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는 2005년 1월부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연계하여 ‘성폭력 피해여성을 위한 무료법률구조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위 구조사업은 성폭력이라는 사안과 여성이라는 대상의 차별성 때문인지, 피의자(피고인) 변호가 아니라, 피해자(고소인) 대리에 친하게 운영되고 있다.

1년 간 위 사업으로 성폭력피해자 대리를 수행하면서 느낀 소감이라면 ‘피해자의 형사절차로부터의 소외현상’을 체득하였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가해자의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느냐의 범위와 한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해자의 ‘소외’는 고소대리 제도의 필요성을 회의하게 할 만큼 특별히 주목된다.

성폭력사건이 입건되면, 피해자는 수사기관의 소환에 따라 출석하여 진술하고, 때론 피의자와 대질조사, 거짓말탐지기 등의 조사를 마친 후, 경찰에서 민원사건처리결과통지서, 검찰에서 고소고발사건처분결과통보를 받게 된다. 불기소처분으로 종결된 경우, 피해자는 과연 피의자가 무슨 행위로 조사 받았는지, 어떤 이유로 불기소되었는지 알기 위해 스스로 불기소이유통지서를 청구해 그 사유를 짐작해야 한다.

기소된 경우, 피해자는 피고인이 무슨 행위, 어떤 죄명으로 처벌받는지, 심지어 공판일자가 언제인지 등의 자료를 스스로 알아봐야 하나, 기껏 얻은 정보라야 공판기일에 법정 앞에 붙은 사건표가 알려주는 정도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피해자가 공판절차에 참석할 수 있더라도, 그는 오직 피고인의 변소만 청취할 수 있는 관중일 뿐이다.

피해자가 그 분을 참을 수 없으면 진정서를 제출할 수 있으나, 피고인의 수사절차 진술, 변소의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하므로 그 내용이라야 고작 격앙된 감정의 나열인 것은 필연이자 당연이다. 현행 검찰보존사무규칙에 의하면, 피해자는 본인 진술서류만 열람할 수 있고, 본인 제출자료만 열람․등사할 수 있으므로, 불기소처분에 대한 항고,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민사소송의 제기 여부는 우선 위 자료만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피의자(피고인)의 변소와 그 허구성을 탐색해서 항고이유서, 소장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항고, 소제기 이후에서야 문서송부촉탁결정을 받아 피의자(피고인)였던 자의 변소내용을 간추려 볼 수 있게 된다. 가령 성폭력피해자가 10세 전후의 어린이, 10세 전후 정신연령의 농아자, 지체장애자, 그 법정대리인이 농아자, 지체장애자인 경우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이와 같은 취약한 피해자의 권리를 함께 행사하는 것이 피해자(고소인) 대리의 전부이다.

헌법재판소 인터넷사이트 판례검색 프로그램에 ‘기록 열람 등사’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45개의 결정문이 검색되는데, 이 중 수사기록 또는 재판기록에 대한 열람등사신청거부처분을 취소한 인용결정은 3건(헌재 1991. 5. 13. 선고 90헌마133 등) 뿐이다. 위 3건의 인용결정은 피고인의 청구에 관한 것이므로, 피해자의 청구사건은 각하결정 외에 인용결정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우리 헌재는 열람등사신청거부처분취소 사건에서 자주 거시된 검찰보존사무규칙에 관한 2차례의 결정에서, 한 번은 직접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 번은 청구기간을 도과하였다는 이유로 모두 각하하였다.

법제처 인터넷사이트 연혁법령검색 프로그램에 ‘검찰보존사무규칙’이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1981. 12. 24. 법무부령 제234호로 제정된 위 규칙의 11차례에 걸친 개정내용을 모두 일별해 볼 수 있다. 이 중 현재와 같이 수사 및 재판기록 중 피해자가 열람등사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해 ‘본인 진술서류 열람, 본인 제출자료 열람․등사’의 골격이 규정되기 시작한 것은 1993. 12. 10. 법무부령 제378호 개정령부터라 할 것인데, 위 개정령은 앞서 본 90헌마133 결정이유에서 지적된 위 법무부령의 불완전성(열람․등사의 범위, 열람․등사 청구에 대한 처분성의 각 모호성)을 보완한 것으로 이해된다.

헌재는 위 개정령 이후 현재까지 피해자의 청구사건에서 사전구제절차로서 행정소송의 이행을 요구함으로써, 위 개정령을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위 법무부령이 정한 ‘피해자 본인 진술서류 열람, 피해자 본인 제출자료 열람․등사’의 골격이 온당한가는 의문이다. 아무리 수사기관의 독자적 판단과 식견이 중시되고, 규문적 성격의 수사절차가 강조되더라도, 대부분의 고소사건과 마찬가지로 성폭력피해 사건 역시 피해자와 피의자의 대립구조를 부인하기 어렵다.

위와 같은 대립구조를 고려하면, 재판 중 공판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고(형소법), 위 법무부령에 의해 재판확정기록 및 불기소사건기록에 대한 열람등사의 대상에 일단 아무 제한을 받지 않는 피의자(피고인)에 비해, 재판 도중 수사 및 공판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위 법무부령에 의해 재판확정기록 및 불기소사건기록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일단 받고 있는 피해자(고소인)의 입지는 왜소하기 짝이 없다.

수사 및 재판 도중 기록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피해자(고소인)에게, 불기소처분 후 또는 재판확정 후에까지 피의자(피고인) 진술서류 또는 제출자료에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위 규정은 ‘피해자는 형사절차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정신 아니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피고인의 기본권, 무죄추정의 원칙은 피고인이 형사절차에서 유죄판결을 확정받음으로써 그 유효기간이 다하게 되므로, 피고인에 대한 유죄확정판결은 피해자의 피해에 대한 유력한 입증자료가 된다. 그럼에도 위 법무부령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원용할 수 없는 피고인의 열람등사 대상은 일단 제한하지 않고(제20조 제1항), 되려 피고인에 의한 피해가 확정된 피해자의 열람등사 대상은 일단 제한하고 있다(제20조 제2항). 한편 무죄추정의 원칙의 논리적 대우관계가 바로 무해추정(無害推定)의 원칙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한 자가 모두 편취범이 될 수는 없겠지만(참고로 2004년 국감자료에 의하면, 2004년 1월 ~ 8월까지 고소사건 429,690건 중 기소율은 18.4%, 무혐의처분율은 26.7%였음), 돈을 빌려 준 자의 피해는 명백하고 그 억울함은 당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와 성교한 것 모두가 성폭력범죄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성교를 ‘당한’ 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의 여지는 충분하고 그 억울함은 우선 피의자의 변소내용을 알아야 탄핵할 수 있다. 따라서 불기소처분으로 종결된 사건이더라도, 피해자가 피의자(피고인)의 진술 및 제출서류를 열람등사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한 경우가 허다하다(제20조의 2).

또 위 법무부령은 제21조에서 열람등사청구에 대한 검사의 허가여부 결정의무를 규정하고, 제22조에서 8호에 걸친 포괄적 제한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포괄적 제한사유는 피해자의 열람등사청구의 대상에 피의자의 진술 및 제출서류를 포함시켰을 때야만, 그 포괄성의 의미가 살아 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피해자는 본인 진술서류 및 제출서류만 열람등사할 수 있게 한 후(대상의 제한), 그것마저도 위와 같은 포괄적 제한사유로 재차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은(사유의 제한), 심하게 말해 벼룩의 간을 다시 심사해 보겠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피의자(피고인)의 진술서류 및 제출서류를 열람등사할 수 있는 전제가 성립하여야, 위 제22조가 정한 포괄적, 신축적 제한사유의 생명력은 부활할 수 있다.

우리 형사실무는 검사와 법원이 배려해야 할 피고인(변호인) 권리의 범위 및 한계 확정에 중심이 있고, 또 그것에 익숙하다. 피해자가 고소인이라는 이름으로 부여받은 바는 고소권과 처분결과를 통지 받을 권리 정도에 불과하다. 私집행이 엄금되고 公집행만이 허용되는 형사체계에서, 수사(소추)의 주체, 판단의 주체, 방어의 주체가 전면에 부각되는 현상은 불가피한 결과이고, 그 나름의 합리성도 부인되기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소사건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사건에서 수사활동, 판단활동, 방어활동의 이유와 존립근거는 피해자 및 피해의 존재증명에 있다는 점 또한 부인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재판확정기록으로부터 피고인은 어떤 변소를 하였고 그럼에도 자신의 피해가 어떻게 증명되었는지, 불기소처분기록으로부터 피의자는 어떤 변소를 하였고 그 결과 자신의 피해가 증명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은 자명하다.

현재와 같이 형사소송법은 피해자의 기록접근에 침묵하고, 피해자의 기록접근을 사실상 부인하는 법무부령만으로 피해자의 기록접근의 실무가 운영되며, 위 법무부령의 규율을 당연한 전제로 보는 실무와 해석이 유지되는 한, 우리 형사 절차에서 피해자는 소외의 대상이자 소외의 주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일찍이 위 법무부령 및 이를 구체화한 대검예규 제244호(1996. 5. 31.)와 반대입장에 선 것으로 이해되는 대법원 판결(99두3426)은 놀랍지만, 위 판결 이후 개정된 위 법무부령(2003. 7. 28.)이 여전히 위 규정을 존치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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