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문 전문>
6․15남북정상회담 그 후 8년 -전남대총학생회 초청 강연-
2008. 10.1.(수) 오후 4시 / 전남대 용봉홀

저를 초대해 주신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 여러분! 자리를 빛내주신 교수님, 내외귀빈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0월1일 오늘은 국군의 날입니다. 제 지역구인 목포 시민의 날입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10․4선언 1주년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목포에는 오늘 오전에 다녀왔지만 여러분과의 약속 때문에 10․4선언 1주년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전남대생 여러분!
전남대는 5․18민주항쟁의 발원지이며 민주주의의 상징입니다.
여러분이 항상 지켜 주신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8년 전 역사적인 6․15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주 앉았습니다.

김대통령께서는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있고 책임있는 자리에 있을 때 민족을 위해서 평화와 협력, 통일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는 길이고 우리의 의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2000년 6월13일 저는 김대중 대통령 방북단의 공동수행원으로, 문화관광부장관 직책으로 북한의 순안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북한 환영인파에서 꽃술이 흔들리면서 함성이 터졌습니다. 바라보니 국방색의 둥근 배가 제 눈에는 맨 먼저 보였습니다. 몸이 뚱뚱해 배가 나온 김위원장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김대통령께서도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김위원장이 공항에 나올지 안나올지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은 6월14일 밤 만찬장에서 두 분의 정상이 서명․수표하면서 탄생했습니다. 만찬장에서 김대통령은 김위원장의 손을 붙잡고 나가 합의결과를 보고하고 두 분이 손을 잡고 번쩍 올렸습니다. 저는 김위원장의 손바닥이 빨갛고 하얀 마치 반점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김위원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위원장은 금연을 했고 과거에는 독주를 마시다가 지금은 와인만 마신다고 했습니다. 김위원장은 와인을 많이 마셨습니다. 가득 채운 와인 잔으로 저와 건배도 했습니다.

2000년 6월13일 즉 평양에 도착한 당일 밤 저는 북측의 송호경 특사와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문제로 자정이 넘도록 옥신각신 회담을 했습니다. 북측은 김대통령이 참배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고집했고, 우리는 결코 동의 할 수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14일 즉 다음날 아침 송호경 특사와 조찬회담을 가졌습니다. 송특사는 의외로 “장관선생의 열정을 최고위층에 보고한 바 이번만은 참배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씀이 계셨다”고 했습니다.

김위원장은 자정 가까이까지 김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만났습니다. 김위원장은 “오늘 아침 국방위원회를 소집하여 대남비방 방송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어제 밤 돌아가서 한국 TV를 보았더니 대통령님과 제가 담소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몇 시에 주무십니까?” 김위원장은 “주석님께서 생존시 새벽 4~5시에 보고를 했습니다. 습관이 되서 늦게 잡니다”라고 했습니다. 북측 고위인사는 저에게 “국방위원장님은 새벽 2시에 보고를 받으십니다. 그 대신 이동하는 차 속에서 오수를 즐기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2000년 8월15일 저의 제의로 이루어진 언론사 사장단 방북 행사에서 김위원장을 다시 만났습니다.

김위원장의 건강이 월등하게 좋아보였습니다. “건강이 좋아지셨습니다”라는 저의 말에 “전에는 2~3일간 지방 군부시찰을 했지만 6․15 후에는 한 달여씩 지방과 군부시찰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와인도 조금 마셨습니다. 뱃살도 빠진 것 같았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정이 되었다고 저는 해석했습니다.

2007년 여름, 이희호 여사님을 모시고 금강산 관광을 갔습니다. 금강산 관광 사상 처음으로 북한 통전부 간부가 평양에서 직접 내려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하고 공식만찬도 베풀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방위원장은 21세기 3대 바보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했다”는 겁니다. 그 ‘3대 바보’는 ①담배 피우는 사람 ②컴퓨터를 못하는 사람 ③예술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희망을 느꼈습니다.

故이주일 선생을 광고모델로 하여 금연운동을 본격화하고, 학교․군대 그리고 농촌의 우체국에서까지 컴퓨터 교육을 하고, 그리고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라며 문화예술 예산 1%를 달성시킨 때가 언제였습니까? 10년도 못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국민의 정부가 한 일입니다. 북한에서 2~3년 전에 시작했습니다.

존경하는 전남대 학생 여러분! 국민 여러분!

저는 김정일을 알콜중독자, 호색한 등 뿔이 5~6개 달린 악한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제가 만난 김위원장은 영특하고 joke가 뛰어나며 세계정세를 잘 알고 기민한 판단을 했습니다. 김대통령께서도,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도,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스웨덴의 페르손 총리 등 김위원장을 만난 분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김위원장은 금년 66세입니다. 연령, 흡연, 음주, 복부비만, 그리고 수면시간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 프랑스 의사가 북한에 갔고 심장수술을 받았다는 내외신 보도가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9월9일 ‘김정일 건강이상설’ 보도가 나오기 전 모대사관 관계자로부터 “중국 의사 4명이 평양에 갔다. 독일과 프랑스 의사가 시간관계상 못 가고 중국의사가 갔지 않았겠느냐?”는 건강이상설 관계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에게 9일 3개의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저는 누군가가 정리하리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10일 아침 KBS1 라디오와 자청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위원장이 오랫동안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9․9절에도 불참한 것은 ①건강이상 혹은 잠행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건강이상설에 무게를 둔다 ②국익을 위해서도 김위원장의 계속집권이 필요하다. 김위원장은 북미관계 개선을 강력히 바라는 사실상 친미주의자일 정도로 북한에서 가장 개혁․개방주의자이어서 남북교류협력에도 유리하다 ③만약 회복을 하더라도 향후 후계구도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④만약 유고가 되면 강경한 북한 군부가 집단지도체제로 집권하고 중국 군부와 손을 잡아 불행한 결과가 올 것이다 ⑤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을 당장 지원해야 한다. 김위원장 건강이상설이 있을 때일수록 북한의 안정을 위해서 즉각 해야 하며, 미래를 위해서도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대통령께서는 북한 핵실험 후 - 노무현 당시 대통령마저도 “남북 교류협력을 고집할 수 없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 대단한 각오로 북미간의 직접대화와 주고받는 협상을 하라고 뉴욕타임스 등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 전남대를 시작으로 한 각종 강연을 통해 강조했습니다. 마침내 노대통령께서 본래대로 돌아왔고 미국도 햇볕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께서는 2006년 10월9일 북핵실험 이후 2일만인 10월11일 이곳 전남대에서 ‘한반도의 현실과 4대국’이라는 유명한 강의를 했습니다. 김대통령은 강의 후 질의응답에서 노대통령과 통화내용을 전격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그 내용은 “오늘 아침에 노대통령께서 전화를 해서 같이 대화를 했다. 그 가운데 햇볕정책에 대한 말을 했다. ‘왜 포용정책이 죄가 있느냐? 포용정책은 남북관계를 조금이라도 긴장을 완화시키면 시켰지 악화시킨 일이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 말하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했더니 노대통령께서 자기도 전적으로 동감이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오늘 참모들하고 회의하는데 그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존경하는 학생 그리고 국민 여러분!
저는 노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합니다. 특히 ①대북정책 ②사회안전망 구축 ③투명성 확보는 역사가 평가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2003년도에 남북정상회담을 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2003년 초 인수위 시절 노당선자 측은 북한과 접촉하여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교환을 논의했습니다. 노대통령께서는 취임 초 실무자간에 특사교환을 원칙적으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구체적 합의를 위해 베이징에 나온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약속을 어기고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사유야 있었겠지만 돌이켜보면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만약 2003. 10․4선언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남북관계의 진전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김대통령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대통령과 김위원장이 만나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북핵문제를 이유로 하지 않았습니다. 노대통령이 퇴임하기 3년전이라도, 아니 2년전이라도 정상회담을 했다면 얼마나 많은 합의들이 실천되었겠습니까?

그러나 노대통령께서는 퇴임 4개월을 남겨두고 2차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지 했습니다. 그 결과가 2007. 10․4선언입니다.

10․4선언문에는 6․15공동선언이라는 문구가 4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언문 제1조에는 ‘6․15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한다’며 ‘6․15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하며 6․15를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0․4선언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2007년 11월16일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에도 6․15공동선언을 3번 언급하며 합의서 제1조에 민족공동의 기념일로 지정하자고 합의했습니다.

노대통령께서는 재임 시 10․4선언 1조, 총리회담합의서 1조에 따라 6․15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어야 합니다. 저는 당시 총리, 관계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국정원장에게 남북의 정상, 총리의 합의에 따라 6.15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국무회의에서만 의결하면 되는데 만약 가장 실현 가능한 6․15 국가기념일 지정을 하지 않는다면 차기 정부에 10․4선언의 준수를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까지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초 정상회담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퇴임 4개월을 앞두고 정상회담을 하긴 했지만 10.4선언에서 합의했고 쉽게 이행할 수 있었던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역사는 과거를 출발하여 현재에 도달했고 미래로 갑니다.

김대통령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대통령에게도 그랬고, 또한 현 이명박 대통령께도 정상회담을 권합니다. 특히 이대통령과 김위원장은 호탕한 성격과 통이 커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예측 하십니다.

김위원장의 건강은 8월 중순경 중국 의사에 의해 뇌 관계 수술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조심스럽게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여당 간사가 지나친 발표를 하고 심지어 방송인터뷰까지 해서 국민보기가 민망했습니다. 9월24일에는 국정원장이 ‘호전되었다’는 간단하고 절제된 보고를 했습니다. “양치질을 한다”는 보도는 제 생각으로는 기초 첩보소식을 청와대에서 오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선신보, 현학봉 북한 미국국 부국장, 특히 수시로 평양을 왕래하는 중국내 대북 전문가인 류홍차이 대외연락부 부부장은 건강이상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미국 하원 외교위는 9월14일~23일 주중에 국무성으로부터 김정일 건강에 대한 브리핑을 받기로 했습니다만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등 구라파 국가에서도 정보기관이 아직도 파악 중이라고 합니다.

AP, 로이터통신은 한국발 기사가 80%이며 한국과 일본의 언론이 난무하다는 보도입니다.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 60주년을 주목한다지만 김위원장은 관례적으로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어떠했던 우리는 이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김위원장의 건강이 완쾌되든 그렇지 못하든 이제는 후계구도에 대한 검토가 시작됩니다. ①세 아들 중에서의 세습 ②특정인과 군부의 집단지도체제 ③만약 급격한 김위원장 유고에는 강경군부의 집단지도체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도는 7~80%입니다. 심지어 개성공단에도 2개의 기업체가 들어와 있습니다. 만약 불행한 결과가 오면 압록강, 두만강에 미치던 중국의 영향력은 휴전선까지 내려 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찌되며, 일본, 미국은 어떤 영향을 받겠습니까?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지금같이 필요할 때 즉각 식량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도 감사합니다. 세계식량기구가 북한 실정을 밝혔습니다. 10월 추수가 시작된 후에 지원하면 식량을 받으면서도 덜 고맙게 생각합니다.

인도적 차원입니다. 미국도 줍니다. 더욱이 김정일 건강이상설은 중국 국경 부근에는 다 알려졌고 북한의 지방으로 퍼지는데도 순식간입니다. 그러면 북한 주민들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매우 불안해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식량지원은 북한사회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 북한 주민들은 겉에 ‘쌀 40Kg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쌀포대와 ‘남해화학’이라고 쓰인 비료포대를 두건으로, 보따리로, 깨진 유리창 가리개 등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물론 제한적이지만 심지어 우리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비디오로 노래를 듣습니다. 머리 스타일이 바뀌고 아이들 이름은 한국드라마 주인공 이름으로 지어줍니다.

이것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대한 적대감이 없어졌고, 남한의 도움으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는 것으로 북한에도 한류가 흐르는 것입니다. 김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의 성과이며 6․15남북정상회담 후의 변화입니다. 이런 일을 누가 했습니까. 이래도 ‘잃어버린 10년’인가요.

이렇게 하면 남북문제가 풀립니다. 이대통령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준수한다고 직접 밝히고, 쌀과 비료 그리고 6자회담에서 약속한대로 에너지소위를 통해 에너지와 관련 자재를 지원하면 됩니다. 개성공단에 숙소를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면 됩니다.

그러면 금강산 관광이 열리고 개성공단에 현재의 3만3천명 보다 더 많은 북한 노동자가 들어옵니다.
물론 최근 통일부에서 10․4선언을 이행하려면 14조3천억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서독은 동독에 10년간 2천억 마르크, 달러로 환산하면 1천억불이 넘는 돈으로 연간 100억불 이상을 지원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매년 5억불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퍼주기를 했다면 서독이 망했어야지 왜 동독이 망했습니까?

만약 이명박 정부에서 10․4선언 준수에 재정부담을 느낀다면 남북총리회담 합의서 제8조 1항에는 수정․보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10여년간 이행기간이 필요할 것이고 환산하면 연간 1조5천억 투자액이며 우리에게 돌아오는 계산을 한다면 무리한 것이 아니리라 판단됩니다.

북한과 철도를 연결하면 시베리아, 중국, 유럽을 거쳐 런던․파리까지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가 됩니다. 운임과 운송기간이 30% 절감됩니다. 중앙아시아의 자원이 들어옵니다. 일본은 일본에서 부산까지 해저터널을 제안했습니다.

한반도는 물류기지가 되고 여러분의 일자리는 무진장이며 통일이 되면 여러분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사실 9월28일 이대통령께서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TSR 시베리아 철도연결을 밝혔습니다. 푸틴 전대통령도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TSR에 대해서 간곡히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대통령은 한․러정상회담에서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배관 건설도 합의했습니다. 또한 이대통령은 러시아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러시아 젊은이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서울의 벗들을 만나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육로로 러시아 친구들과 재회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러시아 젊은이와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먼저 남한과 북한의 젊은이들이 열차로, 육로로 만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스배관과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두 북한을 경유해야 러시아로 갈 수 있습니다. 먼저 지금 경색돼 있는 남북관계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이대통령의 한․러정상회담 합의내용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대통령도 햇볕정책을 원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면입니다.

사랑하는 전남대생 여러분!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6․15남북정상회담은 분단 후 반세기만에 처음 남북정상간에 만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세계가 감동했습니다.

만약 2003. 10․4선언이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왜 노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회담을 거절 했을까요?

노대통령은 2007. 10․4선언에서 가장 쉬운 제1조와 남북총리회담합의서 제1조에 합의된 대로 6․15를 국가기념일 지정한다는 약속을 왜 지키지 않았을까요? 왜 이대통령께서는 추상적인 대북정책만 주장하지 구체적 실천을 주저할까요?

지금 북한은 경제가 어렵고 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김위원장은 북미간 관계개선으로 6자회담 등에서 북한 핵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북한이 강공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이때 남북관계라도 좋았다면 그동안 2% 부족한 북․미, 북․일관계를, 또한 6자회담 교착상태의 물꼬를 트는데 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손을 놓았습니다. 북미관계만 잘 되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김영삼 정부때 KEDO처럼 당사국으로서 발언권도 없어지고 돈만 내는 꼴이 됩니다.

- 김정일의 건강이상설 여하를 떠나 후계구도에 대처해야 합니다.
- 6자회담 트랙에서 내려와서는 안됩니다. 에너지소위에서 에너지 시설 지원을 약속대로 제공해야 합니다.
- 개성공단 숙소 증설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 금강산관광도 해결해야 합니다
- 무조건 쌀과 비료를 지원해야 합니다.
- 무엇보다도 이대통령이 직접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존중 의지부터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돌아가기 시작할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 몫입니다. 국정원도 통일부도 내심 바라지만 청와대가 반대한다고 합니다. 이대통령님의 통 큰 결정이 민족을 살리고 북한 핵을 없애는 길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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