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곡된 정보해석, 학교를 불화의 공간으로
임병구 전교조 대변인 직무대행
 

교육 불안은 학부모의 영혼까지 잠식한다. 사교육은 그 틈을 넓히며 영토를 확장한다. 이제는 사교육이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좌로까지 시장을 넓혀 놓았다. ‘경제 위기’, ‘안보 위기’가 정치적 마케팅의 영역이라면 교육위기는 교육산업을 확장하는 일상화된 위기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의 불안이 상업마케팅의 주영역이 되었으므로 학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걸고 사교육에 투자한다. 그러므로 최소한 그 의존도나마 완화할 수 없다면 교육 정책은 현실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교육정보공시제’도 그런 제도가 될 공산이 크다. 교육정보공시제가 내세우는 목표는 학부모의 알권리 보장이다. 학부모가 학교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 권리 영역이다. 그걸 보장하고 확장하는 제도에 이의를 제기할 교육 관련자는 없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일방적인 관계만으로 다 해소되기 어렵다. 더 많이 알려면 알고자 하는 대상과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이 없는 앎은 자기중심적인 ‘해석’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보미디어 소통 구조는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웹2.0시대’는 관찰에서 참여로 앎의 지평을 바꾸고 있다. ‘교육정보공시제’는 그런 소통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정보공시를 뛰어 넘는 다양한 학교 참여 구조가 정보공시와 함께 가야 한다. 전교조와 교육운동단체들은 학부모회, 학생회 법제화를 주장해 왔다. 실제 학교 운영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확장하지 않으면서 인터넷에 뜬 정보만 확인하라고 하는 것은 학부모를 타자의 위치에 가두는 일이다.

특히,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 문제는 교육 철학적 논쟁거리다. 학교에서 교육 철학적 고민의 흔적을 찾기가 갈수록 어렵다. 그렇지만 학교를 떠받치는 교육철학의 기본은 ‘모든 학생들의 가능성에 대한 무한대의 신뢰’여야 한다. 국가가 의무 공교육 제도를 만들고 확대해 온 바탕에는 그런 믿음과 꿈이 버티고 있다. 학생의 능력을 등급화하고 그걸 공개하는 문제는 그 지점에서 학부모의 ‘알고 싶어 하는’ 권리와 갈등한다.

교사가 학생들의 성취 수준을 알려 주는 방법 중에 가장 간편한 방식은 수치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르치는 이들이 품은 교육적 열망은 등급과 서열을 넘어서고 싶어 한다. 진정으로 교사이길 원하는 교사들은 학생의 가능성에 대해 대화할 수 있기를 꿈꾼다. 현실 교육 제도, 입시 중심의 고착화된 성적 경쟁을 넘어서 학교가 학교일 수 있기를 바라는 교사들은 성적 공시 문제에 대해 그 지점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물론 근본적인 교육 담론으로 학부모의 현실적 요구를 덮을 수는 없다. 성적이 인생의 자산이 되어 버린 교육 구조에서 교육에 대한 근본적 담론은 ‘한가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보공시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하다. 시험 성적이 학생들의 전인적 능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치를 높일수록 학교는 학원을 닮게 된다.

학부모가 알기를 원하는 성적 정보를 미세 단위로 구분할수록 학교는 학교로서의 자기 정체성에서 멀어진다. 학부모의 관심이 성적으로 집중될수록 학교는 학원의 짝퉁이 될 것이고 사교육 의존도는 높아진다. 학업성취도 결과를 공개하게 되면 그런 추세가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교육정보공시제도가 교육적 효과를 거두려면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제도를 심화시키기 보다는 전교조를 향한 소모적 공세에 활용하려 한다. 애초에 논의 대상이 아니었던 교원단체 가입 현황을 정보공시 목록에 끼워 넣었다. 8월 1일 공청회에서, 11일 보도 자료에도 그 내용은 없었다. 교원단체 가입 현황 공개를 주장한 뉴라이트 출신 조전혁 의원은 방송에서 말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교원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학부모에게 판단의 근거를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전교조 가입 교사들의 성향이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 주장은 앞으로 공정택 서울교육감이 전교조와 촛불집회를 연결할 때 사용한 논리를 따라 갈 것이다. 그는 전교조 교사들의 많은 지역에서 개최된 집회에 학생들이 많이 참석한 사실을 전교조배후론의 근거로 설파했다. ‘그 지역에 전교조 교사들이 많다 -> 그 지역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 -> 학생들이 많이 참석했다 -> 그러므로 전교조가 학생들의 배후다’ 논리 정합성을 갖추지 못한 수준의 주장이다.

정보공시제에 교원단체 현황을 공개한 후 나타날 수 있는 주장은 그런 논리 구조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전교조 조합원 숫자를 공개한다 -> 조합원수가 많은 학교 중에서 학력이 낮은 학교를 찾아낸다 -> 조합원수가 많을수록 학력이 낮다고 주장한다 -> 학력이 낮은 학교에 학생을 맡길 수 없다 -> 그러므로 전교조는 교육적으로 불필요하다’ 물론 터무니없는 논법이다. 하지만 ‘전교조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책을 쓴 조의원은 여론이 그런 쪽으로 움직이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육정보공시제는 정책적 타당성을 잃게 된다.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정보의 가치는 반감된다. 왜곡된 정보 해석은 학교를 불화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대화가 끊기면 학교 교육을 더 낫게 바꿀 길도 막힌다. 학부모와 교사가 대화하면서 힘을 모아도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려운 조건이다.

지역 감정이나 왜곡된 민족 감정은 위험하다. 그런 감정은 개체에 대한 판단보다 선입견을 앞세운다. 그 지역에 살고 있으므로 이러저러한 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면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투명하지 않은 렌즈로 들여다보면 대상은 왜곡된다. 대상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가지게 돕는 게 정보 공개의 원래 취지다.

교원단체 가입자 수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거기서 일정한 성향을 유추해 내려 들수록 학교의 진면목은 가려질 것이다. 초점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렌즈라면 치우거나 그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건 학부모와의 전면적 소통 구조를 넓혀 내는 것이다. 전교조는 학급 학부모회를 활성화하고 학부모 상담 시간을 확보하는 노력에 집중해 왔다.

전교조는 학부모가 컴퓨터 속에서만 학교와 만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정보를 검색하는 학교 밖 타자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적극적으로 학교에 참여해 함께 나누는 학교공동체 구현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를 위해 걸림돌을 제거하는 운동도 계속해 왔다. 촌지 거부 운동도 그 일환이었다. 이제 그런 논의를 다시 시작할 때다.

정보 공시를 넘어, 감시하고 감시받는 관계를 넘어 학교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머리를 맞댈 때다. 그래야 우리 모두를 옥죄는 상시적인 교육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탈출구를 만들 수 있다. 학교는 지금도 관찰과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임병구 전교조 대변인 직무대행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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