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지음, <소금꽃나무>, 후마니타스

   
  ▲ 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김진숙, 나는 그녀가 낯설다. 노조활동가, 노동운동에 관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누군지 정도는 알겠지만 하여간 나는 생소하다.

그러나 놀랐다. ‘정중지와([井中之蛙)’라더니, 명색이 감동을 자아낸다는(?), 시인소릴 듣던 내가 그녀로부터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인 울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풀 바른 창호지를 탁탁 털어 낼을 때의 팽팽한 그 느낌과 소리처럼 긴장감이 느껴졌다. 상투적인 글과는 거리가 먼, 길차고 생생한 글이라고 여겨졌다.

먹먹하게 가슴이 저려옴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우리 문학과 사회과학이 얼마나 생기 없는 죽은 글 투성인가를 보여준 당대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력으로만 말하자면, 김진숙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조선소의 처녀용접사로 일하다가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해고되고 그 뒤 20년을 해고자이자 노동운동가로 살아왔다. 일당이 좀 세서 용접을 배웠고, 돈 벌어서 대학 가는 게 소원이었으며, 정의 사회의 구현에 도움이 될까봐 노조 대의원에 출마한 물정 모르는 촌뜨기였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는 살지는 않을 거라면서도, 봄이 오면 삼랑진 딸기밭에 나들이 가고 싶어 하는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청춘을 외면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였다.

그녀를 잘 아는 누군가 그랬다. “전노협 쟁의부장으로 활동하던 서른 즈음에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그를 처음 만났다. 나이가 같지만 커트머리를 한 영락없이 앳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것은 대학생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여 노동대중과 동화되는 것. 즉 머리로만 하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온몸으로 살아가고 실천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자세와 입장을 일괄되게 견지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다.

김진숙, 그는 바로 내가 그리는 노동자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통함을 느꼈다. 그는 몸으로, 삶으로 계급의식을 체득하고 현실 속에서 체득하고 있었으니까”

매년 노동절을 기념하여 현장의 관점에서 노동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고민할 수 있는 전통을 갖고 일 년 중 5월에 단 한권을 내는 출판사의 출간 제의에 대해 그녀는 “그따위 게 책으로 만들어낼 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그따위 걸 책으로 만들어 내자고 나무를 베어 내도 되는 걸까”를 먼저 물었다고 한다.

과연 그녀다운 반응이다. 그래도 이 책이 빛을 보게 된 것은 “그러다가 한 가지 욕심과 끝내 타협했다. 성찰할 때가 되지 않았나...”<책을 내며> 다시 말해 두렵다고 나부터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바꾼 덕분이 아니었겠는가.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글들은 모두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한 편의 역사였다. 동시에 지은이의 살아온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권위주의, 민주화, 세계화로 이어지는 공식 역사의 이면에서, 고단한 노동현실을 당차게 감당해 낸 여성 노동자 김진숙의 삶과 투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가장 인간적이기에 가장 감동적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의 글 하나하나에서 만났는데,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단결, 연대, 투쟁을 호소하는, 어찌 보면 지당한 말씀들이었다. 너무 많이 들어 이제는 별다른 감흥도 느끼지 못한 그런 얘기.

   
      김진숙 ⓒ후마니타스 제공
하지만 그녀는 그 익숙하고, 인이 박힌 낱말에 방금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숨결을 불어넣는 힘을 지녔다. 신문배달, 우유배달, 봉제공, 버스 안내양, 용접공 등에 이르는 갖가지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이력과 예리한 통찰력에서 배어나오는 울림에 깊이 공명하기 때문이리라.

그랬다, 김진숙은. 노동운동이 경제주의나 합리주의에 빠져서 희망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몇 번이고 돌아보게 되는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생각케 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거나 스쳐 지나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글에 영혼이 울리는 당신들이 있다면 여전히 노동자들의 눈물은 계속 되겠다.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겠다.

“가느다란 나무뿌리가 그늘 드리운 고목나무 되도록 피를 섞어 물을 주고 살을 깎아 비료를 주며 알뜰살뜰 가꾸어 갈 사람들.
한 번도 앞서거나 빛나지 않은 채 3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지금도 구석구석에서 무딘 쇠를 벼려 칼을 만들고 묵은 땅을 갈아엎을 쟁깃날을 담금질하고 있을 보석 같은 사람들. 그들에게서 우리의 전망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김진숙은 오늘도 되새겨보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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