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사장 퇴진 투쟁 63일째- "갈수록 노조원 사기 고조"
  17일부터 공정방송 리본. 배지 패용하고 뉴스 제작 나서 
  김 기자 "가장 두려운 것은 패배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갈수록 노조원들의 사기와 투쟁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민영화 상업화 된 방송에서 내보내는 뉴스쇼를 누가 봐 주겠는가? 구구절절 옳은 말하는 뉴스를 하고 싶다”.

▲ ⓒ김향득 기자
지난 1995년 2월 뉴스전문 케이블 방송 <와이티엔>(YTN) 개국 준비부터 광주전남의 큰 뉴스현장을 누벼오며 ‘독특한 목소리 톤’으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김범환 기자(41. 보도국 사회2부 광주지국 차장)는 요즘 취재와 함께 ‘낙하산 사장 퇴진’ 투쟁으로 서울 본사를 오가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19일 오후 와이티엔 광주지국 사무실에서 만난 김 기자는 공정방송 리본과 배지를 패용한 투쟁복 차림으로 뉴스제작을 하고 있었다. 이틀 전에는 김경록 영상취재 기자, 문환수 뉴스 중계차 감독과 함께 서울 본사 지원투쟁을 다녀왔다. 광주지국 일꾼 6명 중 이들 3명이 노조원이다. 다른 지국 소속 노조원들도 조를 나누어 교대로 본사 투쟁에 합류하고 있다.

김 기자는 이날 오전 화순 우시장 취재부터 ‘공정방송’ 리본과 배지를 옷에 패용하고 뉴스제작에 나섰다. 노조차원에서 투쟁방식의 일환으로 지난 17일부터 일제히 실천해오고 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배지와 리본이 뉴스화면을 등장 할 경우 '낙하산 사장 퇴진 및 공정방송 사수' 투쟁이 일반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장면들을 잘라내고 편집된 목소리만 내보내고 있다.

편집된 장면은 방송뉴스 용어로 ‘온 마이크 또는 스탠드 업’으로 기자가 직접 등장하여 현장을 강조하는 멘트 장면을 말한다. 일부 뉴스를 자세히 듣다보면 기자의 목소리가 일정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노조측은 18일 ‘온 마이크’ 장면이 편집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뉴스’ 장면을 모아 ‘노조 문화제’에서 소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구본홍 사장은 마케팅을 잘해서 월급을 올려준다고 한다. 월급 몇 푼 올려주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기자를 자랑스럽게 하고 싶은 거다. MB 언론특보 출신 사장에다 민영화로는 올바른 기자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김 기자는 와이티엔 노조가 왜 ‘낙하산 사장 반대’와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고 있는가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월급 조금 올려주는 정권의 사장 보다 기자정신을 지켜내 초등학생 두 아들과 시청자들에게 ‘떳떳한 아빠. 기자’로 남고 싶다”는 것.

“몇 해 전 황우석 사태 당시 (황 박사를) 두둔한 보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 취재를 나가면 국민들의 불신이 엄청 났다. 게시판에도 얼마나 많은 항의글이 올라왔는가. 이럴 때 기자는 자신감도 없어지고 기사의 생산력도 떨어진다. 현장에서 떳떳하지 못한데 어떻게 올바른 뉴스를 제작하겠느냐”며 아픈 기억을 더듬었다. 

와이티엔 노조는 구본홍 낙하산 사장 퇴진 및 출근저지 투쟁을 19일 현재 63일째 전개 중이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한국 언론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촛불시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5개월째다. 노조의 투쟁양상도 지난 7월 17일 구 사장 ‘날치기 선임 사태’ 이후 강력한 대오를 형성하면서 투쟁을 해오고 있다. 아직까지 구 사장이 정상 출근 한 번 못한 것에서 노조의 탄탄한 투쟁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 김 기자가 19일 오전 화순 우시장에서 '공정방송' 리본과 배지를 패용하고 뉴스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노조원들이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가 적힌 손팻말을 생방송 뉴스 화면에 노출시키는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회사측은 투명한 뉴스룸 유리벽을  파란 천으로 가렸다고 한다. 회사 측의 노조탄압도 노골화 되고 있다. 추석 전후로 12명의 노조원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해 놓고 있다. 고소를 핑계로 남대문경찰서장이 회사를 찾아오는 '희대의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노조는 구 사장 출근 저지에 이어 지난 9월2일자 인사발령도 거부 중이다. 24명의 인사 대상자들은 낙하산 사장의 인사는 받아 들 일 수 없다는 것. 이들은 기존 소속부서에서 근무를 하며 이른바 ‘불복종 투쟁' 중 이다. 취재부서 노조원들도 새로 부임한 부서장들의 지시를 거부하고 고참기자를 중심으로 뉴스를 제작하고 있다.

이처럼 와이티엔 노조의 공정방송 사수 투쟁은 장기전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진행되자, 일부 신문방송학자들은 <한국방송>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면서 호평을 내놓고 있다.

이날 김 기자가 내놓은 투쟁전망도 밝았다. “10월 초 출산 예정인 여 기자 후배가 투쟁현장을 지키며 댓글 달기부터 온 몸으로 출근저지 투쟁에 나서는 모습부터, 노조원들끼리 다양한 투쟁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무척 고무적”이라는 것. 또 언론노조를 비롯해 민주노총, 네티즌, 공정방송 시민사수대 등의 연대투쟁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우선 현 정부와 구 사장이 최후의 수단으로 ‘공권력 투입’을 선택 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노조 측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대비책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국 초기 뉴스전문 케이블 방송 와이티엔을 10여 분에 걸쳐 소개 한 후 취재와 섭외가 가능했던 시절부터, 아이엠에프(IMF)시절 회사의 어려움을 견디며 올바른 기자의 길을 지키고자 했던” 김 기자. 그에게 이번 ‘공정방송 사수’, ‘낙하산 사장 퇴진’ 투쟁은 와이티엔에 대한 깊은 사랑과 올바른 언론인으로서 사명감이 가슴 속에 오롯하게 녹아 있는 듯 했다.

김 기자의 바람대로 “낙하산 사장을 퇴진 시키고 ‘구구절절 옳은 말만 전달하는 뉴스’의 기자, 떳떳한 아빠”가 되는 날이 하루 빨리 앞 당겨지기를 바란다. 그는 한 시간이 넘은 인터뷰 동안 “가장 두려운 것은 패배가 아니라 무관심이다”는 말을 네 차례나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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