을 모르고 찰칵 했더니 금새 헌병들이 달려와 바로 삭제해 버린다. 대꾸를 못하는 나는 벙어리.

대성동 마을. 현재 약 54 세대가 거주하는데 전국 농촌에서 유일하게 농가수가 줄지 않는 곳이라 하니 그 살기가 얼마나 좋으련가 꼼꼼히 살펴 본다. 년 평균 가구당 소득이 상당하고  세금을 내지 않고, 군복무의 의무도 없고 죄를 진 죄인이라 하더라도 현행범이 아니면 체포권도 없다고 한다.

이 모두가 가능한 것은 대성동 마을이 비무장지대 내에 속한 마을이라 국내법이 아닌 유엔법을 적용 받기 때문이다. 전쟁이후 민통선에 건설된 최초의 마을 통일촌에서 점심을 먹었다. 일행은 10.4.선언 1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임진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무장지대 도로가에는 지뢰 매설을 알리는 표지판이 널려 있었다. 허준 선생 묘로 가는 길가에 설치된 지뢰 경고판.  
돌아 오는길에 허준 선생의 묘에 인사드린후 '6.15사과 농원'(031.943.2615) 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농장에도 흔적을 남겨 놓았다. 황해도 해주 사과의 명성에 걸맞는 맛을 내기 위해 유기농 재배를 하고 있으며 2000.6.15.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겨례의 숭고한 뜻에 따라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 실현의 장을 만들고자 남북 공동 선언을 한 날의 뜻이 옳음을 기하려 농장의 이름을 6.15 사과 농원이라 지었다 하는 진실한 마음이 주인장의 마음이었다.

아마도 개성 인삼의 진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런데 이곳 인삼밭에서는 수확이후 심을 수 있는 작물이 콩 밖에 없다 한다. 인하여 이곳 파주의 장단콩은 전국 특산물로 유명세를 가질 정도로 많은 양이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그 마을에 그 사람들이고 그 작물이며 그 논과 밭들 ....

비무장 지대 해마루촌과 허준 선생 묘 중간에 자리한 임진각 6.15 사과농원. 세계최대의 화약고에도 평화를 바라는 희망의 사과나무도 심어졌다.   
2002년 2월  미국 부시 대통령이 도라산역을  방문해 직접 사인한 기념 침목이 도라산역에 전시 중이다.
하늘.바람. 별. 햇살. 시냇물. 모두것이 이전처럼 하나로 뜻모아 살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천천히 그 세상으로 걸어 가련다. 분단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희망을 담은 영화들. <하나를 위하여> <공동 경비구역> <우리 학교> <박치기1.2>를  메모해둔다.

하루 하루 바쁘게 살면서 까맣게 잊었던 '분단과 통일'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었던 1박2일의 통일여행이었다. 개인, 가족 그리고 동호인들끼리 꼭 한번 다녀오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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