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숙연함을 희화화할 줄 아는 전두환 장군의 블랙코미디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재중 기자] 역시 전 장군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숙연함을 희화화하는 특유의 능력을 지녔다고나 할까. 수천억 비자금을 쌓아두고도 전 재산이 29만원 뿐이라고 오리발을 내밀 때부터 그 특유의 유머감각을 간파했지만,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29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펼쳐진 대화는 대한민국 최고의 콤비 ‘고춘자-장소팔’의 만담을 무색케 할 정도였다.

전 전 대통령은 아프간 피랍 인질들의 석방 소식을 화제로 꺼내며 “함부로 아무 데나 나가면 안되요. 알아보고 나가야지 그죠? 참 용감해. 지나치게 용감해서 국민들 걱정시키고 가족들 걱정시키고. 그래도 참 잘 해결돼서. 정부가 이번에 잘했어요”라고 언급했다.

뒤이어 전 전 대통령이 “내가 대신 인질이 되고 그 사람들을 좀 풀어줄 수 없을까 비서에게 그거 한번 해볼까 말했다”고 이야기하자, 이명박 후보는 “그런 신념 가지신 거 좋은 거죠”라며 맞장구를 쳤다.

올해 77세가 된 연로한 전직 대통령의 ‘애국애족’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건이 모두 일단락된 이 시점에 왜 그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희생된 사람들은 정말 안타깝다” 정도의 국가 원로다운 발언을 꺼내지 않고, 뒷북을 치고 나섰을까.

진짜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대목은 그 뒤에 이어졌다. 전 전 대통령은 “난 특수훈련도 받고 해서 그 친구들한테 가면 생활하는데 좀 나을 거 아니에요 그 젊은 사람들 보다”라고 이야기를 했고, 이 후보는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체성을 아직도 ‘군(軍)’에 두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전 전 대통령에게는 이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진짜 민주주의’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는 한나라당 경선이 화제가 되자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우(치열한 경선)가 처음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으며, 이 후보는 “역사에 없던 일”이라고 어깨를 곧추 세웠다.

이에 질세라 전 전 대통령은 “진짜 민주주의를 하는 것 같다”고 이 후보를 치켜세웠으며 이 후보는 “너무 길었다”고 대답했다. 한나라당이 치열한 당내 경선을 벌인 것 만큼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역사에 없던, 진짜 민주주의 경선”이라니. 만담 치고는 조금 저질스럽다.

더구나 전 전 대통령이 ‘진짜 민주주의’를 거론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작 국민들의 생명을 그처럼 끔찍이 여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1980년 군화발에 광주의 피를 묻혀가며 권력을 쟁취했으며, 이후 펼쳐진 민주주의 열망을 최루탄과 곤봉으로 꺾으며 그 권력을 유지해온 사람이 꺼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설사 농담이라 하더라도.

하긴 당의 법통을 따지고 들면, 이 후보에게 전 전 대통령은 당의 시조(始祖)와 같은 원로로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나라당의 법통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계승되어 오고 있지 않나. 민정당의 창시자가 곧 한나라당의 시조일 테니까.

어쨌든, 오늘 상당수 국민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귀를 씻고 자야할 것 같다. 아무리 만담 개그라지만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들으면, 귀를 씻고 자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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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기자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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